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동성 간 피부양자 인정 판결, “그돈씨”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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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우 칼럼] 판사의 권위

▲‘영국에서 판사들이 2024년 고딕 양식의 법원 건물 내에서 전통적인 하얀 가발을 쓰고 형사 재판 판결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자, 마이크로소프트 Bing AI인 Copilot가 제작한 그림. ⓒCopilot
▲‘영국에서 판사들이 2024년 고딕 양식의 법원 건물 내에서 전통적인 하얀 가발을 쓰고 형사 재판 판결을 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달라’고 하자, 마이크로소프트 Bing AI인 Copilot가 제작한 그림. ⓒCopilot

#1.
영국 법정 하얀 가발 쓰는 이유
이성과 전통 존중한 판결 의미
판사 권위, 그 안에서만 존중돼
오류 저지를 수 있음을 새겨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 번쯤은 보았겠지만, 영국 법정에서는 하얀 머리털의 가발(peruke)을 쓴다. 2007년 이후 민사소송의 경우 일반적으로 가발을 쓰지 않지만, 형사소송에서는 판사와 심지어 변호사까지도 여전히 가발을 쓴다. 형사처벌은 국민 자유를 제한하는 중대한 사안이므로, 더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국 법정에서 가발은 보편적 이성, 그리고 그 위에 선대가 쌓아놓은 전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판사 혹은 변호사 개인이 변호와 판결을 하기는 하지만, 가발이 상징하는 바 이성과 전통을 존중하여 변호하고 판결함을 의미한다.

법적 권위의 본질은 신이 인간에게 예외없이 부여한 ‘이성’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판사의 판결은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할 때 이성적이라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최근 대한민국 판사들을 보면, 자신이 행사하는 권위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판사들은 이성과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판사들이 마음대로 판단해도, 그 권위가 인정된다고 착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국민이 판사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특별히 뛰어난 존재여서가 아니다. 판사들 역시 오류를 저지를 수 있는 한갓 동네 아저씨에 불과할 뿐임을 잊지 말기 바란다. 영국 법정에서 가발을 쓴 것처럼, 판사의 판단은 이성과 전통에 의존하는 한도 내에서만 존중된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그돈씨’ 짤. 경차 모닝 사러 갔다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을 살 수도 있는 과정을 보여 준다. ⓒ커뮤니티 캡쳐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에서 회자되는 ‘그돈씨’ 짤. 경차 모닝 사러 갔다 최고급 롤스로이스 팬텀을 살 수도 있는 과정을 보여 준다. ⓒ커뮤니티 캡쳐

#2.
경차 사러 갔다 최고급 차량 구매
‘그 돈이면 씨…’ 하다 눈 들어와
애초 목표 새기며 과소비 막아야
대법관들, 이 정도 이성도 없나?

요새 유행하는 말 중 “그돈씨”라는 표현이 있다. 이 표현은 주로 자동차를 구매할 때 자주 인용된다. 가격이 가장 낮은 경차 모닝을 사려고 자동차 판매장을 방문했던 사람이 “그돈씨”라는 생각 때문에 결국 최고급 승용차인 롤스로이스 팬텀까지 구매하게 될 수 있다. 이 “그돈씨” 현상을 잘 아는 자동차 판매업체는 선택가능한 옵션을 차급별로 달리하는 마케팅 전술을 활용하는 일이 흔하다.

경차 모닝의 가격대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최저 1,290만 원에 구매가능한 경차 모닝에 이런저런 자동 장치들을 옵션으로 추가하면, 1,655만원으로 가격이 상승한다. 그런데 돈을 조금만 더 쓰면 한 단계 위인 준중형차 K3를 1,825만 원에 구입할 수 있다.

이때 구매자는 “그 돈이면 씨…, K3 사고 말지”라는 마음으로 K3으로 목표를 변경한다. 그런데 K3도 이런저런 옵션을 추가하다 보면 2,507만 원으로 가격이 상승하고, 2,784만 원의 K5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한 단계씩 징검다리를 타고 올라가다 보면, 이론상 7억 1,200만 원에 이르는 롤스로이스 팬텀까지 구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는 애초에 목표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아야 한다. 애초에 경차를 목표로 했다면, 한 단계 높은 급인 K3 정도에서 멈출 수 있다. 실제로 ‘합리적’ 소비자라면 경차를 사려 했다가 롤스로이스를 사는 우스꽝스러운 선택은 하지 않는다. 바보가 아니라면, K3 이상은 불필요한 과소비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대법관은 그 정도의 이성도 없는 것인가?

▲18일 오후 대법원 선고 전 2심 판결 파기를 촉구하고 있는 시민단체들. ⓒ진평연
▲18일 오후 대법원 선고 전 2심 판결 파기를 촉구하고 있는 시민단체들. ⓒ진평연

#3.
동성 커플 사실혼 부부에 준한다?
동성 동거=결혼, 논리적 불가능해
초등 수학만 알아도 치명적 오류
그런데도 피부양자, 해괴한 논리

최근 대법원이 동성 커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동거인은 원칙상 건강보험 피부양자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부에 준하는 것으로 인정해 건강보험료를 지급해 주는 것이라면, 동성 동거인 역시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 동거인에 준하므로 건강보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는 이 논리는 초등 수학 정도만 배운 사람이면 치명적 오류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이성 간 동거가 결혼과 같고 동성 간 동거가 이성 간 동거와 같다면, 동성 간 동거는 결혼과 같아야 한다. “A(결혼)=B(이성 간 동거)”이 성립하고 “B(이성 간 동거)=C(동성 간 동거)”가 성립할 때, “A(결혼)=C(동성 간 동거)” 역시 성립하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수학적 결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민법은 결혼을 “남녀의 결합”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결혼=동성 간 동거”는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판사들은 이 사건 2심 판결문에서 ‘동성 사실혼을 결혼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했다. 물론 판사들의 논리대로 “이성 간 동거≒결혼”이 성립하고 “이성 간 동거≒동성 간 동거”가 성립하더라도, 반드시 “결혼≒동성 간 동거”는 아닐 수 있다. 같은 것(=)이 아니라, 유사한 것(≒)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사실혼 배우자를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인정하는 것의 시작점이 어디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기준은 법률혼이지, 사실혼이 아니었다. 원칙상으로는 결혼한 배우자만 피부양자로 인정해야 하지만, 이성 간 동거의 경우 “결혼에 준하는 것(결혼≒이성 간 동거)”으로 보아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결혼≒동성 간 동거”가 성립하지 않는다면서 건강보험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은, 대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대법관 중 합리적 사고를 하는 이동원 대법관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므로 피고가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이 이 사건 쟁점 규정의 ‘배우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해 왔더라도, 이러한 점 때문에 동성 동반자도 당연히 ‘배우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이고, 그 논리적 공백을 메우는 것은 ‘동성 동반자도 배우자와 동등하게 취급하자’는 정책적 구호일 뿐이다.”

▲경상도 사투리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관련 짤. 이번 판결 같은 식이라면, 피부양자는 무한히 늘어날 수도 있다. 해당 사진은 국민연금 인스타툰. ⓒ인스타그램 캡쳐
▲경상도 사투리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관련 짤. 이번 판결 같은 식이라면, 피부양자는 무한히 늘어날 수도 있다. 해당 사진은 국민연금 인스타툰. ⓒ인스타그램 캡쳐

#4.
지급 기준, 동성 간 동거로 넓어져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롤스로이스 팬텀까지 올라갈지도
사회적 비용, 대법관만 부담하나?

비유컨대,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애초에 경차를 구입하려 했던 소비자가 준중형차인 K3를 넘어, 중형차인 K5를 구입한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동성 간 성행위에 대해 지난 10년간 열심히 홍보한 결과, 많은 국민들이 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이걸 생각해 보라. 동성 간 동거를 결혼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건강보험료 지급을 허용했다면, 건강보험료 지급 기준이 ‘결혼’에서 ‘동성 간 동거’로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이에 준하여 또 어떤 판결이 나오게 될지, 상상력을 동원해 보기 바란다. 롤스로이스 팬텀까지 올라가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만일 돈이 없어 롤스로이스까지는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혹시 누군가 안심한다면, 다음 질문을 해보라. 동성 간 결합에 법적 지위를 부여한 후 우리 사회에 부과될 사회적 비용은 그 결정을 내린 일부 대법원 판사들에게만 부과되는가? 주권자인 국민이 정한 법률의 범위를 넘어서는 판결을 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형우 교수(한남대학교)
hwleetrojan@gmail.com
한양대학교 행정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2011년 한남대학교 행정학과에 부임하여 행정철학과 윤리, 공무원의 동기부여와 인사관리를 위한 심리학을 교육·연구하였다. SSCI(국제저명학술지)와 KCI(국내학술지)에 여러 편의 논문을 게재, 2019년 한남대학교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다. 현재 교정넷(교육정상화를바라는전국네트워크) 운영위원, First Korea 시민연대 부대표 등을 맡아 교육 정상화와 악법 개정 등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본 칼럼은 월드뷰 2024년 9월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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