▲양화진문화원 주최 성서 스토리텔링 대담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성도들이 대담을 청취하고 있다. ⓒ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와 이재철 목사가 ‘노아’를 주제로 종교적(영적) 담론과 과학적(지적) 담론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난 9월 27일 오후 양화진문화원 주최 ‘성서 스토리텔링’ 다섯번째 대담에 나선 두 사람은 창세기 6-7장에 나타난 노아와 그의 가정, 홍수와 방주에 대한 말씀을 토대로 다양한 화두를 끌어냈다.

이어령 박사 “따져선 안 되는 것 따지다 보니 궁색한 변명만”
“종교적 담론 펼치면 과학자들 오히려 교회로 찾아온다”

▲이어령 박사가 이재철 목사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문화원 제공

이어령 박사는 질문하는 입장에서 대담을 이끌었다. 이 박사는 이에 대해 “일부러 안 믿는 사람들, 흔히 말하는 지적인 사람이 교회를 비판할 때, 반기독교인이 아니라도 성경을 처음 읽었을 때 ‘아, 이상하다’ 하는 부분들을 논리로 풀어내고, 다시 신앙으로 가서 영성까지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문턱에서부터 맹목적으로 신앙을 해 놓으면 언젠가는 회의하게 되고 속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제 질문을 저도 대답할 수 있지만 회심하기 전, 반기독교적이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악역을 맡겠다”고 밝혔다.

이재철 목사는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이어령 박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어떤 성경을 보든지 항상 그 본문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주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는 전부 주 메시지를 우리에게 설명하는 내용들”이라며 “말씀은 과학이나 의학 텍스트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종교의 경전이기 때문에, 이 단어가 이 경전 속에서 다른 곳에도 쓰여있는지, 있다면 어떤 의미로 쓰여있는지를 알면 그 의미를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령 박사는 이후 ‘종교적 담론’을 제시하고 있는 성경을 ‘과학적 담론’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 박사는 “여러 신학자들이 노아의 방주를 과학적으로 풀어왔지만, 그렇게 해서는 절대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우리 기독교인들이 과학과 안티기독교인들과 맞서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이나 로마 군사들이 찾아왔을 때 걸려든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지고, 거기에 매달려 있다 죽게 된다”고 말했다.

당시 이스라엘 민족은 로마군들과 싸워 그들을 몰아내고 해방시키는 것을 메시야의 사명이라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런 민족의 개념을 뛰어넘어 땅끝까지 복음을 확장시켰고,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보편적인 종교가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가 자꾸 따져서는 안 되는 것들을 과학적 담론으로 따지다 보니 궁색하게 변명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어령 박사는 “기독교가 참 말이 많은 종교인데, 놀랍게도 노아는 본문을 걸쳐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감정 표현이 끝까지 하나도 없었다”며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 되는, 이게 의인이고 복종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 분의 은혜를 입고 사는 것”이라고 전했다. ⓒ문화원 제공

과학적 담론이란 물이 100도에서 끓고 0도에서 얼지만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 ‘절대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하는, 율법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의 이야기다. 하지만 종교적·문학적 담론은 사랑하고, 아쉬워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듯 물질처럼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는 “과학자들이 우주를 다 알아도 아내 마음 하나를 몰라 이혼하지 않느냐, 또 아인슈타인에게 종교를 말하게 해서야 되겠는가”라며 “이런 담론의 법칙을 우리가 자녀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가르쳤다면 지금 고생하지 않는데, 자꾸 종교적 담론을 과학적·신화적 담론으로 이야기하려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령 박사는 “노아의 방주를 종교적으로 하나님의 큰 질서에서 보면 기가 막힌 이야기인데 과학적 담론으로 자꾸 보면 이 좋은 이야기가 우스워진다”며 “절대로 풀리지 않는 걸 자꾸 풀려고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 박사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 담긴 비둘기와 까마귀 등 여러 하나님의 계시들을 종교적 담론으로 옮기면 오히려 ‘아인슈타인’들도 재미있게 들을 수 있고, 과학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교회에 나오고 신을 믿게 된다”며 “그런데 노아의 방주와 똑같은 모형을 만들어 보니 배 만드는 기술이 절묘했다는 식으로 그들을 설득하기 시작하면 그 과학적 논리 때문에 오히려 그 논리는 깨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예도 들었다. 인류보다 훨씬 오래된 네안데르탈인의 뼈를 분석한 결과, ‘한쪽 발을 쓸 수 없는 부상을 당한 40대’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를 과학적으로는 단순히 체격조건 때문에 40년 이상 살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종교적으로는 그가 비록 한쪽 발을 잃었으나 그가 속한 공동체가 그를 보살펴 줬기 때문에, 다리를 다치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여타 짐승들과 달리 40년을 살았고, 그 공동체에 하나님이 계셨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면 과학자들이 말하는 발견과 담론들이 거꾸로 우리에게 이롭지 않겠느냐”고 했다.

▲이어령 박사는 “요즘 아이들은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게 아니라 아이패드와 대화하고, 진짜 넘길 수 있는 종이책을 터치해도 넘어가지 않는 고장난 아이패드처럼 느끼고, 제 몸을 계속 손가락으로 누르고 있는데, 이들에게 우리의 크리스천 메시지를 어떻게 주는 게 좋겠느나”며 “이런 정보를 가진 아이들에게 마치 방주에서 내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잎처럼 어떻게 기독교적 메시지를 주는가는 우리 모두에게 지금 남겨진 숙제”라고 말했다. ⓒ문화원 제공

이 박사는 “노아의 방주가 몇 규빗이고, 아라랏산이 지금의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기서 방주의 파편이 발견됐는지 등을 자꾸 물리적으로 따지는데,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러한 흔적과 파편들은 여기 100주년기념교회와 여러분들의 가정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자꾸 그런 담론에 말려들지 말고, 악마가 와도 이겨낼 수 있는 기독교의 담론이 무엇인지 빨리 알아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성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어떻게 그 지성을 하나님의 지혜로 바꿔낼 수 있느냐는 문제”라며 “하나님께서 가지신 그 지혜의 열매가 인간의 지식을 따먹을 때 잘못 하면 하나님이 되려 할 수 있고, 그런 인간의 지식은 우리를 지혜롭게 할 수 없고 하나님처럼 생명과 지혜가 함께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노아의 방주의 핵심 메시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을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 분을 등질 때 우리는 비참해진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인류를 멸망시키신 것처럼 악을 한 손으로는 때리시지만, 노아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처럼 한 손으로는 살리신다”고 했다.

이재철 목사 “방주는 하늘로만 창문이 뚫려 있었다”
“기록된 말씀,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되 근본주의는 배척하자”

▲이재철 목사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의 가정을 만드셨지만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실낙원했고, 자식들 사이에서 살인극이 벌어지는 등 후손들도 심히 부패했다”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가정이 노아의 가정이고, 노아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역사를 다시금 시작하셨다”고 했다. ⓒ문화원 제공

이재철 목사는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상징적인 표현은 상징으로 봐야 하고, 비상징적인 것은 비상징적으로 봐야 한다”며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아무도 오해할 수 없는, 상식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상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하나님께서는 계시의 하나님이시고, 당신의 말씀을 통해 당신과 역사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분”이라며 “그래서 노아 이전에 육식동물이 방주에서 뭘 먹고 살았는지 답을 드리겠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후 성경 본문들을 통해 나타나는 과학적 진술에 대해 답하기도 했다. 노아의 홍수는 오늘날 홍수들과 달리 창세기 1장의 ‘궁창 위의 물’이 쏟아진 것이고, 홍수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동물들에게 채식만을 먹게 하셨으며, 아벨이 양을 친 것과 가축을 창조하신 것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복을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그는 “저는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며 “과학적으로 성경을 봐서는 안 되지만, 기록된 말씀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의 지성으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근본주의자들처럼 과학을 끌어들이는 무리한 일은 배척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이재철 목사는 노아의 방주에 대해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언제든지 부끄러움 없이 살려면 이 세상의 관점으로 나를 볼 것인지, 하나님의 관점으로 나를 객관화시킬 것인지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한다”며 “네피림은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스타였고 모든 사람들이 닮고 싶어한 존재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패역한 인간들일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재철 목사는 “노아의 방주 속에는 온갖 짐승들이 매일 밥 달라고 울고 있었고, 여덟 식구가 그것들에게 매일 밥 주고 오물을 치워야 하는 등 하루하루가 중노동이어서 절대 낭만적이거나 천국 같지 않았다”며 “어떤 의미에서 그야말로 노아의 방주는 정신병 걸리기 딱 좋은 곳이었지만 노아 외에 누구도 1년 후 정신병자가 되어 나오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바로 하늘로 창문이 뚤려있어 늘 그 분을 바라보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문화원 제공

두번째로는 “우리가 언뜻 생각하듯 노아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셨다고 받아들인다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들처럼 ‘자력 구원’의 종교가 돼 버린다”며 “노아 역시 아담과 하와의 피를 이어받아 죄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완전한 자’라는 앞 구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고 했는데 이러한 선행적인 은혜가 있었기에 그 응답으로 노아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중심을 고정시킬 수 있었다”고 전했다.

‘왜 하나님께서 노아에게만 은혜를 베푸셨는가’ 물음에는 17세기 화가 카라바조의 <성 마태를 부르심>으로 설명했다. 그는 “화가의 영감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부르실 때 마태 귀에 ‘나를 따르라’고 속삭이신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이야기하셨다”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자리에 공개적으로 갔고, 그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한 사람이 마태 한 사람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 한 명 뿐이겠는가”라며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 은혜가 갔겠지만 의지를 다해 응답한 사람은 노아 뿐이었음을 받아들일 때, 그 분의 은혜를 우리가 깨닫고 응답하기만 하면 내 집 안방을, 내 일터를, 우리가 다니는 교회를 얼마든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함께하시는 방주로 만들 수 있다”고도 했다.

▲이재철 목사는 “우리 신앙인들 속에 불쑥 질문이 생각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지만, 그때 하나님과 나의 시선이 맞닿으면 ‘저 분의 뜻이니까’라는 답을 얻게 되고, 이 속에서 하나님 뜻이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며 “노아는 그러한 훈련을 거쳐 인류의 두번째 시조가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화원 제공

노아의 방주를 모세가 탔던 갈대상자와 비교하면서 둘의 공통점을 ‘동력이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 목사는 “방향을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방주든 갈대상자든 지어놓고 그저 들어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문을 닫으시고 친히 운행하신다”며 “하지만 노아와 모세의 아버지가 역청을 칠한 것처럼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다해야 하고, 마지막 결정은 온전히 그 분께 맡긴 채 어디로 인도하시더라도 그곳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어간다면, 우리가 어디에 있든 그곳이 바로 구원의 방주가 되고, 우리 곁에 함께 있는 이들 역시 노아로 인해 구원받은 가족들처럼 그 은총을 더불어 누릴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이재철 목사는 “저는 터키의 아라랏산 ‘노아의 방주’ 발굴 현장을 직접 가 보았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실제 현장인지도 알 수 없지만 그 자체는 우리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노아의 방주에는 세상을 보는 창문이 없었고 오직 하늘로만 뚫려 있었는데, 방주 속에서 노아와 가족이 1년 넘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은 바로 하늘에 뚫려있던 창으로 하나님과만 눈을 맞추는 훈련을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령 박사는 “노아의 방주가 지금 필요하다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많은 날조된 가짜 정보들, 인터넷에 나도는 풍문들 사이에서 눈을 똑바로 뜨고 어떤 것이 생명의 정보이고 어떤 것이 죽음의 정보인지 가려내 그것들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라며 “옛날에는 정보가 없어 목말라 죽었지만 지금의 정보의 홍수에서 익사하게 생겼는데, 바로 교회가 그런 정보들을 걸러내고 하나님과 눈을 마주치며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거들었다. ‘지성’과 ‘영성’은 다음 달 이날 못다한 노아 뒷부분 이야기와 ‘아브라함’을 주제로 또다시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