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귀츨라프 “씨 뿌려진 하나님 진리, 약속하신 때 열매 맺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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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재 선교사의 ‘아프리카에서 온 편지’ 안식 (1) 한국 최초의 선교사

안식년을 맞아 한국에 잠시 체류 중인 이윤재 선교사님이 묵상의 글을 보내 주십니다. -편집자 주

▲칼 귀츨라프 선교 기념비 앞에 선 일행.
▲칼 귀츨라프 선교 기념비 앞에 선 일행.

통역 및 의사 자격 도착 귀츨라프
교역 및 복음 전파 위해 조선 방문
황해도 몽금포 도착했다 충청도로
녹도·불모도 지나 고대도·원산도
19일 동안 조선 머무르며 선교해
감자 보급, 포도 재배법 가르쳐
한국 떠난 후 한글 우수성 알리고
동북아 체계적 선교 지역 삼기도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시 37:7)”.

목회할 때도 마음껏 지키지 못한 안식년을 선교사로서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선교 현장은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선 그동안 쌓인 피로로 인해 다른 요인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한 달 전 아내가 미국 딸 집에 가는 바람에 안식의 필요는 더 커졌다. 때맞춰 읽은 성경이 큰 힘이 되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시 37:7)”. 여기서 ‘잠잠하라(다맘)’은 ‘고요하다. 멈추다’의 뜻이지만 이 말은 ‘휴가(vacation)’의 뜻도 있다. 이 말은 우리가 휴가를 가면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대신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안식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안식은 다만 내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대신하여 일하심을 믿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해야 할 작고 큰 일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기로 했다.

지난 6년, 내가 가슴에 새겼던 생각이 하나 있다. 하나님의 일은 속도보다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경험이 없는 낯선 땅에서의 선교적 시행착오는 불가피했다. 그래서 안식년은 조용히 멈춰 서서 자신의 방향이 옳은지 속도는 적절한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미국의 철도 건널목에 새겨진 대로, 안식년은 우리 삶의 방향을 점검하기 위해 ’멈추고, 듣고, 바라보는(Stop, listen and look)‘ 시간이다. 나는 그것을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과 순교자의 삶을 통해 보기로 했다.

▲칼 귀츨라프(왼쪽)와 최근 발간된 <귀츨라프 선교사의 조선 방문>.
▲칼 귀츨라프(왼쪽)와 최근 발간된 <귀츨라프 선교사의 조선 방문>.

그 첫 번째 인물은 한국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Gutzlaff, Karl Friedrich August, 1803-1851)다. 그는 1832년 영국의 대형 상선 로드 에머스트호(Lord Emerhst)를 타고 통역 및 의사 자격으로 한국 땅에 첫발을 디뎠다.

그는 약 1개월간(1832. 7. 17- 8. 17) 황해도와 충청도를 방문한 후 제주도를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의 주 목적은 영국과 조선의 교역을 위해 조선 왕국에게 교역을 청원하는 것이었지만,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것 또한 중요한 목적이었다.

귀츨라프는 1803년 7월 8일 독일에서 태어나 1820년 황제 장학금을 받고 1821년 베들린 신학교를 졸업했으며, 1923년 선교사의 꿈을 안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했다.

1년 후 독립 선교사가 된 그는 1831년부터 1833년까지 6개월씩 3차에 걸친 선교여행을 통해 동북아, 중국 등의 선교를 타진하기 위해 길을 떠났는데, 그가 한국(조선)과 만난 것은 두 번째 선교여행(1832. 2. 22- 9. 5) 기간이었다.

▲고대도로 가는 배를 탄 이윤재 목사 일행.
▲고대도로 가는 배를 탄 이윤재 목사 일행.

귀츨라프 일행이 처음으로 상륙한 한국 서해안은 황해도 몽금포였다. 배가 해안선에 이르자 귀츨라프는 배에서 내려 바닷가에서 낚시하고 있던 어선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 있던 어부 두 명과 필담을 나누면서 책 몇 권과 사자 무늬가 있는 단추를 선물로 주었다.

이때 귀츨라프를 처음 만난 어부는 김대백과 조천의였다. 귀츨라프가 두 어부들에게 준 책은 한문 성경이었다. 조선 정부는 이를 알고 황해 감사 김난순로 하여금 받은 책을 불태우게 하고 귀츨라프를 내쫓았다. 귀츨라프와 한국과의 첫 번째 접촉은 그렇게 끝났다.

귀츨라프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몽금포 앞바다를 벗어나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7월 19일부터 20일까지 항해했는데, 때마침 계속된 비와 안개 때문에 해안에 접근하는 것이 불가능해 이틀이 지난 후에야 섬에 도착했다. 그곳이 지금의 충남 서천군 비인만 일대의 작은 섬이다.

배는 7월 21일 열도에 정박하고 22일 녹도, 23일 불모도를 지나 24일 고대도, 25일에 원산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귀츨라프는 8월 12일까지 19일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선교 기념관 내부 모습.
▲선교 기념관 내부 모습.

이때 그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선교했다. 하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감자를 보급한 것이다. 그날이 7월 30일이었다. 그는 수많은 원산도 주민과 군관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자를 파종하고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하나는 주민들에게 한문으로 된 주기도문을 주어 그것을 한글로 번역하게 했다.

짧은 기간 동안 귀츨라프가 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선교사이며 의사였던 그는 배를 개방하여 찾아오는 주민들에게 전도 책자와 감기약을 나눠 줬고, 감자뿐 아니라 포도 재배법까지 가르쳤다. 그뿐 아니라 그는 한국을 떠난 뒤에도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고, 선교적으로는 동북아를 체계적 선교 지역으로 삼았던 최초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고대도에 가보는 것은 오랫동안 나의 꿈이었다. 오랜 친구 공주 이상호 목사 부부와 은퇴한 홍기영 목사 부부가 소식을 듣고 바쁜 중에도 기꺼이 합류했다. 한국으로 유학온 우간다의 Peter가 함께 동행했고 안내는 오랫동안 귀츨라프를 연구해온 보령 흥덕교회 안세환 목사가 맡았다.

오후 1시 보령 여객 터미널을 출발한 배는 여러 섬을 지나 두세 시간 만에 고대도에 도착했다. 일기는 연일 궂은 날씨를 예고했고 예보대로 비는 하늘을 열고 세차게 퍼부었지만 나에게 염려는 없었다. 그보다 더 멀고 위험한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귀츨라프가 타고 왔던 배 모형 앞에 선 이윤재 선교사.
▲귀츨라프가 타고 왔던 배 모형 앞에 선 이윤재 선교사.

온 몸에 비를 맞으며 섬을 돌아 귀츨라프 일행이 타고온 배(모형)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귀츨라프와 그 일행이 겪은 어려움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 작은 배로 몇 달을 걸려 머나먼 한국에 도착하다니. 그때 만일 우리가 선교의 문을 열었다면 우리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귀츨라프가 그의 일기에서 말한 것은 조선인들의 무관심이었다. 그들의 선의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선의 무지와 무관심을 안타까워 하며 귀출라프는 8월 12일, 한국을 떠나면서 이런 글을 남겼다.

“나를 슬프게 한 것은, 고관들이 백성들에게 더 이상 어떤 책이나 물건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금지시킨 일이다. …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늘 기도로써 간구한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로 이루어주신 하나님의 역사다. 조선 땅에 씨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가 완전히 소멸될 것인가?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우리의 첫 전도는 보잘 것 없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을 확신한다. 조선에 어둠이 가고 속히 새벽이 와서 밝은 날이 오기를 다같이 바랄 뿐이다.”

귀츨라프의 용기와 열정이 묻어 있는 섬을 떠나면서, 나는 선교사로 몇 가지를 생각했다.

▲우간다에서 온 유학생 다니엘과 함께한 모습.
▲우간다에서 온 유학생 다니엘과 함께한 모습.

사방 막혔다고 포기하지 말자
당장 선교 안 돼도 낙심치 말자
열매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열매 안 보인다고 낙심치 말자
“조선 땅에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
약속하신 때 반드시 열매 맺을 것”

사방이 막혀 있다고 포기하지 말자. 귀츨라프는 외아들로 태어났고 4살 때 어머니를 잃어 힘든 젊은 날을 보냈다. 그는 26세에 독일에서 결혼했으나 14개월 후 아내를 잃었고, 31세에 재혼했으나 15년후 또 사별했다. 이듬해 세 번째 결혼했으나 1년만에 또 사별했다.

그의 개인적 고난은 48세 그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나, 그는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소명의 길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의 불굴의 삶을 통해,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낙심치 않는 하나님의 사람의 위대한 믿음을 본다.

마음먹은 대로 선교의 문이 당장 열리지 않는다고 낙심치 말자. 선교사의 눈으로 그의 선교를 볼 때, 그의 선교는 성공적이 아니었다. 그는 몽금포에서 관헌에 의해 쫓겨났을 뿐 아니라, 고대도에서도 관리의 불신과 백성들의 무관심으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에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동남아시아로 돌아간 후 그는 태국 선교사로서 최초로 태국어 성경을 번역했으며, 언어의 천재였던 그는 후에 최초로 일본어로도 요한복음을 번역했다. 그는 홍콩에 정착하여 홍콩 복음화의 아버지가 되었다.

선교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낙심치 말자. 하나님은 한 문을 닫으시면 반드시 다른 문을 여신다. 그리고 닫힌 문도 때가 되면 반드시 여신다. 우리의 선교 역사를 보라. 귀츨라프가 한국을 떠난 지 34년 후, 하나님은 영국의 토마스 목사를 보내 한국 선교의 문을 여셨고, 53년 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를 시작으로 6천여 명의 선교사를 보내 한국을 세계사에 빛나는 선교의 대국이 되게 하셨다.

▲귀츨라프가 당도했을 고대도 앞바다.
▲귀츨라프가 당도했을 고대도 앞바다.

마지막으로 당장 열매가 없다고 실망하지 말자. 귀츨라프의 19일간의 한국 체류는 선교적 열매를 맺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열매가 없었다고 실망하지 말자. 그가 한국을 떠난 뒤인 1849-1850년 유럽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선교 보고를 하자, 영국의 리빙스턴이 듣고 선교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의 아프리카 선교는 실로 귀츨라프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영국 웨일스에 살던 토마스도 그의 선교 보고를 듣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 조선에 대한 선교적 꿈을 꾸기 시작했다. 허드슨 테일러가 그의 기록을 읽고 1853년 처음으로 중국에 선교사로 파송돼 ‘중국 내지선교의 아버지’가 되었다. 허드슨 테일러는 자주 “자기가 중국 선교의 아버지라면, 귀츨라프는 중국 선교의 할아버지”라고 말했다.

지금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자. 눈물로 뿌린 씨는 반드시 거두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 우리는 다만 뿌릴 뿐, 거두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낙심하지 말자.

귀츨라프가 조선을 떠나기 전 했던 말을 다시 기억하고 용기를 내자. “조선 땅에 씨 뿌려진 하나님의 진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때에 반드시 열매 맺을 것이다”. 귀츨라프의 믿음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는 또 다른 귀츨라프를 부른다. 귀츨라프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아멘.

이윤재 선교사

우간다 쿠미대학 신학부 학장
Grace Mission International 디렉터
분당 한신교회 전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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