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눅 15:25~32)

<등단 후 멘트>
여러분 우리 주 예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옆에 분하고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형식이나 습관이 아니라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체험입니다. 모든 예배시간이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살아 역사하신 주님을 만나 변화 받고 치료받고 용서받고 새 힘을 얻어서 또 한 주간 승리하고 또 한 주간 승리하고 우리의 일생이 주님의 은혜로 복 받은 일생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찬양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복음성가 ‘이 땅에 오직’)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사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 자녀 삼아주셔서 오늘 이 시간까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하지 못하고 늘 원망 불평하고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고집과 교만과 불순종으로 주님을 섭섭하게 상처 입게 해드린 모든 죄를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다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님을 늘 기쁘시게 해드리며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주님 은혜 내려 주옵소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함께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누가복음 15장 25절로 32절의 말씀 가지고 “미움과 분노”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미움과 분노” “미움과 분노”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미움과 분노가 모든 환경을 뒤덮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축구 시합이 뭐기에 브라질에서 7대 1로 독일에 졌다고 온 국민이 분노하고 대통령 자리가 어려워질 정도로 전국적으로 폭동이 비슷하게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사람의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다가오면 참 예측하지 못하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생겨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힘으로는 이 미움과 분노를 어떻게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올 때에 우리 마음 가운데에 있는 미움과 분노, 상처, 고통을 치료함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믿고 거듭난 다음 “예수님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내 마음을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 가정을 다스려 주옵소서. 환경을 다스려 주옵소서. 하나님의 귀한 역사가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늘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시간 집 나갔던 아들이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안에 또 하나의 탕자가 있었어요. 그것은 큰 아들입니다. 동생이 이렇게 회개하고 돌아왔는데 그를 미워할 뿐 아니라 분노해서 아버지에게 대들은 그러한 내용이 오늘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 통해서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귀한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분노하는 세대
먼저 분노하는 세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인하여 너무 기뻐서 목욕을 시키고 새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새 신발을 신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다가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고 있을 때에 맏아들은 그것을 모르고 밭에서 일하고 있다가 들어오는 길에 집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5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그 무슨 일인가 하고 하인을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26절과 27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에 화가 확확 치밀어 올랐습니다. ‘아니 아버지 재산을 갖다가 다 탕진하고 허랑방탕하고 돌아온 녀석을 뭐가 잘났다고 잔치를 베풀어주고 있는가.’동생도 밉고 아버지에게는 섭섭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어요. 그래서 그 하인이 “들어가시지요.” 그러니까 “안 들어간다. 내 기분이 나빠서 내가 안 간다. 안 들어간다.” 그래서 뛰쳐 들어가서 말합니다. “주인어른, 주인어른, 큰 아드님이 밖에서 화를 내고 안 들어온답니다.”그래서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데리러 나갑니다. 15장 28절을 보니까,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가 달려 나와서 “애야, 네 동생이 살아왔다. 얼마냐 기쁘냐.” 그런데 그는 하나도 기쁘지 않았어요. “뭐가 기쁩니까. 아버지 재산 다 가서 탕진하고 가문에 먹칠을 하고 사람들에게 저런 못된 녀석이 있냐고 하는 비판밖에 받은 것이 없는데 뭐가 좋다고 그 녀석에게 그런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까.” 화가 치밀어 올라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 속에 살아갑니다. 지난 금요일 목사님 간증을 들으니까 일찍이 아버님이 어머니와 헤어져서 집을 나가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마음속에 미움, 분노, 원망, 섭섭이 가득 차 있다가 중3이 되었는데 어느 날 들어와서 그 엄마한테 말합니다. “엄마! 나 핸드폰 사줘.” “야야, 넌 아직 핸드폰 갖고 다닐 때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돈이 없으니 나중에 해줄게.” “당장 사네. 당장 사네.” 그래서 엄마가 말합니다. “아니 지금 사줄 돈이 없대도.” 그러니까 부엌에 들어가서 식칼을 들고 나왔어요. 죽여 버린다고. 아니 자기 엄마를 죽여 버린대요. 그 핸드폰이 뭐라고. 그래서 어머니가 너무 놀라서 집을 뛰쳐나왔는데. 마침 그 집에 목사님이 구역장을 데리고 심방을 온 거에요. 자. 이 목사님이 ‘들어가야 되냐. 말아야 되냐. 칼 들고 있다는데 내가 들어갔다가 찔리면 어떡하나.’ 그런데 구역장들이 다 쳐다보고 “빨리 들어가세요. 들어가세요.” 그래서 ‘믿습니다.’하고 들어가서 그 애를 보니까 너무나 불쌍하더래요. 핸드폰 하나 때문에 칼을 들고 엄마를 죽인다는. 그래서 그 애를 무조건 끌어안고 그냥 계속 울었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막 화가 치밀어서 칼을 들고 누구든 죽이려고 그랬는데 누가 웬 분이 교회에서 왔다는데 자기를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데 눈물이 머리로 뚝뚝 떨어지니까 평생 자기 아빠에게 받아보지 못한 사랑, 아빠는 늘 야단치고 소리치고 때리고 그런 아빠였는데 이렇게 꼭 자기를 안아주고 눈물 흘리는 그 눈물에 그냥 아이가 녹아지고 변화가 되었어요. 할렐루야.
예수 잘 믿고 변화 되어서 귀한 하나님의 자녀로 지금 신앙생활 잘 하고 있는데, 이처럼 분노가 무서운 거예요. 아니, 그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쌓여서 엄마를 죽이겠다고 식칼을 들고 어머니에게 대드는 이러한 자녀가 있는데 그것도 중3. 어린 아이들이 그렇게 부모가 손을 데지 못할 정도로 막 그 미움 분노로 가득해서 그것을 발산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우리는 분노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부부간에 분노하고 다투고 부모 자식 간에 이웃 간에 가까운 이웃을 돌아볼 때, 그런 상처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분이 많이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게 됩니다. 특별히 여객선 침몰 사건 이후에 또 각종 사고가 터짐으로 말미암아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합니다. 여러분, 희노애락은 우리가 인간이 느끼는 기본적인 감정입니다. 웃고 슬퍼하고 또 화를 내고 즐거워하는 그러한 감정은 다 있는데, 문제는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나를 다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6절에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화가 난 상태로 오래 갖고 있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 , 마음을 잘 다스려서 이 분노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내 힘으로 못 가라앉혀요. “주님 내가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가득합니다.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의 보혈로 나를 덮어주옵소서.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옵소서.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옵소서. 내 마음에 평안함을 주옵소서.”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큰 아들 가인과 둘째 아들 아벨을 낳았는데, 가인이 곡식을 추수해서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아벨이 어린 양을 그 하나님께 드렸을 때에 그 어린 양 첫 새끼를 드린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고 가인의 것은 받지 않으시자 가인이 분노했어요. 하나님 앞에 분노하고 자기 동생에게 분노했어요. 그래서 동생을 돌로 쳐 죽었어요. 인류 최초의 살인자로 그는 성경의 역사 가운데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받지 않으셨을 때에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왜 제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양의 첫 새끼 어린양을 드렸어야 하는 것입니까”라고 물어보기만 했더라도 동생을 돌로 쳐 죽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분노를 견디지 못해서 돌로 쳐 죽이고 말았어요. 여러분, 분노가 우리 삶 가운데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가져 옵니다. 분노는 우리를 파괴합니다. 개인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모든 것이 우리 삶 가운데 잘못되게 만드는 그러한 원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이렇게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틈타서 우리를 충동시켜서 악한 행위를 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하고 마음에 분노를 품자 악신이 임하고, 또 민족의 영웅인 다윗을 향하여 창을 던지고 군대를 풀어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사울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전쟁에서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는 아무런 문제 해결도 가져 오지 않습니다. 분노는 다툼을 일으키고,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우리 삶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미국 피츠버그대학교의 카렌 매슈스(Karen Matthews) 박사는 분노를 마음속에 묻어 두는 여성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경동맥이 두꺼워져 동맥경화의 위험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정신의학전문지에 발표를 합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200명의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분노를 마음에 담아두는 여성은 동맥경화의 전조(前兆)인 경동맥이 두꺼워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러분, 분노는 건강을 해치고 판단력을 잃게 합니다. 모세가 한 번 분노함으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물이 없다고 불평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위를 명령해서 물이 나오도록 하게 했는데, 그가 화난 것을 참지 못하고 지팡이로 바위를 내려치면서 “내가 너희들에게 물을 내랴”하고 소리를 질렀을 때, 그 분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그러한 모세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 분노 한 번 때문에 4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가나안을 바라만 보기만 하고 들어가지 못했어요. 여러분, 오늘 여러분 마음 가운데 어떤 미움이 있습니까. 어떤 분노가 있습니까. 어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속에 그로 인해서 깊은 상처가 남아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주여 나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주님 나에게 상처 입힌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내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게 하옵소서.”이 분노는 또 전염성이 있어요. 한 사람이 화를 내면 옆에 사람이 덩달아 같이 화를 내고 집단행동을 할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공회에서 말씀을 전할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이 분노하고 그를 돌로 쳐 죽였어요. 사도행전 7장 54절, 57절, 58절에 보면,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 마음의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그 공회에 있는 사람들은 다 제사장, 바리새인,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인데, 그들이 돌로 쳐서 스데반을 돌에 맞아 죽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 분노를 억제하고 다스려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힘으로 할 수 없어요. “사랑의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내 삶 속에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불평과 섭섭함이 사라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내 마음에 기쁨과 평안과 자유와 치료와 용서가 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03년 2월 18일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것은 방화범 김 모 씨가 분노해서 불을 질렀는데, 뇌졸중으로 쓰러진 다음 병원에서 완치가 안 되었어요. 오른쪽 상반신 하반신이 마비가 오니까 삶을 비관해서 분노해 가지고 불을 질러 버린 거예요. 2008년 국보 1호 숭례문을 태운 최 모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배우자, 자식과도 사이가 안 좋았고, 공공기관과 토지보상 문제로 송사를 벌이다가 판결이 불만족스럽게 나오자 홧김에 가서 불을 질러 버린 거예요. 이와 같은 방화 사건들 본 중앙일보 이규연 논설위원이 이와 같은 기사를 썼습니다. “이런 사건들은 억울한 일을 당하여 분노를 참아내지 못하고 벌어진 일들이다. 배려, 관용이 적고 경쟁, 모멸이 폭주하는 사회에서 화가 난 은둔자의 수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절대 자신을 십자가 앞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 앞에서도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모욕을 당하면 분노하잖아요. 누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면 그를 미워하고 분노하잖아요. 그런데 이사야 53장 7절에 보니까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할렐루야! 분노가 일어날 때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를 다스려야 합니다. 잠언서 15장 1절에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언서 16장 32절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할렐루야! 어떤 분노를 갖고 오셨습니까. 어떤 미움을 갖고 오셨습니까. 어떠한 섭섭한 마음을 갖고 오셨습니까. 어떠한 마음에 눌린 것을 갖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예수님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으세요. “주님, 나는 어떻게 못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미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에 상처를 준 그 사람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만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여러분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으세요.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나를 덮어서 이 시간 내 마음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주님께 맡길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2. 자기 의로움 위에 선 사람들
 둘째로 자기 의로움 위에 선 사람들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맏아들은 자기 의로움 위에 서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 29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아버지, 나는 바르게 살았어요. 나는 잘못한 것이 없어요. 그런데 왜 저 녀석에게는 저런 잔치를 베풀어 주고 나는 이렇게 대접하시는 거예요?” 아버지에게 대든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스스로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가 자기만 옳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대화할 때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만 옳아요.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자기주장만 합니다. 그러니까 싸움과 갈등이 끊임이 없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한 적도 없고, 시키는 일을 다 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가서 땀 흘리며 일하고 했는데 왜 나에게는 저런 대접을 안 하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온 못된 저 녀석에게는 저런 대접을 하십니까?’ 스스로 자기 의로움에 도취 되서 동생을 판단하고 아버지를 판단한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십계명을 다 지킵니다.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을 합니다. 유태인의 금식은 해가 떠 있을 때 하는 것입니다. 해가 지면 다음 날이기 때문에 해가 지면 음식을 먹어요. 그러니까 해 떠 있을 때 금식을 일주일에 이틀씩 했어요. 또 저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행위로써 나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왜? 스스로 자기들이 옳았기 때문에 의의 본체가 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어요. 얼마나 자기 의로움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자기 의로움이 교만으로 바뀌고, 교만이 독선으로 바뀝니다. 자기 밖에 모릅니다. 남을 늘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여러분, 교회를 상처 입히는 것이 외부 세력 보다는 교회 내에 자기 의로움이 교만으로, 독선으로 발전된 사람들입니다. 크게 부흥하던 한 교회에 싸움이 났습니다. 큰 싸움이 났습니다. 목사님 지지파, 반대파가 싸움이 나서 목사님이 감옥에까지 다녀오고 그 수천 명 모이던 교회가 교인들이 지금도 싸우고 있어서 교회 건축하고 빚을 갚지 못해 교회가 경매에 나와서 팔리게 되는 그러한 신세가 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말로 다 할 수 없어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이 스스로 나만 옳다고 하는 잘못된 주장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내가 잘나서 교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할 일은 엎드려 기도하는 것입니다. 회개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겸손히 낮아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우리 주님 한 분밖에 없어요. 우리는 다 겸손히 주님을 섬기는 주님의 종들입니다. 그런데 교만해서 남을 판단해요. 보세요. 마태복음 7장 4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한국 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는 그런 말이 있어요. 자기는 얼마나 냄새 나게 온 몸에 똥이 다 뒤덮여 있고 남에게 혐오감을 주는데 겨 묻은 개를 보고 “야, 거기 옷에 묻은 것을 털고 지내라고.” 여러분, 이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만이 의로운 재판장이 되십니다. 시편 7편 11절에 말씀합니다. 따라하세요.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할렐루야. 완전히 의로우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재판장이 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십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하나님께서 불의를 멸하시고, 하나님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봉사 할수록 교회 물질로 봉사하고,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남녀선교회로 봉사하고, 찬양대와 오케스트라로 봉사하고, 무엇으로 봉사하고 섬기든 간에 겸손히 낮아져서 ‘주님만 홀로 높임 받으시옵소서.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따라하세요.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 자세로 평생 주님 섬기면 마지막 때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이와 같이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에,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할렐루야. 감리교에는 남자 권사가 있어요. 가정의학과 의원 원장이신 최재빈 권사님. 인천 새누리교회 권사님이신데요. 모태신앙으로 자라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모범생이었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열심히 봉사하고 늘 자기 의로움에 가득 찼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제일 봉사를 잘 하고, 내가 칭찬 받을 만하고, 내가 하는 것은 다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된다. 이런 교만에 가득 찼어요. 의사가 되고 나서도 늘 자신이 잘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주님 앞에서 헌금도 많이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하니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만하다 하는 자기 의로움에 둘러 쌓여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고가 났습니다. 주차타워에서 차가 사고로 떨어진 것입니다. 보통 이런 사고가 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합니다. 정신을 잃었다 깨보니까 하나님의 역사로 차는 박살이 났는데 본인은 옆의 대퇴골, 환도뼈만 부서지고 생명은 위험하지 않게 되었어요. 거기서 하나님 앞에 회개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내가 교만했습니다. 나 혼자 교회를 다 받들어 섬긴 줄 알았고, 나 혼자 잘난 줄 알았습니다. 날 용서하여 주옵소서. 그가 눈물로 회개하고 그때부터 동남아의 여럿 빈약한 곳에 가서, 어려운 곳에 가서 의료봉사를 합니다. 캄보디아 빈민촌에 가서 의료봉사를 하는데 에이즈에 걸린 한 소녀를 진료하면서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체험합니다. 눈물로 주님 앞에 회개하고 그 소녀를 돌봐주는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계기로 해서 매달 에이즈 환자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후원하고 캄보디아에 우물을 파서 사랑을 나누어 주고 그와 같은 의료선교사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지난날 저는 이기적인 야곱이었습니다. 자기 의로움에 빠져 남을 쉽게 판단하고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남보다 대접받기를 원하는 ‘맏아들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닌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께 업혀 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열정과 사랑으로 주님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전도하며 의료선교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할렐루야. 절대로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자신의 의로움, 자기 자랑을 앞세우지 말고 주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고 겸손과 온유를 옷 입고 이웃의 어려움을 돌보고 섬기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부정적 자화상
셋째로 부정적 자화상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29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얼마나 자기가 부정적인 자화상에 가득 찼던지 자기는 그 큰 부잣집의 맏아들로서 모든 재산을 물려받을 사람인데 그의 아버지에 대해 생각하기를 아버지는 아주 인색하고, 엄격하고, 사랑이 없는 아버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난 늘 그런 아버지 밑에서 그저 죽도록 일만 하는 그러한 나의 운명이었다. 이렇게 아마 살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뼈 빠지게 일했는데 염소 새끼 한 마리 준 적이 없고 친구들하고 와서 잔치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 저 아버지 재산 말아먹은 녀석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다가 잔치라니. 이거 어떻게 된 겁니까? 아버지, 아버지 잘못 되었어요. 아버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하나님이신지 우리를 죄 가운데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보세요. 좋으신 아버지에 대한 그러한 이미지도 없었고, 동생에 대해서도 동생을 동생이라 하지 않고 아들로 표현하며 동생과 아버지를 함께 비판합니다. 누가복음 15장 30절에,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동생이 돌아왔다고도 안했어요.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당신의 아들이 돌아왔는데 이런 잔치를 베풀어주십니까?” 얼마나 그는 부정적인 생각에 가득 사로잡혔던지 아버지를 비판하고 동생을 비판하고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동생에 대해서도 미움으로 가득해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참 좋으신 아버지, 그러한 모습이 전혀 그에게는 있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5장 31절, 32절에 말씀합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 모든 것이 다 너의 것인데 왜 불평하고 있느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요한복음 3장 16절에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해서 우리 다 같이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절대 긍정의 모습을 회복하고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따라해 주세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늘 고백해야 되요. 나는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나를 무시해도, 나를 짓밟아도, 나를 막 갈기갈기 찢어놓도록 상처를 줘도, 전혀 그것으로 인해서 여러분이 절망하고 주저앉을 필요가 없어요. 왜?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받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 사랑받고 있다. 사랑받고 있다. 사랑받고 있다. 할렐루야.

절대로 원망 불평하지 마세요. 남 탓 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절대 긍정의 자화상을 가지고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어릴 때부터 스스로 자기의 생각을 부정적인 자화상에 가둬놓고 사는 사람은 평생 그 삶에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과 상처만 가득히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왜? 스스로를 그렇게 자기가 패배자로 인식하고 살기 때문에 나는 실패했다. 나는 안 된다. 나는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버림받은 자다. 나는 어디가도 인정받지 못한다. 나는 해도 되는 일이 없다. 여러분, 그 부정적인 자화상을 뜯어 고치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려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뜯어 고쳐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살아가십시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늘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혀서 어두운 것만 보고 어두운 이야기만 합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늘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긍정적인 것을 보고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바꿔야 합니다. “주여, 내가 오늘부터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바뀌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버림받았다, 나는 상처 입은 사람이다, 나는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다 이런 고백을 하지 마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나는 치료함을 받았다. 나는 새 사람이 되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나는 축복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제는 승리하며 살아간다. 주님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내게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믿음의 고백을 해야 되요. 여러분,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이 골프를 친다는 거 생각해 보셨습니까? 뭐 보여야 치죠, 보여야, 눈을 뜨고도 잘 못 치는데, 그런데 최규일 선수는 일급 시각 장애인으로 밝고 어두운 것 밖에는 구분이 안 돼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골프를 치기 시작해서 도쿄에 가서 세계 시각장애인 골프대회에서 3위까지 했어요.그런데 이 분은 원래 손재주가 많아서 보석을 강화하는 귀금속 공장을 차리고 돈을 많이 벌었는데, 어느 날 계속 보석을 닦아도 흠집이 안 없어지더래요. 이상하다. 왜 그런가. 그래서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한테 눈을 정밀 검사를 해 보니까, 베체트병(자가면역증)이라고, 저도 처음 알았어요. 이게 희귀난치성질환인데, 이 병에 걸리면 점점, 점점 눈에 시력을 잃고 점점 눈이 멀어버리는 것입니다. 시력이 1.5였는데 점점, 점점 눈이 나빠지는데, 그 다음 약을 너무 독한 약을 먹어서 그런지 치아가 다 녹고, 머리카락이 빠지고, 나중에 다리마저 불편하게 되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되고, 완전히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다시 꿈과 희망을 가졌어요. 맹인학교에 가서 시각 장애인으로서 골프에 도전을 합니다. 2008년 골프 경력 1년 만에 국내대회에서 1위를 차지하고 연속으로 3연패를 달성할 뿐 아니라 200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 시각장애인 골프대회’에 나가 자기를 가이드 해준 아들 앞에서 세계 3위를 합니다. 공을 놔주고 공이 지금 어디 있습니다. 하고 위치를 말해주고 치는 거예요. 지금 어느 쪽에 떨어졌습니다. 하고 가서 그 앞에 가서 그걸 보고 치는 거예요. 근데 감각으로 치는데 정확하게 공이 맞아서 딱딱 떨어져서 아주 좋은 스코어를 내게 되고, 또 홀인원이라고요. 한 번 쳐서 들어가는 게 있어요. 거예요. 홀인원도 하고 그랬어요.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시각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몸에 이상이 생기자 가정도 불화가 생겼고 아픔을 참기 위해 약을 먹었는데 부작용으로 신장이 찢어져서 혈뇨를 보기도 했습니다. 가정불화로 인해 반항심이 생긴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것이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눈이 차츰 빛을 잃어갈 즈음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당당한 아버지가 되자’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자 골프선수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어 하나님께서는 세계에 알리는 골프 선수가 되게 하셨고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게 하셨습니다.”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에 절대 긍정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앞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성령 충만 받아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환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하시고 절망이 변하여 희망이 되게 하시고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고 문제가 변하여 응답과 해결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오늘 모든 부정적인 자화상을 벗어버리시기 바랍니다.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자기 자신을 늘 패배자로 여기고, 또 미움과 분노로 차 있던 이러한 모습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미움과 분노 대신에 사랑과 용서를 여러분 마음 가운데 가득 채우시고, 자기 의로움 대신에 겸손과 하나님의 공의로 무장을 하고, 나아가서 부정적인 자화상 대신에 긍정적인 자화상을 옷 입고, 믿음의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함으로 위대한 축복과 승리를 체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모두 다 큰 아들처럼 자기 의로움을 내세우고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던 또 하나의 탕자였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후로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에 미움과 분노를 내려놓고 사랑과 용서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되, 절대 긍정와 절대 감사로 무장하여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으로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도록 우리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2014년 7월 13일 주일설교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