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불법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어긋난 교훈과 도적으로, 우리는 불건전한 생활이나 행위 등을 일삼는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것이 불법이며, 겉으로 진리를 말하면서도 거짓을 행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그 역시 거짓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각자 자기 이웃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거울로 볼 수 있는지 살펴야 할 것입니다.

목사와 장로는 마땅히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삶이 바로 이타적이고 이웃에게 베풀며, 나누고 사랑하며 용서하는 봉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르치고 배우고 익힌 삶의 가치가 그 기준이며, 이미 몸에 배어 있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예수와 같은 삶을 사는 것에 무게를 두는 신앙인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독교 장로나 목사들 중에는 신앙을 갖지 않은 이들보다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일반 성도들이나 불신앙적인 사람들보다 더 금전을 밝히고, 성(性)을 탐하며, 어린 소년 소녀들을 이용하고, 연약한 남녀노소를 괴롭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진실로 이는 세상의 종말을 재촉하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좀 부유하다 해서 노회나 총회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잘못된 것은 싹 포장해버리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도 합니다. 노회와 총회에는 독식하다시피 참석하며, 교회 안의 잘못된 법이나 성도들을 위해 개선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노회와 총회 총대로는 늘 빠짐없이 참석하여 인맥을 넓혀 나갑니다. 그렇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라지들이 있어, 기독교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교회의 최상급 기구인 총회는 어느 교단이건 문제 없는 곳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하나님 이름을 앞세워 온갖 못된 생각만을 하다 보니, 당회로부터 노회와 총회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겉으로는 마음을 비우고 회개를 외치지만, 속으로 모리배 뺨치는 음모와 술수를 부리는 이른바 '정치 목사, 정치 장로'들은 교단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느 조직이든 조직의 지도자들이나 책임자들은 봉사자로서의 사명의식을 가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권력자나 지배자이고 싶어하는 욕심 때문에 조직이 썩어갑니다. 매년 총회 선거 때마다 늘 달고 다니는 금권선거, 타락선거의 오명은 이제 몸서리치도록 듣기 싫습니다. 해마다 부 총회장이 되기 위해 세상의 방식대로 선거를 한다면, 차라리 세상 정치가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니 세상 정치에서도 이제 '금권선거'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각 교회에서 올라오는 진정서나 질의서는 분명 문제가 발생하여 상급 기관에 의뢰를 하는 것임에도, 총회 석상에서 확인 절차도 없이 회무를 대충 처리하는 것을 보면, 이 역시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순진한 양떼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당할 뿐입니다. 그들은 포식자들에 의해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상급기관은 주님께서 행하셨던 공명정대한 방법으로 모든 회무를 처리해야 합니다. 하급기관인 지교회의 어려움을 자신의 어려움 같이 껴안고 품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총회는 지교회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과 노력으로 신뢰를 획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상급기관에서도 고충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관행이나 사고, 법률이 있다면 과감히 수정·보완하는 소신 있는 지도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무시한 채 한쪽 권력의 편에서 일을 한다면, 그 지도자들은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입니다.

세상은 4차산업 시대가 되어 발빠르게 모든 것이 활발히 변화하는데, 우리 기독교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옛 구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안일과 무능의 역사만 되풀이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선거 때만 되면 개혁을 하겠다고 외치지만, 막상 당선되고 나면 잔칫집에나 넘나들며 수장으로 대우만 받으려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지도자들 같기도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살겠다고 다짐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신앙 때문에 자신의 모든 재산과 명예를 박탈당하고 심지어 가문으로부터도 쫓겨나는 수모를 겪다 마침내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은 그 숭고한 정신을, 우리는 순교의 정신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과거와 달리 물리적 박해가 없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신앙인에게도, 이러한 순교의 영성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현대적 의미의 박해 요소가 되어 우리를 시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우리를 유혹하는 다양한 현대적 의미의 박해들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무엇보다 신앙을 우선으로 내세우며 살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현대적 의미의 '순교자'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아무런 박해와 고난이 없음에도, 순교라는 말을 함부로 내뱉습니다. 오직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양들이 자신을 멀리할 때, 거짓으로 '순교'를 외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정말 목숨을 내어놓는 순교는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고귀한 것입니다. 단순한 순간의 선택으로 될 일도 아닙니다.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노력과 굳건한 믿음이 희망으로 삶 속에 함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순교자들을 위대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의탁하고, 주님을 위해 살면서 목숨까지 기꺼이 내어놓았던 순교자들을 생각하면, 그래서 그들의 삶 전체가 더욱 존경스러워집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깊은 골짜기로, 삶의 자리에서 은밀하게 하나님과 그 신앙을 자손들에게까지 전하려 애썼던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삶의 순교의 모습 역시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까.

특히 오늘의 신앙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되돌아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라고 말은 많이 하지만, 실상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후손들이 맞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온전히 신앙이 내 삶에 녹아들어 있는지, 주님과 만나려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얼마나 용기 있게 용서하고 사랑하려 하는지를 말입니다.

삶의 순교는 자신을 버리고 비워내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 그 자리에 주님의 사랑을 채워나가길 바라며, 당당한 신앙인으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몸 바쳐 일하리라고,

진정한 순교의 정신은 나를 비워내고 낮추며, 나의 생각과 가슴을 오롯이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박해 없는 아름다운 은혜의 시대에, 돈과 부귀영화, 명예와 권력들을 향해 질주하는 목사와 장로들은,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양떼들을 위해 몸 바쳐 순교해야 할 것입니다.

또 다시 양떼들을 괴롭히거나 자신의 잇속을 위해 일한다면, 마땅히 교단에서 퇴출되어야 할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교단에 속한 모든 목사 장로, 그리고 평신도들은 아파하는 세상을 위해 오늘 하루도 순교하는 마음과 정신과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품을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