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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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선택하라

로완 윌리엄스 | 민경찬·손승우 역 | 비아 | 256쪽 | 15,000원

로완 윌리엄스의 명성은 익히 듣고 있었으나, 그의 글을 읽기는 처음이다. 더욱이 내가 꺼려하는 설교집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 글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과연 설교인지 에세이인지 혼동될 정도로 한국교회의 정서상으론 설교라고 느껴지기 힘들다. 그리고 설교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시야를 넓혀라

우선 이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이 누구일까 라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하게끔 한다. 물론 켄터베리 대성당에 출석하는 성도들일 것이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들과 그 적용 범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 설교이다. 즉 과거의 성도들과 현재를 넘어, 미래의 성도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이 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한국 독자들 중 어떤 이들은 집중이 잘 안 된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에 본서를 읽도록 추천했다). '왜 집중이 어려웠을까?' 라고 혼자 짐작해 보았을 때, 현재 한국 성도들의 시야가 넓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단편적인 예로, 설교 방송을 들을 때 목사님들의 설교가 매우 훌륭한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지막 귀결과 결론은 '우리 교회 만세'로 끝이 난다. 선교와 봉사, 사회적 사업과 책임도 우리(우리 교회)가 해야 한다는 것에 이의는 없다. 그러나 그 내용 전체에서 항상 반복되는 뉘앙스는 자기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헌신한다기보다는 경쟁과 승리가 목적임이 감추어져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설교를 듣지는 않았지만 결론 부분이 항상 '우리 교회 만세'로 귀결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은 발달심리학적으로 비유할 때 어린 아이들이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편협한 시야로 나타나는 현상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편협한 시야가, 한국에 5만교회가 넘지만 모래알처럼 각각 분리돼 있고 교회가 교회끼리 연합은커녕 경쟁이 되어버린 또 다른 집단이기주의적 현실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이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이며, 타자 중심적인 이러한 설교에 집중이 어려울지도 모른다.

두려움을 극복하라

본서는 10편의 성탄 설교와 11편의 부활절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설교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너무나 생소한 설교이기도 한데, 그 이유는 내 믿음, 내 교회, 내 가정, 지금 내 현실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인간(그리스도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어떤 삶의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서에 흐르는 핵심 정서는 두려움과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보다 먼저 앞서는 정서가 두려움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먼지(인간)의 형상을 취한 예수님의 성육신은 안전함에서 불완전함으로의 이동일 뿐 아니라 위험함으로의 찾아오심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 이유를 막론하고 가장 약한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안전함을 추구하기 위해 성을 쌓는 자가 아닌, 연약한 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갑옷을 벗으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벤저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이다. 또 막강한 힘으로 무장한 토르처럼 우리의 원수들을 물리쳐 주고 우리가 원하는 욕구들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제자 유다에게 배신당하고 로마의 일개 군병에게 조롱당하며 침 뱉음을 당할 뿐 아니라 채찍에 맞고 수치스럽게 벌겨 벗겨짐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해, 즉 사랑과 구원을 위해 스스로 약해지신 메시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서의 저자는 세상의 막강한 권력과 힘에 연약함과 무기력함으로 무장한 사랑, 세상의 무자비한 횡포와 휘두름 앞에 절망감을 느끼지만, 죽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활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함을 전하고 있다.

십자가의 죽음 뒤에 부활이 있고 영생과 영화로운 영광이 있다는 사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고 보았다 할지라도, 그 동안 우리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주던 갑옷을 벗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그 말씀만 따르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앞설 것이다.

무시무시한 현실이라는 세상 한복판에서 주님의 뜻을 위해 세상이 휘두르는 조롱과 채찍과 벌거벗김의 모욕감과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두려움 없이 부활의 영광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을까?

삶을 선택하라

그래서 저자는 반복적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전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자들로서 사도 바울이 이미 예견했던, 돈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는 즉 자신들의 안전을 최고로 우선시하는 이 시대 속에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예배드리는 자들이 아니라 이웃(부모<노인>, 고아와 과부, 나그네-약자들)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의 갑옷(성육신)을 벗는 부활의 믿음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해 영화 <부산행>을 보았다. 좀비는 살아 있으나 산 자가 아니다. 즉 좀비는 자신의 생존만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으며, 그 상대까지 좀비로 만들어 버린다. 물론 좀비 이야기가 허구이고 실제가 아니지만, 문학과 예술이라는 것이 오락이 되기 전까지 허구를 통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그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들이 놓치고 있던 스스로의 모습과 현실들을 각성케 한다(물론 주관적이다).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한국교회의 모습)을 보실 때, 우리 삶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처럼 보일까? 아니면 좀비처럼 보일까?

거울을 보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허물을 깨닫지 못한다. 더욱이 어린 아이는 거울을 보고서도 스스로 씻어야 함을 깨닫지 못한다. 나는 본서가 우리의 머리(마음) 속과 현실을 보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