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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할 때 예 하고 아니오 할 때 아니오 하라" (마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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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목사 설교] 선교에 목숨을 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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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01.14 16:14   

날짜: 2012년 1월 1일
본문: 마태복음 28:16~20
설교: 이재훈 목사
제목: 선교에 목숨을 건 교회

▲이재훈 목사(온누리교회)
예수님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지신 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선교를 감당하는 힘은 자원이나 인력이 아닙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19~20).

온누리교회의 머릿돌에 새겨진 이 말씀을 되새기며 한해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故하용조 담임목사님은 이 말씀을 붙잡고 온누리교회와 두란노서원, CGNTV를 시작하셨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생전에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도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선포해야 합니다. 선교에 목숨을 건 성도들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하 목사님의 비전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온누리교회는 선교에 목숨을 건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군함과 같은 교회

유람선 같은 교회와 군함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유람선을 타는 목적은 편리한 관광입니다. 돈을 지불한 사람들을 위해 고용된 직원들은 그 일이 자신의 직업이기 때문에 열심히 일합니다. 그들에게는 관광할 여유가 없습니다. 관광을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몇몇 관광객들만이 편리한 시설에서 좋은 경치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만약 교회가 유람선 같은 모습이라면 어떨까요.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는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의 목적과 필요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가 유람선이 된다면 그 교회는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군함 같은 교회가 있습니다. 군함은 보이지 않는 명령에 의해 움직입니다. 작전에 의해 움직이는 군함에 탄 군인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아무런 역할 없이 군함에 탄 군인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교회가 군함과 같다면 어떨까요. 모든 성도가 자신의 사명과 역할에 따라 움직인다면 그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하는데 쓰임 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유람선 같은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거나 편리가 제공되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것입니다. 반대로 군함과 같은 교회의 성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불편하다고 해서 뛰쳐나갈 수 없습니다. 명령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유람선 같은 교회의 성도로 살겠습니까. 아니면 군함 같은 교회의 성도로 살겠습니까. 온누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평생을 충성하기를 바랍니다.

모두에게 내려진 명령 ‘선교’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자기의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는 자기를 군인으로 불러 모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다”(딤후 2:4).
선교는 예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지 교회의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가 선교를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히 선교사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선교사가 되어야합니다. 선교는 일부 선교사들에게 내려진 명령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세례를 받으면 우리는 예수님의 군함에 승선하게 됩니다. 선교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만 하는 신분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선교에 대한 명령을 하신 것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을 때입니다. 그곳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한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경배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이곳이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예수님이 베푸는 기적과 가르침을 통해 신성을 경험했지만 예수님을 경배 한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땅히 드려야 할 경배를 드리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경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그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제자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이후에야 제자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 선교, 선교공동체

선교의 출발은 예수님에 대한 경배로부터 시작됩니다. 선교는 예수님이 주가 되신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5절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님이 되신 것과 예수 때문에 우리가 여러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어떻게 전파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누군가의 종이 됨으로써 예수님이 주님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이 되어야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진정한 선교는 예배공동체로부터 시작합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는 곳은 반드시 선교공동체가 됩니다. 故하용조 목사님은 온누리 공동체의 성격을 세 가지로 정의하셨는데 그것은 예배, 성령, 선교공동체입니다. 예배하는 공동체에는 성령이 임하십니다. 성령이 임하는 공동체는 반드시 선교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성령이 충만하고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는 곳에서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 사역은 다시 한 번 평가해야 합니다. 선교에 헌신하지 않는 성령사역은 방향을 잃어버린 위험한 사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성령사역은 단순히 질병을 고치거나 은사를 받는 것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병을 고치고 성령의 은사를 허락한 이유에는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는 바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고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사역을 병이 낫고 은사가 생기고, 은혜를 받는 것으로 그친다면 성령을 자신이 소유한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사도행전적 공동체

선교는 성령의 열매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진정한 성령사역은 선교의 열매가 얼마나 맺어지고 있는지를 토대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에 들뜨고 흥분되는 것이 예배의 모든 것이라고 한다면 진정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예배는 또 다시 성령사역으로 이어지고 성령사역은 다시 선교로 이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선교는 예배를 만듭니다. 예배가 없는 곳에 예배를 만드는 것이 선교이기 때문입니다. 예배, 성령, 선교공동체는 사이클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도행전적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선교사들이 가는 곳마다 예배공동체가 일어나고, 그곳에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그것이 선교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경배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명령을 하셨습니다.
“열한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 주신 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뵙고 경배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16~17절).
경배를 드리는 제자들 가운데에도 예수님을 의심하는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자신의 명령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이 불순종하고 연약한 제자들을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여기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동일하게 의심하고 있는 제자들도 결국 성령이 임하면 이 명령을 수행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의심이 많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의심이 변해 굳건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의심 많던 도마가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지 않았습니까. 의심은 때로 굳건한 확신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의 명령

예수님의 지상명령은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첫 번째는, 선포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게 주어졌다”(18절).
명령은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명령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하신 명령입니다. 지상의 어떤 명령보다도 가장 심각한 명령이요, 반드시 준행해야 하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지상명령(The Greatest Commission)’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자신의 것이라고 하지 않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 정의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미 갖고 계신 분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실 때 그 권세를 모두 내려놓으셨습니다. 자신의 권세를 포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다시 하늘의 권세를 받으신 것입니다. 즉, 십자가를 통해 받은 권세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분으로서 우리에게 명령만 하셨다면 그 명령이 우리에게 가깝게 들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실감도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같은 몸으로 사셨고, 가장 낮고 천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고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선교입니다. 얼마나 중요한 명령인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권세

“그분은 본래 하나님의 본체셨으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기득권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자신을 낮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입니다(빌 2:6~11).

여러분, 선교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들이 예수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님이 되신 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권력이나 무력으로 혹은 금전으로 무릎을 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으로 하나님이 주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으셨습니다. 이 권세는 세상의 권세가 아니라 십자가의 권세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권세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권세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권세이며, 이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아픔, 슬픔을 이해하는 권세입니다. 인간과 동떨어진 권세가 아니라 성육신 하신 분이 죽었다가 살아나신 권세를 가진 분이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신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우리가 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분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모든 권세를 가지신 분의 능력으로 이 명령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선교는 우리의 자원이나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의 초점 ‘제자로 삼는 것’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19~20절).
이 명령에는 “가라”, “제자로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4개의 동사가 나옵니다. 이 동사들의 의미는 “제자로 삼으러 가서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선교의 중요한 초점은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날 선교의 위기는 제자사역과 선교사역을 분리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역의 중심은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부분의 시간을 소수의 제자들과 보내신 것처럼 사역을 할 때에 사람을 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도 바로 이 이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분부한 모든 것입니다. 그것을 가르치고 지키게 해서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적입니다. 제자를 재생산해 내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가서 세례를 주고 제자로 삼는 것입니다. 저는 온누리교회가 하는 선교를 통해서 열방에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이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다시 오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20절).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은 시제가 미래가 아니라 현재형입니다.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육체적으로는 제자들을 떠나셨지만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하고 계십니다. 성령 안에서 그들과 항상 함께 계십니다.

선교사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또한 그들을 위한 안전장치는 무엇일까요. 선교사들을 위한 후원회와 기도회가 큰 위로와 안전을 책임지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의 임재가 그들에게 가장 큰 위로요, 안전장치입니다.

선교에 헌신하고 동참하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임재를 강력하게 체험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은 놀라운 일들을 많이 경험하지 않습니까. 현대 의학으로는 고치기 어려운 질병들이 기도로 나은 간증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는 왜 선교사들처럼 그런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까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은 현실에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는 표적을 경험한 이후에 선교에 동참하겠다면서 예수님의 권세를 가장 낮은 곳으로 가져다 놓습니다. 이러한 삶에는 기적이 나타나지 않을뿐더러 함께 하시겠다는 임재의 약속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지상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여러분, 예수님이 하신 지상명령에 순종하십시오. 순종하면 선교가 가능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 명령에 순종해 예수님이 하신 약속을 삶에서 체험을 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아멘”으로 응답하십시오. ‘아멘’은 진실로 그렇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아멘으로 응답하는 사람에게 임재의 약속이 있습니다.

지상명령에 순종한 선교사들이 없었더라면 복음이 어떻게 한반도까지 전해졌겠습니까. 지상명령에 순종한 사람들 덕분에 열방에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윌리엄 보덴이라는 선교사의 삶을 여러분과 나누길 원합니다. 그는 백만장자의 상속자였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그의 부모가 세계여행을 시켜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세계여행을 보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선교의 비전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부모님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저는 이제부터 선교사가 되기 위해 남은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성경책 뒷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으리라(No Reserve)”
그는 예일대학에 입학해 전교생 1,300명 중에 1,000명이 참여하는 성경공부 모임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에일호프미션’이라는 선교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졸업 후에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모두 거절하고 자신의 성경책에 또 다시 이렇게 썼습니다.
“물러서지 않으리라 (No Retreat)”
그러다 그는 이집트에서 척수뇌막염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그의 나이 26세였습니다. 얼마나 아깝습니까. 그는 자신의 성경책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후회하지 않으리라 (No Regret)”
세상의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인생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별처럼 빛나는 인생입니다.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삶은 결코 헛된 삶이 아닙니다. 1월 1일은 온누리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이신 박모세 선교사님이 소천한지 11주기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삶은 결코 헛된 삶이 아니었습니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명령에 충성하며 삽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이 선교에 헌신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명령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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