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34장 강해

요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12절)

엘리후의 두 번째 연설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연설에서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욥이 교만하지 않게 연단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 연설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함으로써, 욥이 하나님을 원망했던 말들에 대해 책망합니다. 인간은 결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시비해서는 안 됩니다.

1. 무자비한 공격자, 욥

1-9절을 보면 엘리후는 지혜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듣고 귀를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입이 맛을 분별하듯이 무엇이 선한가, 무엇이 정의로운가 분별하자고 합니다.

엘리후는 그들에게 고난의 문제와 관련해 욥의 입장과 자신의 견해 중 어느 것이 옳은지 판결해 보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이 의롭고 정당하고 허물이 없는데, 하나님이 자신의 의를 부인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거짓말쟁이라 하셨고, 화살로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죄없는 자신에게 화살을 쏘는 나쁜 분으로 비방하였습니다. 욥은,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에게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공의를 비방하기를 물마시듯이 하였다고 합니다. 욥이 하나님에 대해 난폭한 행위를 했습니다.

물론 욥은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으며,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욥이 하나님을 무자비한 공격자로 여기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2. 공의로우신 하나님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나니 진실로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시느니라(10-12절)”.

욥의 말을 인용하는 것을 마친 엘리후는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성품이 얼마나 의로우시고 그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증명함으로써 욥의 말을 반박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정의를 변호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불의하지 않고 행위대로 심판하십니다. 엘리후는 총명한 자들은 내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악이나 불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말합니다. 그는 욥의 불경건한 태도가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을 가리운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이 일생을 통해 걸어온 길에 따라 정확히 보응하십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신실성에 정면 도전하였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전능자는 공의를 굽히지 않으십니다. 욥은 의로운데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의로운 자에게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이 불의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운 자에게 고난을 주셔서 더 정금같이 연단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의인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고난은 반드시 악인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마지막 날 하나님의 심판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공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 세상에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3. 공의로운 창조주

13-22절을 보면 엘리후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들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땅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누구도 그분께 이 땅을 돌보라는 임무를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입증하는 가장 궁극적인 기초는 하나님 만유의 주(主)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고 사람의 영과 목숨을 거두시면 모든 육체가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엘리후는 하나님은 만물을 사랑하시는 창조주시라고 말합니다. 육신을 가진 자들은 다 죽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에게 불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통치자요, 재판관이시므로 결코 정의를 굽게 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세상을 다스리겠느냐는 질문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귀중히 여기시는 분이기 때문에 세상의 주관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왕과 지도자와 고관과 부자를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부자의 낯을 봐서 불공평하게 대우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부자들을 한밤중에 순식간에 데려가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손을 대지도 않고 세력자를 제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그 걸음걸이를 살피십니다. 행악자가 하나님 앞에서 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눈을 사람의 길 위에 두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범죄자들에게는 몸을 숨길만한 어떤 장소가 있을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의 공정성과 즉각성

23-28절을 보면 하나님은 오래 생각하지 않고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조사하지 않고도 세력 있는 자들을 아시고 꺾으시고 다른 사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 심판의 공정성과 그 판단의 즉각성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행위를 아시고 그들을 밤 사이에 뒤집어 엎으시고 흩으십니다.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그때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습니다.

또한 모든 행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권력자들을 뒤엎으심으로, 다시는 그들이 권좌에 복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의 모든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 빈궁한 자를 억압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적 징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는 죄악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사용해서, 보살펴야 할 가난한 자와 눌린 자들을 도리어 핍박하므로 그 원성과 울부짖음이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압제당하는 자들의 절규와 신음 소리를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들으십니다.

5. 하나님과 욥, 누가 잘못하였는가?

29-35절을 보면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아무도 하나님을 정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시면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지 못한 자가 권세를 잡아서 백성을 옭아매지 못하게 하십니다. 누구도 감히 하나님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자들, 하나님의 법과 공의를 무시하고 짓밟는 사람들의 폭정으로부터 무고한 백성들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께 죄를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내가 다시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참회하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여 죄를 고백하고 그에 합당한 형벌을 감당하여 사하심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죄에 대한 고백 뒤에는 내게 가르치소서 하는 간절한 기도가 이어집니다.

욥은 나중에 엘리후의 이런 말의 영향을 받고 회개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판결을 불복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욥이 원하시는 것을 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느냐고 묻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네 뜻대로 잘못을 인정하겠느냐? 묻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공의로운 방법에 애매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욥 자신이 알고 있는 보응의 참다운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해보라고 요구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그 방법을 모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에 대해 불평하는 욥의 말이 얼마나 어리석고 무식한 것인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지적은 엘리후 자신만이 아니라 욥의 말을 들은 지혜로운 자는 누구든지 동의할 것입니다.

6. 자기 의를 주장하는 욥을 지적함

36, 37절을 보면 엘리후는 욥이 끝까지 하나님께 조사 받기를 원합니다. 그는 욥이 죄에다 반역까지 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말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시험받기를 원하다고 기원하면서 욥의 회개를 권고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기의 의를 고집하는 욥의 행동이 하나님을 조롱하는것이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말하는 핵심은 욥이 자신의 의를 주장하다,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창조주이시요 심판장이신 하나님은 결코 불의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우신 분이고 욥은 악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은 악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의

엘리후는 이전에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합니다. 우리는 엘리후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불의하지 않으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후의 말이 조금 지나쳤음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지나치게 주장하다가 욥을 너무 죄인으로 몰고 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롭다는 말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욥이 죄악되다는 말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특히 욥이 가난한 자나 빈궁한 자를 약탈했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합니다. 욥은 전혀 그런 적이 없습니다. 욥이 의를 주장한다고 하나님의 의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를 주장하다가 욥을 죄인으로 몰고가는 것도 잘못입니다.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시지만 그분은 때로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기도 합니다.

또한 엘리후는 욥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욥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의인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정의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정금과 같이 만들기 위해 의인에게 고난을 주십니다. 우리는 고난 받는 자를 깊은 사랑으로 이해하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