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사학의 정체성을 더욱 살려나갈 것”을 주문하는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크리스천투데이 DB

대광고 사태 등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선교 패러다임의 전환을 촉구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연재 인터뷰를 통해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 신학자들을 만나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 방향성에 대한 그들의 의견을 균형있게 다룰 예정이다. 세번째 순서로 서울신대 박명수 교수와 인터뷰를 가졌다. -편집자 주


“‘대광고 강의석 사건’ ‘개정사학법’ 등으로 무너지고 있는 기독교사학의 위치와 지위를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독교사학은 반드시 채플을 드리며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와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면, 존재해야 할 이유와 필요가 있는가. 정부는 각각의 사립학교가 가지는 특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와 달리 설립된 이유이다.”

현 시대는 종교사학에서의 종교성 배제를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박명수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독교사학이 기독교사학의 정체성을 더욱 살려나갈 것”을 거듭 주문했다. 박명수 교수는 성결대와 서울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학교에서 ‘19세기 미국교회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에는 서울신대 교회사 교수로, 신학대학원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대광고 강의석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번 사건은 정부의 잘못된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광고와 강의석 군 모두 피해자이다.

‘학교의 학생 선발권’, ‘학생의 학교 선택권’이 부재한 고교평준화 정책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립학교’란 개념을 사라지게 했다. ‘고교평준화’란 명목 아래 정부의 교육 획일화 정책은 다양한 주체에 의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통한 다양한 교육의 통로를 막고 있다.

자유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교육을 획일화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나 어떠한 단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하고 창조적인 사고가 드러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그것이 사립학교가 가지는 특성이자 의의이다. 만약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와 같다면, 존재할 이유와 필요가 있는가. 세계 어느 곳에도 사립학교가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없다. 그만큼 공립학교와 다른 사립학교만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사립학교의 위치와 존재의 의의를 인정하는 교육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사학은 정부로부터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진 보조금을 받고 있다.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이상 정부의 간섭과 제재는 당연하지 않은가.

“사학은 정부의 보조금을 점점 줄여 나가야 한다. 사립학교가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운영이 된다면, 정부의 통제와 간섭을 받을 필요가 없다. 기독교 사학은 정부에게 ‘보조금을 받지 않을테니, 학생 선발권을 달라’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사학의 첫 번째 목적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학원선교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공교육과 사립학교의 정신은 대립되지 않는다. 일치한다. 공교육과 사립학교의 정신이 대립된다고 보는 시각이 잘못된 것이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사학은 민족과 나라의 발전에 있어 크게 공헌했다. 민족의 근대화를 위해 앞장 선 공로가 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공교육과 학원선교는 조화될 수 있다. 절대로 대립되지 않는다.”

-현 상황에서 기독교사학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묘법이 있는가.

“현 상황에서 기독교사학은 기독교사학으로서의 위치와 지위를 다시 바로 잡아야 한다. 기독교사학은 채플을 드리고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 이에 반발하는 학생이 있다면, 교육청에 요청해 민주적인 절차와 방법을 통해 다른 학교로 전학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학생 때문에 한 학교의 설립목적이 바뀌어 질 수 없다.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독교사학은 정부에게 학생 선발권을 요청해야 한다. 또 만약에 종교교육을 반대하는 학생이 다른 학교로 전학 가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필시 그 안에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다.”
.
-종교의 강요와 타종교를 무시하는 한국교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진정한 복음주의자는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복음주의 신앙은 강요에 의한 집단적인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정한 거듭남, 중생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은밀한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종교는 개인의 자유이기 때문에 절대 강요할 수 없다. 중세시대와 달리 근대사회에서는 힘과 권력으로 한 개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수 없고, 강요 받아서는 안 된다. 이는 근대화가 가르쳐주는 중요한 시대적 자산이다.

복음주의 신앙은 다종교의 사회와 양립할 수 있다. 즉, 절대적인 신앙을 고수하면서 다른 종교와 공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독교인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독교의 유일성을 믿지만, 한편으로 다른 종교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그들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기독교의 절대’와 ‘타종교에 대한 무례’는 동일어가 아니다.”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청되고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방향성에 대해 말해달라.

“17세기 존 로크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면, 종교가 어떻게 국가의 도움 없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란 물음을 던졌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종교가 사회의 도덕을 유지시켜주는 역할을 할 때 사람들은 종교를 찾게 될 것이며, 또 기적이 일어날 때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다고 인정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령 교수가 최근 기독교로 귀의한 일이 있었다.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인이라 불리는 그가 딸을 통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이다. 기적은 이 시대에도 역사하는 힘이 있다. 오순절 계통의 교회의 부흥은 이러한 차원과 연결된다. 기독교인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기적과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다원주의, 다종교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종교보다 더 도덕적으로 뛰어나야 한다. 더 겸손해야 하고, 더 헌신적이어야 한다. 즉, 진정한 성화인의 모습을 사회에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책임과 의무가 기독교인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