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근 목사(온누리선교교회).
1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2 너는 여리고와 그 왕에게 행한 것같이 아이와 그 왕에게 행하되 오직 거기서 탈취할 물건과 가축은 스스로 취하라 너는 성 뒤에 복병할지니라

1. 아간 사건 이후

영적 전쟁에 참여한 성도들은 좌절감과 낭패감과 의기소침한 상태에 너무 오래 머물 필요가 없다. 7장에서 하나님은 종일 엎드려 있는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10절)고 하셨다. 우리는 너무 오래 실패의 좌절감에 빠질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이 있다면 고치고 회개하여 국면을 바로잡는 것이 필요하다.

또 새롭게 나아갈 때 두려워하고 놀랄 필요가 없다. 지난 날의 실패는 우리가 새롭게 진군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은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고 하신다. 그리고 아이성 정복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주신다. 오늘의 전쟁에서 이기려면 어제의 만나가 아닌 새로운 만나가 필요하다. 지난날 여리고의 승리의 느낌이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언제나 현재적인 것이다.

2. 인자하신 하나님

다윗은 시편 136편에서 스물여섯 번이나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이로다”라고 노래했다. 다윗은 주님의 지극히 놀라우신 인자하심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있었기에 실패하였을지라도 다시금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우리는 약하지만 언제나 주님의 인자하심을 의지하여 그분께 나아가 은혜를 구할 수 있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 51:6). 주님은 우리의 진실함을 기뻐하신다. 우리가 진실하게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며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를 기꺼이 받으시고 새로운 은혜를 공급해주신다.

3 이에 여호수아가 일어나서 군사와 함께 아이로 올라가려 하여 용사 삼만 명을 뽑아 밤에 보내며 4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성읍 뒤로 가서 성읍을 향하고 매복하되 그 성읍에 너무 멀리 하지 말고 다 스스로 예비하라 5 나와 나를 좇는 모든 백성은 다 성읍으로 가까이 가리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에게로 쳐 올라올 것이라 그리할 때에 우리가 그들 앞에서 도망하면 6 그들이 나와서 우리를 따르며 스스로 이르기를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 하고 우리의 유인을 받아 그 성읍에서 멀리 떠날 것이라 우리가 그 앞에서 도망하거든 7 너희는 매복한 곳에서 일어나서 그 성읍을 점령하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에 붙이시리라 8 너희가 성읍을 취하거든 그것을 불살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행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였느니라 하고 9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복병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여호수아는 그 밤에 백성 가운데서 잤더라 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11 그를 좇은 군사가 다 올라가서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편에 진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었더라 12 그가 오천 명 가량을 택하여 성읍 서편 벧엘과 아이 사이에 또 매복시키니 13 이와 같이 성읍 북편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편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14 아이 왕이 이를 보고 그 성읍 백성과 함께 일찌기 일어나서 급히 나가 아라바 앞에 이르러 정한 때에 이스라엘과 싸우려 하고 성읍 뒤에 복병이 있는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15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광야 길로 도망하매 16 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17 아이와 벧엘에 이스라엘을 따라가지 아니한 자가 하나도 없으며 성문을 열어 놓고 이스라엘을 따랐더라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성읍을 가리키니 19 그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따르던 자에게로 돌이켰더라 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을 죽이고 22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혹은 이편에서 혹은 저편에서 쳐 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1.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이켜 옛 실패와 죄를 처리하였을 때 다시 전투에 임할 기회를 부여하신다. 이것이 그분의 긍휼이다. 결국 영적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신갑주인데 이는 진리의 허리띠와 의의 흉배(죄가 심판된 후에 얻어짐)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과 믿음의 방패와 구원의 투구와 말씀으로 된 성령의 검이다. 이러한 전신갑주가 입혀질 때 비로소 전쟁에 나갈 수 있다.

2. 아이성과 여호수아성은 다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전쟁 방법이 여리고와 싸울 때와 같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아이를 공격할 때에는 성 주위를 여섯 번이든 일곱 번이든 돌라고 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기드온 때와도 다르다(어떤 사람들이 기드온 때 하나님은 3만명이 너무 많다 하시며 3백명만 나가라고 하셨다면서 의견을 내 주장한다면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는 군사도 3만이나 필요하고 볼 것 없이 바로 쳐들어가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때는 특별히 매복 전술을 사용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방법이 항상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물론 그분은 생명과 성품에서 변함이 없으시다. 그분은 언제나 변함없으신 정금이시다. 그러나 그분이 일을 하실 때에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하시지는 않는다.

우리는 오늘 복음 전파를 위하여 50년 전의 방식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 그때는 북을 치며 노방 전도를 했다. 또 어떤 목사님들은 간단한 말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며 복음을 전했고 하나님은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영혼들을 구원하셨다. 그러나 지금 어떤 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그러한 방식을 사용한다면 통하지 않음을 볼 것이다.

한때 전도지를 통한 복음 전도가 효력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전도지를 통하여 구원을 받았다. 또 한 때는 주간지 사이즈인 타블로이드 판 신문 같은 전도용 인쇄물이 효과가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뀔 때 과거의 방식이 통하지 않음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인터넷 방송이나 TV 방송을 통한 전도가 매우 효력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여전히 테잎이나 서적 전도는 효력이 있다. 다만 한 가지로 전도의 방법을 고정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와 문화가 바뀜에 따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고정되지 않은 방식은 언제나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일에서 창조적이 되게 하고 시대마다 새로이 인도하심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깨어있지 않을 수 없게 한다.

3. 어제의 패배는 오늘의 거름

이스라엘이 죄로 인해 패배하였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새롭게 전쟁에 나설 때 지난날 패배한 전쟁의 상황을 적절하게 사용하시어 이기게 하셨다. 그러니 회개한 믿는 이들에게는 패배도 결국 승리의 밑거름이 된다.

우리는 지난날 원치 않게 많은 패배를 겪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그러한 지난 날의 패배의 쓰라림을 승리의 밑거름으로 바꿔주셨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패배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믿는 이들의 패배의 상황도 그가 딛고 다시 이기도록 하는 데에 사용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많은 체험에서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지난날의 수많은 실패는 미래의 승리의 체험을 위해 매우 유용한 자료들이 된다.

아이성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거짓 패하여 도망하니 “그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도망한다”고 오판하고 이스라엘을 좇기 위해 다 성에서 빠져 나오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는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6절)라고 하였다. 이는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여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같은 성령의 여러 가지 은사일 수 있으며 하나님의 다양한 역사일 수 있다.

4. 여호수아의 본받을 만한 행동

여호수아는 군대의 책임자로서 위급한 순간에 백성들 가운데서 잤다. 이러한 행동은 백성들을 위로하며 격려한다. 인도자가 위급한 순간, 중요한 시점에 자신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매우 중요할 때 인도자는 반드시 성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5. 가장 적절한 순간에 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가장 적절한 순간에 단창을 들라고 명하셨다. 주님은 작은 일 한 가지라도 섬세하게 지시하신다. 특히 하나님의 백성의 인도자들은 중요한 때에 하나님의 음성과 지시를 받고 분명하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전략과 전술은 완벽한 것이었다. 누가 하나님과 겨룰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