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
중세에서 근대까지 (문예부흥 그리고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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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가 인식하던 당대의 역사와 사회 그리고 문학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에 대하여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문학작품이 있다. 우리 함께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며 철학자·역사학자인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 )의 1980년 작품, <장미의 이름(ll Name della Rosa)>을 먼저 ‘스토리 라인’으로 읽어보자. 이 책은 중세의 수도원 생활에 대한 가장 훌륭한 입문서로 알려져 있고, 대학에서는 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 뿐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도 고전 학문의 신천지에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추천하는 필독서이기도 하다.

<장미의 이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그리고 프랜시스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 뿐 아니라 현대의 기호학 이론이 무르녹아있는 생생한 지적(知的) 보고서다. 이 작품이 세계적 귄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인 프랑스의 메디치상과 이탈리아의 스토레가상를 수상할 때 몇군데 서평들이 책의 무게를 잘 말해준다.

“<장미의 이름>은 가히 만 권의 책이 집약된 결정체로서 독서량이 많은 독자일수록 이 책이 암시하고 있는 책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의 독자는 독서범위를 넓히면 넓힐수록 이 책에서 한번 봤던 부분을 재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그야말로 이 책은 ‘책중의 책’이다.”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
뿐만 아니라 작가의 해박한 인류학적 지식과 기호학적 추리력이 이루는 탄탄한 소설 구성과 조화는 <장미의 이름>을 이 시대 불멸의 문학작품으로 탄생시켜 출판과 동시에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현재 40여개국어로 번역돼 읽히고 있다. 또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쟈크 아노(Jean-Jacques Annd)가 숀 코넬리 주연의 영화로 제작해 상업적인 면에서도 유례없는 성공작이 됐다.

책의 스토리는 수도원의 한 젊은 수련사 아드소가 사부인 수도회 소속 윌리엄과 함께 황제가 내린 임무를 갖고 베네딕트 수도원에 도착해 일주일 동안 그 곳에서 생활하면서 장서관에 근무하던 수도사 아델모의 살인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모든 살인 사건이 늙은 수도사 호르헤와 관련되어있는데, 호르헤는 40여년 동안 수도원의 주인 행세를 해 온 사람으로서 이단으로 금지된 ‘한 책’에 수도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아온 사람이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Poetic) 제2권의 유일한 필사본이었다.

아델모를 비롯한 다섯명의 수도사들은 모두 이 책을 읽고자 접근했고, 시학을 이단으로 인정한 호르헤가 책에 묻혀둔 독으로 살해된 것이다. 독이 묻었던 페이지는 “웃음은 예술이며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이다”라고 쓴 부분이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 교회와 주교들이 문학을 포함한 예술 전반에 걸쳐 어떤 시각을 가졌는지를 잘 말해준다. 예술은 바로 그 본질에 있어 악마적이라는 생각,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을 돌아서게 한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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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또 한편 승려나 수사들은 문학을 통해 성경의 내용과 기독교 신앙을 더욱 널리 전파하고 일반 대중에게 그 문화를 보급하였다. 문학적 주제는 성인들의 생애나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전설이나 교훈적 이야기들과 현실주의와 대립되는 구도자적 자세의 자아 탐구로 신앙의 감성적 체험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감성적’이라는 것은 비합리주의적인 세계 파악이 신과의 만남이라 여기고 개인적인 체험을 중시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이 문학가들은 교회나 수도원 같은 외형을 떠나 자아의 내면으로 들어가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고 자신들의 영적 체험을 추구했다.

이 같은 자각은 중세 후반 <아더왕 이야기>, <트리스탄과 이졸데>, <장미 이야기>로 대표되는 로망스와 궁정문학이라는 하나의 문학장르를 이룬다. 로망스와 궁정문학 작품 속에서 자연은 진리이며 아름다움의 원천이다. 이것은 중세 교회의 교리와는 크게 대립되는 것이다. 작품에서 형상화되는 삶의 기쁨들, 한가로움, 즐거움, 명랑함, 사랑, 아름다움, 부유함, 관대함, 솔직함, 예절바름, 그리고 주인공이 사랑한 햇빛, 물, 꽃, 녹음 등은 중세의 관점으로 보면 매우 이교도적이다.

정치·사회적으로도 14-17세기는 유럽 역사에 있어 위대한 변혁의 시기였다. 유럽에서는 중세 기독교의 도그마에 물들지 않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를 연구하는 열기와 운동, 즉 ‘르네상스’가 이탈리아 반도를 중심으로 움트고 있었다. ‘르네상스’라는 말은 이탈리아의 문학사가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가 그의 저서 <위대한 예술가들의 생애>에서 처음 사용했는데, 그 후부터 13-16세기까지의 유럽의 문화현상을 지칭하는 명사로 정착된다. 어원학적으로 ‘르네상스’는 ‘다시 태어남’의 의미인 이탈리아어 명사 ‘리나쉬멘토(Rinascimento)’로서 ‘부활’, ‘재생’을 의미한다. 프랑스와 영어로는 르네상스(Renaissance)이다.

문학의 ‘재생’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꽃이였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다른 유럽인에 비해 합리적이고 현세적이며 생활의 전부를 예술화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심미안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기질 때문에 인간을 속박하는 경건하고 내세적인 중세 문화를 벗어나 생을 예찬하고 삶을 아름답게 꾸미는 현실적인 인문주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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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삽화, <베르길리우스와 단테의 지옥유람>.
위대한 기독문학작가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그의 <신곡>에서 비록 중세기의 기독교 세계관을 근거로 하여 지옥, 연옥, 천당을 순례하지만 인간의 참 모습과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필치로 형상화한다. 그의 삶과 문학의 테마는 Platonic Love이며, 이 주제는 르네상스 문학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다.

Platonic Love와 함께 ‘오늘을 즐기자(Carpe diem)’역시 문학의 주요주제였다. 오늘이라는 현실 세계야말로 하나님께서 부여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실현되는 공간이며, 인생을 즐기며 삶의 풍요로움을 향유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임을 새롭게 자각했다.

때문에 문학 속의 인물들은 모든 평범한 사람들,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들이다. 예를 들면 자연과 벗삼아 양이나 소를 치면서 선지자적 역할을 수행하거나 숲속의 정령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귀족 여인들과의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에 목숨을 걸기도 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문학이 구성되었다.

교회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볼 때 종교개혁(Reformation)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난날 역사 발전 과정에서 빚어진 잘못된 오류들을 시정하고 개혁하여 본래적 기독교의 모습을 되찾자는 회복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 이념이 분명히 중세 기독교의 붕괴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은 ‘종교의 부흥(Revival of Religion)’과 ‘기독교의 갱신(Renewal of Christendom)’을 가져왔다. 종교개혁의 배경 중 하나가 르네상스였으며 문학은 문예부흥의 중심에 있었다.

우리가 문학적으로 성경에 접근해 보면 성서야말로 문학적 장치들로 쓰여진 위대한 문학작품인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성경 내의 다양한 문학장르를 중심으로 성경 본문을 문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의미를 알아갈 때 우리의 영성이 어떻게 감동적으로 깨어나는지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계속>

/송영옥 교수(기독문학 작가, 영문학 박사 ,영남신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