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0장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 문제는 포도원 주인의 ‘불공평한’ 행동에서 비롯되는데, 이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서 일한 품꾼과 이보다 늦게 포도원에 온 일꾼, 심지어 해가 질 무렵 포도원에 도착해 조금밖에 일하지 않은 품꾼 모두에게 삯으로 1달란트를 준다. 그것도 맨 나중에 온 품꾼부터.

만약 포도원을 현대의 기업이라고 가정하면 이 성경의 비유는 먼저 온 품꾼, 즉 경력이 오래된 노동자들에게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로 변한다. 오랜 세월 일한 노동자와 이제 막 기업에 고용된 젊은 노동자에게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기업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보다 먼저 이 기업을 과연 기업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까.

8일 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에서 열린 양화진문화원 목요강좌의 주제는 경제였고, 이 주제를 논할 이어령 박사(양화진문화원 명예원장)와 이재철 목사(백주년기념교회) 앞에 가장 먼저 던져진 질문은 ‘성경적 기업이 가능한가’였다. 낮아짐, 희생, 양보를 강조하는 성경과 이윤, 경쟁, 쟁취를 강조하는 기업이 과연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었고, 동시에 ‘마태복음 20장의 이야기가 현대 기업에서 일어난다면’이란 도전적 발상이었다. 이에 대한 이 교수와 이 목사의 대답을 요약·정리했다.

“기업인이 먼저 통념 깨야 하나님 나라 정신 구현”

▲이재철 목사 ⓒ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재철 목사: “어느날 율법사가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을 던진다. 물론 예수님을 올무에 빠지게 할 의도였다. 그가 예수님께 ‘율법 중에 어느 것이 가장 큽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모두가 잘 알듯,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셨다. 이것이 곧 성경의 핵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모든 기업은 이 성경의 핵심을 구현하기 위한 통로다.

기업은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이 이윤 창출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그렇기에 그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가 비인격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독기업은 이윤을 창출하되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이들은 하나님과 사람을 향한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 돈을 추구한다.

마태복음 20장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다. 포도원의 주인은 하나님이고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며, 품꾼은 곧 구원받은 우리들이다. 즉, 하나님 나라의 축복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 은총이라는 것이다. 이게 총론이다. 하나님 나라의 총론. 그런데 이 안에는 두 개의 각론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에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그곳에서 일하는 모두에게 동질의 양식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비록 포도원에 늦게 왔지만 그 역시 먼저 온 품꾼과 비슷한 처지에 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비용이 먼저 온 자와 동일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먼저 온 자와 같은 삯, 곧 자비를 베푸셨다. 기업이 만약 이 성경적 원리를 깨닫는다면 현대의 기업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살리는 기업이 될 것이다.

혹 목사라 이런 이상적인 말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대학교 4학년 끝무렵부터 직장을 다니기 시작해 지금까지 꼭 41년 째 사회생활을 해오고 있다. 현재 담임목사로 내가 받는 월급은 405만원이고 부목사들 중 가장 선임이 받는 월급이 395만원이다. 그의 나이는 46살이다. 18세 이상, 모두 공부하는 자리에 있는 네 명의 자녀를 둔 내가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둔 그보다 10만원을 더 받는다. 그러니 실제 월급은 그가 더 많은 셈이다. 이는 비단 나와 선임 부목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 백주년기념교회에서 사역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

이유는 마태복음 20장의 정신을 스스로 실천하기 위함이다. 삶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내가 말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말로 혹은 종이 위 문자로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을 경영하는 전문 경영인 혹은 기업을 소유한 기업주가 ‘그래도 나는 이 정도 연봉은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을 먼저 깬다면, 하나님 나라의 정신은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다.”

“돈 아닌 생명 증식시키는 ‘생명자본주의’ 만들어야”

▲이어령 박사 ⓒ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어령 박사: “마태복음 20장의 이야기를 나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다. 포도원 주인이 늦게 온 품꾼에게도 일찍 온 품꾼과 같은 삯을 준 것은, 그들의 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찍온 품꾼은 오래 일하다 보니 어느새 맹목적으로 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늦게 온 품꾼은 자신을 불러준 포도원 주인에 대한 감사와 자신에게도 일이 주어졌다는 감격이 겹쳐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에 임했을 것이다. 일에 대한 고마움이 이렇게 서로 다르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모태신앙인 사람들 중에서 여전히 뜨거운 신앙을 가진 사람을 찾기가 힘들다. 하지만 늦게 하나님을 믿어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

기업에서도 그렇다. 비록 늦게 고용됐다 할지라도 그가 기쁜 마음으로 일하고 기업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의 생산성이 맹목적으로 오래 일한 사람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기업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면 결코 악덕기업주가 될 수 없다. 노동자들을 잘 대우하고 그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생산성이 높아져 큰 이윤이 생기는데, 굳이 임금과 노동력을 착취해 악덕기업주 소릴 들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명한 기업주는 노동자들로하여금 빨리 일터로 나가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 그런 사람이다.

나는 젊었을 때 기업인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사회에 악적인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기업인들과는 점심도 같이 먹지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나쁜 것은 신의 질서를 파괴하는 노동, 즉 마지못해 하는 노동, 다른 이들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는 노동이지 하나님의 종으로 일 자체를 신령한 것으로 여기며 열심히 일하는 자의 노동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 개념을 자본과도 연결시킬 수 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자본에 투자하고 자본을 증식시키려 애쓴다. 그러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명을 가진 것만이 증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돈이 많아진다는 것, 돈을 증식시킬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며 거짓이다. 자본주의 사회, 많은 사람들이 이런 착각에 빠져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일어난 세계금융위기는 이에 대한 경고가 아닐까.

만약 크리스천이 자본에 투자하는 기업인이 된다면 물질이나 돈을 자본으로 삼지 말고 생명과 사랑을 자본으로 삼아 그것을 증식시키고 번져나가게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자본주의’다. 한국에 기가막힌 말이 있다. ’살림살이’라는 말. 살림을 해서 살게 한다는 의미다. 영어로 경제는 이코노미(economy)인데, 집이라는 뜻이다. 이 경제가 세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이 돼야 한다.

최근 단순 ‘생산’이 아닌 ‘생식’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무조건 자본주의를 비판할 게 아니라 자본의 또 다른 개념을 도입해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든다면 모든 기업인들이 당당하게 돈을 버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