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종화

③ 신앙생활하는 전우를 찾아 같이 믿음을 지켜가자

'크리스천 군인들의 10가지 다짐' 중 세 번째는 신앙생활하는 전우를 찾아 같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 갈 때는 혼자 가지 말고, 숨어 있는 크리스천 선후임을 챙겨서 가자.

나에게는 좋은 친구가 여러 사람이 있다. 모두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친구들이다. 물론 믿음이 없는 친구들과도 교제는 나누지만, 차원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신앙의 친구들을 모두 군대에서 만났다. 함께 만나면 살아가는 이야기도 숨김 없이 나누지만, 결국 서로에게 있었던 신앙생활과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결혼한 후에 가족들끼리 만나도, 결국 이야기의 주제는 비슷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견이 맞을 때도 있고, 서로 생각과 경험치가 달라 다를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나오게 되는 카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좋다.

살다가 곤란에 처하거나 힘이 들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가슴에 담고 있던 속내를 드러낼 때면, 친구들을 통해 특별한 답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 범위로 서로 좁혀가도록 돕는다. 결국 함께 기도제목으로 나눈다. 살면서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당장 연락해서 기도를 부탁하게 되는 대상도 당연히 그 신앙의 친구들이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도 그러했다. 나라가 망해 적국에 끌려가 있으면서도, 위기가 닥쳐 왔을 때 서로 기도를 부탁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도와 주는 우정을 볼 수 있다. "이에 다니엘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에게 그 일을 알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단 2:17-18)". 우정으로 뭉친 신앙의 지조와 결단은 결국 적국에서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쾌거를 올렸다.

그런 친구를 군대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군대라는 곳이 좋은 친구를 만나기에는 최고 좋은 장소임을 강조하고 싶다.

군대에 갈 때는 철이 없는 어린 나이가 아니라서 그렇다. 군대라는 곳 자체가 '빡세게' 힘든 곳이라서 더욱 그렇다. 군대만큼은 혼자서보다, 누군가와 함께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다. 군대만큼 서로 성향이 다른 사람을 오랜 기간 만나볼 수 있는 시기도 드물다.

가뭄으로 말라 있던 땅에 물을 뿌리면, 물은 닿자마자 땅속으로 사라진다. 땅은 애타게 물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그 땅은 스스로의 몸이 흠뻑 젖을 때까지 계속 물을 흡수할 것이다. 군대의 환경이 이와 비슷하다. 서로 어렵다. 인격과 품성들이 적나라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사람들이 동일 환경을 공유해야 하는 군대에서, 제대로 된 친구를 만나는 것은 그야말로 단비와 같다. 군대는 좋은 친구를 만나고 평생을 함께 할 관계로 발전시키기에 최고의 장소이자 기간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우리가 애써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둘러보면서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하나님께서 주변에 미리 예비해 두신 것을 체험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셨을까? 혼자 군 생활하기 힘들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포로 생활 동안 혼자 지내기 어렵다는 것을 아셨기에, 세 친구와 의지하면서 지내도록 하신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배치받는 그곳에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형제들을 보내 놓으시고, 기간이 지나면 새로 오게 되는 형제들을 우리에게 맞이하게 하신다.

나의 첫 부임지인 서해의 외로운 섬 최북단 백령도에 갔을 때, 대구에서 왔다는 그 친구를 하나님은 예비해 주셨다.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던 나에게, 손을 내밀고 함께 신앙을 나누었던 그 친구를 잊을 수 없다. 그 친구를 만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음을 확신할 수 있었고, 이것은 대단한 영적 자신감으로 나에게 작용하게 했다.

온몸과 마음이 힘에 부쳐 지쳐갈 때 서로 의지하며 하나님 이야기로 위로를 주고받았던 그런 신앙의 친구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만 주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신앙의 선배들이나, 전역하고 나온 형제들, 아니 지금 자신의 부대에서 생활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물어보면, 혼자서 고립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이렇게 돈독해지는 우정의 관계를 보면, 신앙과 동떨어진 우정과는 차원이 좀 다른 것 같다. <인간의 모든 동기>라는 책을 지은 최현석은 우정과 사랑을 구분해서 설명한다. 우정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이 '좋아함'이라면, 사랑의 감정은 그 외에 걱정, 보살핌, 의존, 즐거움, 외로움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다고 한다.

우정은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독립성과 자유를 보장하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즐거운 감정을 나눌 수 있는 반면, 사랑의 감정은 복잡한 감정들이 아우러져 있기 때문에 사랑할수록 감정 변화의 폭이 더 커진다는 것이다. 많이 사랑할수록 좋았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화해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크리스천 간의 우정과 사랑은 그 경계가 더 많이 교차될 수 있다. 우정을 가진 상태에서도 서로 사랑하는 관계처럼 아껴 주거나 기도해 주고, 잘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축복의 마음이 강하게 결합되고 있음을 삶을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우정의 범주를 넘어 '주 안에서' 사랑하는 경우가 많다.

성경에서 다윗과 요나단의 '사랑 같은 우정'이 대표적인 예다. 신분과 위치가 다름에도, 요나단과 다윗 간에 서로를 좋아하고 아껴 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당시 요나단은 왕자였다. 다윗은 사실 비천한 목동 출신이었다. 그런데도 왕자인 요나단은 차기 왕으로 자신보다는 다윗을 더 생각했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면서 서로를 위하고 도와 주며, 사심을 모두 버리고 서로가 잘되기를 진정으로 바랐던 우정을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들에게 대의를 따르도록 작용했던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아니었을까? 지금의 우리는 그런 우정을 군대에서 맛보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주변에 신앙의 자신감이 떨어져 자신이 크리스천임을 나타내지 않는 전우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입대 전에 신앙생활 잘하던 전우가 지금 예배에 가지 않고 있다면, 그들의 손을 잡아 주자. 특히 힘든 군 생활에 지쳐 있는 전우들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주자. 고난 가운데 처해 있는 욥에게 위로한다고 찾아와서 정죄하던 친구들처럼 하지 말자. 주일이 되면 혼자서 가지 말고 친구들과 함께 그 복된 걸음을 나서 보자.

40대에 회심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온몸과 마음을 다해 전도에 힘쓰며 사시는 한 분이, 군대 시절 혼자서만 교회에 다니던 친구를 만나서는 "그렇게 좋은 예수님을 넌 너 혼자서 믿으면서, 어째 나에게는 예수 믿으라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않을 수 있었어?"라고 따졌단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하는 신앙이 아니라 혼자서 하는 신앙이며,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할 만큼의 담대함을 잃은 처사다.

정리해 보자. 하나님은 우리를 군에 보내실 때, 그곳에 함께 신앙생활할 형제들을 보내 놓으셨다는 확신을 갖자. 그것을 위해 입대 전부터 간절히 기도하자. 주변에 하나님이 함께하도록 보내주신 전우가 있다는 예민한 감각을 유지해 보자.

잘 보면 그들이 보인다. 그들과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고 도우면서 군 생활을 해 나가자. 군에 있는 동안 사귄 신앙의 친구들이 평생 동안 신앙의 친구로 남았다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 장병 여러분들에게 방패 되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가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주종화 교수(<크리스천 청년들의 군대 톡톡> 저자, 해병대 예비역 대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