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오요한
욥기 33장 강해

요절: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23, 24절)

엘리후가 계속 욥에게 성령께서 자신에게 깨달음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욥을 연단하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 연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욥 사이의 오해를 중보자가 오셔서 해결해주실 것을 증거합니다.

1.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엘리후

1-7절을 보면 엘리후는 욥에게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고 합니다. 잠시 욥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던 방식을 버리고, 욥을 향해 직접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진실을 말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진실한 말씀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지은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과 동일한 피조물이지만, 전능자의 기운으로 자신이 영감되었으므로 자신의 말을 꼭 주의해서 들으라고 합니다. 욥은 자신의 말에 이의가 있거든 나의 말에 대항해서 반론을 펼쳐보라고 합니다.

그는 자신 역시 욥과 조금도 다름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인간적인 권위로는 욥에게 어떤 권고나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보다 나이가 어립니다. 엘리후는 더 위엄있는 위치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과 같은 피조물의 위치에서 말합니다. 그는 다만 성령의 권위에 의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로 대하였다는 욥

8-11절을 보면 욥은 자신이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셔서 질병의 고통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은 엘리후가 듣는데서 말하였고 엘리후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욥을 대적으로 여기신다고 합니다.

욥은 자신에게 환난을 주신 하나님이 마치 자기의 원수나 된 것처럼 불평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의를 주장하다가,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여긴다고 지적합니다.

3.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다

12-14절을 보면 엘리후는 욥의 말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욥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알지 못하는 크신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지식은 깊어서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원수같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욥을 친구같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욥이 의롭지 못하다고 평가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고 대답지 않으신다 해서, 하나님을 원수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침묵을 통해서 욥을 신뢰하고 있다고 크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4.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15-22절)”.

하나님은 잠들 때나 환상을 볼 때 귀에 대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사람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게 하시고 교만을 버리게 하십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와 달리, 하나님이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고 고난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교만을 훈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없애 달라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는 기도에 응답하지 않는 것이 응답입니다.

욥과 같은 경우도 기도에 응답 없이 응답하시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없애달라는 기도를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으나, 그것이 바울에게 겸손의 은혜를 베풀고자 하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욥을 겸손하게 하시고자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욥이 교만하여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때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쑤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징계를 받는 자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별미를 싫어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훈련을 받지 않으면, 끝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질병으로 욥을 겸손케 하여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5. 사람의 중보자 예수님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23, 24절)”.

하늘에 있는 많은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 죽게 될 사람의 정당성을 증명해 주는 해석자가 된다면 그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해석자는 연단의 목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천사입니다. 이 중보 천사의 역할은 이미 욥 자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욥의 의를 변호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 욥에게 대속물을 주십니다. 천사는 스스로 대속물이 되어서 그가 정당하다고 말씀하시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고 하십니다. 대속물을 얻은 것이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시는 근거가 됩니다.

영원한 사망의 구덩이에서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대속물을 보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대속자 되신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보자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욥을 아시고 의사소통을 중재할 분을 세워 주십니다. 욥은 중보자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욥에게 당신의 사랑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의 연약함을 아시고 중보자 에수님을 보내사 그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욥을 구하시고 고난받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6. 하나님의 회복

25-33절을 보면 하나님은 욥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욥은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칩니다. 고난에서 자유케 된 자가 기뻐 외칩니다. 욥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공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엘리후는 단지 육체의 회복뿐 아니라, 지위와 명예 그리고 영적인 상태의 회복까지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가 회복된 후에는 사람 앞에서 노래합니다. 그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용서하여 주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건져내 생명의 빛을 비추려 하심입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변론에 대한 자신감에서 욥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내가 너에게 깨닫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

만약 욥이 엘리후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어떠한 반박을 해도 기꺼이 대답하겠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주장이 자칭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임에 비해, 자신은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요한
▲오요한 목사.
7. 결론: 사랑의 하나님, 중보자 예수님

엘리후는 첫째로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원수같이 미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인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고난을 통하여 인간의 교만을 연단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소망의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둘째로 중보자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바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중보자 예수님은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는 중보자 예수님을 보면서 어떤 고난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중보자 예수님을 통해서 고난 후에 올 영광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우리를 변호하여 주십니다. 우리의 허물을 덮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이 있을지라도, 중보자 예수님을 보시고 우리를 죄 없다 하시며 사랑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십니다.

중보자를 보시고 우리에게 복을 내려주십니다. 이 시간 중보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오요한 목사(천안 UBF, <오요한 목자의 로마서 강해>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