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 작품 <얼굴>, 2006
우리나라와는 정반대편에 위치한 남미의 한 나라 콜롬비아의 작가 ‘페르난도 보테로’(Fernando Botero)가 구현해낸 모나리자는 ‘뚱뚱하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모나리자는 그의 손을 통해 비정상적인 형태감과 양감을 가진 아줌마(?)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왠지 푸근하고 편안한 것은 왜일까?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미술관에서 페르난도 보테로의 작품들이 전시 중이다.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Medelin)에서 태어난 그의 그림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풍만하다. 20세기 유파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추구한 그는 그림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사물과 인체를 재해석했다.

그는 거장들에 대하여 연구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하는데 탁월하다. 다 빈치, 라파엘 등의 르네상스 거장에서부터 고야, 루벤스, 벨라스케즈, 뒤샹,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거장들의 작품이 보테로식 화면으로 변형됐다.

그가 그린 정물화 역시 특유의 양감이 두드러진다. 정물화에는 특히 화려한 색채감이 눈에 띄는데, 색감이 세련됐지만 전혀 차갑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원색을 기본으로 하면서 튀지 않고, 은은하다.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다.

따뜻한 마음 때문일까? 그는 라틴 민중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 어두웠던 중남미 지역의 사람들이 그의 그림에 종종 나타난다. 그림에는 춤과 노래를 즐겨했던 라틴 사람들의 일상이 특유의 뚱뚱한 양감으로 덧입혀져 표현됐다. 개중에는 생활고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호화롭게 차려 입은 귀족들도 있다. 세태를 풍자하고자 했지만, 특유의 양감으로 인해 어딘가 유머러스하다. 그렇지만 날카롭다.

그의 역량은 투우와 서커스를 주제로 한 그림에서 빛을 발한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투우 경기장은 그에게 작품의 영감을 불어넣는 중요한 원천이었다. 화려하게 시작하는 투우경기는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과로 끝이 난다. 그는 삶과 죽음을 마주하고 있는 소와 투우사들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모든 장면들을 그림으로 옮겼다. 화려한 조명 뒤의 정적과 고독을 표현한 서커스를 주제로 한 그림도 삶의 희로애락을 나타나기에 충분하다.

보테로 전시를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인 <얼굴>. 그림 속의 소녀는 황금비율을 무시한 채 뚱한 표정을 지으며 관객들을 바라본다.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 그 둥글둥글한 얼굴 속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내 마음도 저 얼굴처럼 둥글둥글해 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