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7-14)

오늘 빌립보서 3장 7절로 14절 말씀 가지고 “삶의 이유”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삶의 이유” “삶의 이유”

만약에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삽니까?” 이렇게 물어볼 때 분명한 삶의 이유를 대답할 사람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아, 저요? 행복하게 살려구요.” “무엇이 행복입니까?” “돈 많이 버는 거요.” “그런데 돈 많이 버는 사람도 감옥에 들어가고 그러는데요?” “글쎄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요.” “그것도 다 행복해 보이지 않던데요?”

진정한 행복이 어디 있습니까? 이 세상의 것에 진정한 행복이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우리 마음에서 발견해야 되는데 예수님을 모신 사람들만이 예수님 안에서 참된 행복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 앞으로 나의 가야 할 마지막 목표가 어디인지를 분명히 알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가 참 행복한 삶을 살아야 돼요. 보람 있게, 의미 있게.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 번 따라하세요. “예수님 안에서 나는 행복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행복한 것이에요. 세상이 가져다주지 못하는 그 행복이 있습니다. 그 기쁨이 있습니다. 그 평안함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많은 것을 우리가 배우고 또 세상적으로 인기를 얻고 높은 위치에 있다고 할지라도 예수님 없이는 그건 참된 행복이 아니에요. 다 이 세상 것은 지나가고 맙니다. 잠깐이면 지나가요.

요즘 한창 인터넷만 보면 “강남 스타일” 그래가지고 사람들이 뒤집어 지는데, 글쎄요. 얼마를 갈까요? 지금 미국 CNN에서도 나오고 난리가 났는데, 그래가지고 또 누구는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 스타일”을 또 만들어가지고, 그래서 누구는 저에게 “목사님. 여의도 스타일” 한번 하라고 하고, 그런데 그러한 스타일도 다 지나가고요 예수님 스타일만 남는 겁니다. 이 세상 것은 다 지나가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그런데 예수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어요.

1. 내가 포기해야 할 것
첫째로 내가 포기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포기해야 될 것.

빌립보서 3장 7절로 8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가 먼저 주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될 것이 있어요. 예수 믿기 전에 내가 가졌던 대부분의 것들을 내려놓아야 됩니다. 나의 삶에 나 스스로의 만족함을 가져왔던 그런 것들을 내려놔야 돼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넘치게 우리에게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자기의 의로움에 사로잡혀서 늘 자기 것을 붙잡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그것을 다 내려놨어요. 그는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4절로 6절을 보면,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흠이 없는 자다 그랬어요. 날 때부터 시민권자예요. 로마 시민권자는 굉장히 특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부러워하는 그러한 시민권자였는데 나면서부터 로마시민권자죠, 또 그의 혈통도 좋았고, 또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인정받았고 당시 최고의 학벌인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공부를 했고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어요.

또 유대교에 충성을 해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을 이단인걸로 생각해서 교회를 무너뜨리고 예수 믿는 사람 붙잡는데 앞장을 섰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을 만난 다음 모든 것이 바뀌어졌어요. 이 교회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이 연구한 사람들의 그 연구에 따르면 사도 바울이 한 60년을 살았는데 처음 30년 예수님 만나기 전까지 30년은 자기 의로움에 갇혀 살았다가 자기중심의 삶을 살다가 예수님 만난 다음 완전히 삶이 바뀌어져서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예수님만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가 60세쯤 되어서 네로 황제 시대에 붙잡혀 참수형을 당해 순교합니다만 그 30년 동안 이룬 업적은 대단해요. 신약성경 27권중에 13권을 기록했고요. 또 히브리서도 그의 영향에 의해 쓰여 졌으니까 27권 중에 14권이 바울이 썼던지 바울의 영향에 의해 쓰여졌던 책이에요. 얼마나 놀랍습니까.

당시 소아시아 이 터키 지역 전체를 다니며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죠. 유럽 전역에 교회를 세웠죠. 그 당시 세계 선교여행을 3번이나 하면서 온 지역에 교회를 세우고 마지막에는 로마에 가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그곳에서 많은 책을 기록 하고 또 그곳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위대한 사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난 다음에 그가 그렇게 변화 된 거예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라는 것은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아는 지식, 주님의 사랑을 체험해야 되요.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는 하루 교회를 나와도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 만나야 돼요. 만날 때 그 삶이 바뀌어지는 것입니다. 완전히 뒤바뀌어 져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주님과 교제하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주님이 사십니다. 주님께만 영광 돌리고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나의 모든 것 다 맡기고 하나님의 귀한 뜻 이뤄나가는 주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세리 삭게오가 나옵니다. 요즘 말하면 세무장 삭게오인데, 이 삭게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존경을 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세리들이 로마 관원의 앞잡이가 되어 가지고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어 들여서 일부는 자기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로마 정부에 상납을 해가지고 모든 동족들이 미워했습니다. ‘저 반역자, 배신자’ 그래서 가장 멸시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세리였어요. 그런데 예수님 만난 다음에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을 집안에 모시고 나서 그가 고백합니다. “나의 재산 절반을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돈이 최고인줄 알고 움켜지고 살았는데 여러분 돈이라는 것은요 하나님이 잘 쓰라고 주신 것이지 움켜지라고 준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 로또 복권해가지고 돈 많이 당선 탄 사람들 다 끝이 불행했어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줄 알았지만 가정에 불행을 가져왔어요. 가정이 깨지고 그로 해서 원수가 되고 그래서 이 돈은 잘 쓰라고 줬지 움켜지라고 하면 오히려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입니다.

그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 그랬잖아요. 본인이 깨달은 거예요. 지금까지 자기가 돈을 목표로 살았는데 돈이 내 삶의 전부가 아니구나 그래서 혹시 내가 억울하게 돈을 많이 징수한 것이 있으면 4배로 갚겠습니다. 내 재산 절반을 나눠주고 아마 굉장히 재산이 많은 거 같아요. 재산의 절반을 나눠주고 4배나 갚겠습니다 하고 크게 삶을 주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이렇게 달라졌어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 벌거벗음으로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 빈손으로 갑니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져도 그것을 다 안고 관에 들어가지 못해요. 다 놓고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 잘 살아야 되죠. 행복하게 살아야 되고 기쁘게 살아야 되고 베풀고 나누며 살아야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중세의 성자로 불리는 어거스틴은 17살 때 집을 나가가지고 좀 방탕하게 살았어요. 이단에도 빠지고 또 세상 쾌락을 따라서 살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애도 낳고 뭐 그랬어요. 그런데 그 어머니 보니까 늘 눈물의 기도를 합니다. 어느 날 그가 정원에 있는데 마음에 감동이 와서 무화가 나무 밑에 뛰어갔을 때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제 너의 과거를 청산하고 내게로 돌아오라 그의 참회록에 보면 이러한 기록이 나옵니다. “그때 내 속에서는 커다란 폭풍이 일어났습니다. 내 눈에서는 홍수 같은 눈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무화과나무 아래 몸을 던지고 눈에서 강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습니다. 그것은 당신께 드려진 합당한 제사였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라틴말로 톨레레게 톨레레게 그 말 들리는데 들고 읽어라 들고 읽어라 그래서 얼른 뛰어 들어가서 성경을 펴서 탁 펼쳤는데 로마서 13장 13절, 14절이 나온 것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여기서 그가 꼬꾸라졌어요. 통회자복을 하고 세례를 받고 신학을 하고 북아프리카 히포 라는 곳에 들어가서 평생 동안 교회를 섬기며 많은 신학저서를 남겼는데 그 신학저서가 중세 신학의 기초를 놓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그렇게 사모하던 주님을 꿈에 만났는데 주님이 물으셨어요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그때 어거스틴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무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주님만을 원합니다.” 할렐루야.

우리 같으면 뭘 원하느냐. 예. 첫째로요 우리가 지금 집이 없거든요, 집을 가족이 많으니까 40평짜리 하나 주시구요, 우리 애가 결혼 적령기인데 아직 신랑 될 사람이, 좋은 신랑도 주시구요, 내 남편이 건강해야 되는데 너무나 비리비리 하니까 건강도 주시구요, 그리고요 제가 몸이 많이 불었는데 좀 다이어트도 하게 해주시구요. 우리 같으면 그렇게 했을 거라 그말이예요.

그런데 성 어거스틴은 믿음이 성숙해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만 원합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다 주신 거예요. 왜, 주님 모든 것 되시니까 여러분 우리가 나를 위해 살면 내가 있는 것조차도 다 잃어버리게 되지만 주님을 위해 살면 주님이 없는 것까지 다 주시는 거예요. 전 이왕이면 이렇게 좀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야지 어린애처럼 밤낮으로 뭐 달라고 조르기만하고 그러지 말고 “내 무엇 주님께 바치리이까.” 할렐루야. 할렐루야.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라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사도 바울의 일생의 신앙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이 은혜가 있어야 되요. 따라하세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십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는데 자꾸 내가 왜 아무 것도 아니야 내 자랑을 해야지 하고 내 옛사람이 나를 과거의 모습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습은 내 맘대로 살았잖아요. 화내고 싶을 때 화내고 소리 지르고 싶을 때 소리 지르고 미워하고 싶을 때 미워하고 좀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게 살았잖아요. 그런데 예수 믿고 나서 그것을 청산해야 되는데 하루아침에 청산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7장 21~23절에 그 갈등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로마서 7장 21절로 23절에,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그랬어요. 늘 둘이 부딪히는 거예요. 그래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법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랬는데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느냐 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돼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십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모든 것 되십니다. 그러면 주님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첫 번째 관문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거예요.

마태복음 16장 24절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부인이 문제라고 부인이 아니고 나를 부인하는게 문제라고. 잘 알아들으셔야 되요. 찰스 스투드 선교사님 계신데요 이분은 세계적인 선교잡지인 WEC(Worldwide Evangelisation Crusade) 선교회를 창시한 선교사인데요. 이분은 15년을 중국선교, 6년을 인도선교, 마지막 남은 여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바친 아주 귀한 분입니다. 그는 귀족출신이고 부잣집에 태어난 사람으로 캠브리지 대학을 다녔는데 어느 날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어디서. 무디 목사님 와서 부흥회 할 때 거기 참석했다가 “너는 나를 위해서 네 자신을 바쳐라.” 그래서 하나님 앞에 꼬꾸라져 회개하고 그 다음 선교사로 자원을 합니다. 일생을 선교사 사역으로 바쳤는데 중국에서 사역하고 난 다음 그 부모가 돌아가셔서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을 때 그 재산을 가지고 세계 선교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삶을 아프리카에서 바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다음에 이렇게 바뀌어 지는 거예요. 여러분 바뀌어져서 하나님의 큰 복을 받는 일꾼 되시길 바랍니다.

2. 내가 얻고자 하는 것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 둘째로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이 여기서 얻고자 하는 것에서 분명히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8절~9절에,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무엇을 얻는다고요? 그리스도를 얻는다. 여러분이 일생동안 마음에 소유하고 그것을 붙잡고 나아갈 것이 무엇이냐,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예수 왕 되신 예수여 나의 마음 가운데 오시옵소서.” 할렐루야. 우리 찬송 불렀잖아요. 예수 우리 왕이여 우리 찬송 내 마음 속에 오시옵소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얼마나 감사해요. 예수님이 나의 왕이 되셨으니까. 나의 모든 것이 되시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그리스도를 얻으면 모든 것을 얻는 것이에요. 그리스도를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주 앞에 늘 감사와 찬송으로 나가야 되요. (복음성가 121장 “예수 우리 왕이여”) 주님을 찬양 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내가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 밖에는 나의 삶에 참된 기쁨과 만족이 없습니다.

그 미국에서요 그 최근에 미국 2011년도에 400대 부자 순위에 88위를 차지한 장도원씨 부부가 있는데요. 이분들이 이렇게 큰 부자가 된 것은 예수 잘 믿어서 된 것 이에요. 81년도에 미국 이민가가지고 엄청나게 고생을 했어요. 햄버거가계에서 접시닦이도 하고 주유소에서 주유 넣어주는 종업원으로 커피숍에서 종업원으로 청소부로 이렇게 일을, 고생을 하다가 고생한 이분들이 옷 가게를 만드는데 지금 패션업에서 성공을 해서 전 세계 480개 매장에 3만 4천명이 직원이래요. 그런데 성공의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 잘 믿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제가 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 것 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느냐? 5대째 기독교 집안에 태어나가지고요. 미국에 와서 그렇게 고생하면서 여름에 단기 선교를 간 거예요. 단기선교 브라질의 아마존하고 중국 조선족을 선교 갔다 오면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너는 앞으로 주님 일 열심히 해라.” 여러분 우리 교회 청년들이 단기선교 가는 것 많이 도와주셔야 되요. 왜 아멘을 안하시는가 모르겠네. 가겠다 그러면 다 보내세요. 갔다오면 운명이 바뀌는 거예요. 그 삶이 바뀌어지는 거에요. 2주 3주 동안 그 선교지역에 가서 같이 봉사하고 하면서 정말 눈이 다시 떠지는 거예요.

밤낮 여기서 보호받고 좋은 것 만 먹고 있다가 그 친구들하고 같이 험한데 가서 불쌍한 사람 섬기는 것 섬기는 일을 하면서 자기들이 변화 받는 거예요. “아이고 이렇게 사는 애들도 있구나. 아이고 먹을 것도 없이 이렇게 굶어가고.” 정말 상상을 초월하게 고생을 다 하고 있는 불쌍한 우리 이웃들을 보면서 그들이 우리 아이들이 변화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는 겁니다.

제가 기억나는 것은 미국에 있을 때 저희 교회랑 가깝게 지낸 교회 가운데 이동원 목사님이 지구촌교회를 인도하셨는데요, 지구촌교회 중고등학생 중에 아 그냥 부모님 속 썩이는 애들이 그룹을 지어 다녔데요. 늘 부모들이 눈물 흘리면서 ‘우리 애들 우리 애들 정말 어떻게하면 애들이 변화되냐고’, 와서 그냥 얘기를 하고 그런데 늘 사고뭉치 학교에서 늘 경고장이 오고 학교에 불려 다니고 애들이 미국에 와서 제대로 그 미국 문화와 적응이 되지 않아가지고 말도 잘 안통하고 하니까 몰려다니면서 자꾸 나쁜 일 한거에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아이들 데려다놓고 저 아이들 해외여행 시켜준다 그러라고 그래서 부모들 불러가지고 아프리카 케냐를 보내자 그래서 해외여행 보내준다니까 애들이 신나가지고 거기 이제 리더와 두 세 사람만 딱 이제 성령 충만하고 나머지는 이제 그냥 들떠서 따라 갔는데 케냐 가서 3주 있으면서 다 뒤집어 져가지고 애들이 와서 간증을 하는데 온 교회가 울음바다가 됐데요.

그렇게 속 썩이고 막 부모에게 대들고 온갖 사고뭉치로 교회 내에서 학교에서 시끄럽게 문제를 만들어 냈던 애들이 완전히 새 사람이 되가지고 정말 부모에게도 또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사랑받고 칭찬받는 아이들이 됐다. 속 썩이는 아이들이 있으면 다 보내세요. 다 그 대신 여행 보내준다 하고 보내세요. 그런데요 이분이 그렇게 복 받게 된 것은 그다음 지금까지 돈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 이 돈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바치겠다. 그랬어요.

“그때 저는 결심했습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겠다고! 선교를 다녀와 이전에 사랑했던 것을 다 버렸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했던 것이 무엇인가’ 봤더니 돈이었습니다. 그래서 돈을 버리기 시작했고, 돈을 버렸다는 말은 선교하는데 썼다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수입의 십분의 일로 살았습니다. 십분의 구로 선교했어요. 아이들에게 사고 싶은 거 안 사주고 냉장고도 텅텅 비었습니다. 절대 돈의 노예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랬더니 막 부어주는 거예요. 막 부어주세요.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지 L.A 카운티에서 7번째 부자고 미국에서 400대 부자 중에 88번째라니까 대단해요. 선교에 큰 손으로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버리고 예수님을 얻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버리고 예수님 얻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명예를 버리고 예수님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그 의로움으로 무장해서 주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해야 되요. 고난을 통과하지만 부활의 권능에 우리가 참여해서 어떤 죽음의 고통도 우리가 넉넉히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절과 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우리에게 부활의 영을 주셨기 때문에 어떤 고난도 이깁니다. 문제도 이깁니다. 슬픔도 이깁니다. 죽음도 우리가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붙잡힌바 된 그 은혜에 감사해 주님을 향해 달려 나가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주님께 붙잡힌바 되어서 주님만 바라보고 달려 나가는 우리 삶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금방 지나가요. 오래 동안 천년만년 살고지고 할 것 같지만 100세가 되기 전에 물론 그 이상 사시는 분도 있지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하루를 정말 의미있게 보람있게 행복하게 기쁘게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야 돼요. 이제부터 부부싸움하지 마세요. 예수 믿는 사람끼리 부부싸움하면 회개하는 일이 많아서 안되겠어요.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세요. 위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할렐루야. 그러면서 살아야 되요. 언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지 모르시잖아요. 감사하며 살아야지요.

최근에 우리 교회 선교사님들이 천국에 두 분이나 가셔갖고 굉장히 지금 우리 선교사님들에 대해서 제가 관심을 많이 갖고 신경을 쓰는데 이민석 목사님이 북경에서 선교하시고 돌아오셔가지고 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수술을 하려고 오픈을 하고 보니까 그냥 온몸에 암이 다 퍼져서 수술을 못하고 도로 덮어버렸어요. 그리고 24시간 내에 세상을 떠난다고 그 소식이 들려왔어요. 하루밖에 못사신다는 거예요. 그래서 급히 갔지요. 가가지고 기도해 드렸어요. 자 여러분 의사선생님이 “당신 하루밖에 못삽니다.” 할 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될까요? 정말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하나님 영광 위해서 살아야 되겠지요. 그렇지요.

하루밖에 없는데 다른 것 걱정할 시간도 없어요. 내가 24시간 후면 끝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제가 가서 기도해드렸는데 막 얼굴도 새까맣고 누우셔서 “허, 허” 하고 계신데 저 의사의 눈으로 보면 하루에요. 그런데 주님의 눈으로 보면 하루가 아닌 것 같아요. 그 다음날 가서 기도하니까 그 다음날도 건강하게 계시고 그 다음날도 건강하게 계시고 그 다음날도 건강하게 계시고 할렐루야. 저는 그 하루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3주를 갔는데 아직도 살아계신데 점점 더 건강해지세요. 할렐루야.

1주일쯤 있으니까 의사가요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잖아요. 왜냐하면 수술도 못하고 이미 뭐 열었다가 도로 덮었으니까 그러니까 집에가 계시라고 병원에서 할 게 없다고 가셔서 몸이 좀 건강해지면 오셔서 다시 방사선 치료라도 하시자고 그래 일주일만에 더 건강해져서 들어오셔 갖고 지금 방사선치료하고 계신데 건강하세요. 얼굴도 훤하시고 어저께 갔더니 또 걸어 다니시더라고요 왔다갔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주님 영광 위해 살면 하루하루가 행복한 거예요.

3. 삶의 궁극적 목표
마지막 세 번째로 삶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빌립보서 3장 14절을 보면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딱 분명한 목표의식 내 삶의 유일한 목표는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따라하세요. “예수를 바라보자. 예수를 바라보자.” 늘 예수님 바라보세요. 언제나 주만 바라봅니다. 할렐루야. 주님만 바라봐야 되요.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주님만 믿고 나아갑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따라하세요.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할렐루야. 이 땅에서의 우리 목표는 예수님의 그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영적으로 예수님 모습을 닮아가서 예수님과 비슷한 작은 예수들로 변화되어야 돼요. 예수님처럼 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많이 닮은 모습. 할렐루야. 작은 예수로 살기 원합니다. 내 모습 속에서 나의 인간에 그러한 어떠한 탐욕이나 혈기부리는 것이나 그런 것이 보이지 않고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원합니다. 할렐루야.

속사람이 작은 예수로 변화되고 겉의 사람은 내가 구주로 모신 예수님을 만방에 증거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기쁨이에요. 그것이 행복이에요. 내가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내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고 예수님을 닮아가고 마지막 종착역에 주님이 탁 두 팔 벌리고 서시는데 달려가서 주님의 품에 안기기 원합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내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할렐루야. 아,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 앞에 인정받고 칭찬 받는 자 되기 원합니다.

여러분 이 세상 것 가지고 옳다 그르다 싸우고 뭐 욕하고 신경질내고 분노하고 그렇게 살면 인생이 얼마나 허무합니까? 여러분 “너 뭐하다 왔냐?” “마지막까지 열심히 부부싸움하다 왔습니다.” 그럼 되겠어요? 네 열심히 주님 일 하다왔습니다. 네 열심히 내가 예수님 모습 닮기 위해 노력하다 왔습니다.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칭찬받아야지.

마지막 순간까지 뭐하다왔냐? “혈기부리다 왔습니다.” “그걸 자랑이라고 하냐?” 우리가 그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 위해 정말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되요. 사도 바울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디모데후서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로 8절에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할렐루야. 할렐루야. 할렐루야. 여러분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세요.

사도행전 20장 22절로 24절 이런 고백을 합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요. 얼마나 감사한지요. 예수전도단에서 DTS로 그 DTS프로그램에서 제자들을 강의하시는 김길 목사님 이런 고백을 했어요. 『사명』이라는 책에서요, “목숨보다 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까? 사명을 이루자면 삶을 걸어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것은 없습니다. 꿈이 있다고 말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감동할 만큼 자신의 삶을 걸어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감동하셔야 합니다. 아무것도 안하고 적당히 죄 짓는 삶을 살면서 꿈을 이룰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사명에 있습니다. 따라서 에수님의 관심을 따라가야 생명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사명과 멀어지면 생명과 멀어집니다.” 여러분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바라보고 나가십시오.

빌립보서 3장 13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러분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세요. 과거의 상처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랑이 얼마나 나를 놀라게 하고 감격하게 하는지 사랑의 감격 속에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한 번뿐인 인생 오직 주님만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일생을 주님께 바쳐 헌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하겠습니다.

/ 2012. 8. 26. 주일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