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 넘어 ‘레드카펫’ 밟은 탈북 가족을 만나다

송경호 기자  7twins@naver.com   |  

‘비욘드 유토피아’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와 우영복·노진혜 모녀

▲(왼쪽부터) 탈북민 우영복 씨, 24년간 탈북자 구출에 힘써 온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 탈북민 노진혜 양(11)이 탈북 당시를 회상하며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왼쪽부터) 탈북민 우영복 씨, 24년간 탈북자 구출에 힘써 온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 탈북민 노진혜 양(11)이 탈북 당시를 회상하며 영화 ‘비욘드 유토피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송경호 기자

‘비욘드 유토피아’(감독 매들린 개빈)는 살벌한 감시망을 피해 사선을 넘는 실제 탈북 과정을 밀착해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다. 동족의 비참한 현실에 한국민들이 점점 무감각해지는 사이, 지금도 진행 중인 인권 말살의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세계인들은 이 영화를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다큐멘터리 부분 숏리스트(예비후보)로 올렸다.

이 영화 예고편에는 국경을 넘어 밤낮으로 산속을 헤맨 일가족이, 탈북자를 구출해 온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에게 영상으로 편지를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이 맨발로 풀뿌리를 캐먹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목사님, 우리를 좀 도와주십시오.” 화면 속 첫째 딸(노진혜 양, 당시 9세)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다.

그들의 탈출 과정이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2년 만에 공개됐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던(혹은 북송돼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생사의 길에서 살아남은 어머니 우영복 씨와 첫째 딸 노진혜 양, 김성은 목사를 만났다. 이들에게 생(生)의 감격조차 이들이 겪었던 죽음 공포를 덮기에는 버거워 보였다. 불과 두 달 전 최소 6백 명에서 최대 2천 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중국에서 강제북송돼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 터이기에(살아만 있다면) 더 그랬다.

▲<비욘드 유토피아>의 한 장면. 우영복 씨의 일가족이 탈북을 감행하는 도중 김성은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실제 모습이다.
▲<비욘드 유토피아>의 한 장면. 우영복 씨의 일가족이 탈북을 감행하는 도중 김성은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실제 모습이다.

“최악이었어요. 잊을 수 없어요”

우 씨는 “탈북 과정에서 촬영한다는 건 알았는데, 당시에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고 했다. 그는 “이 영화로 국제사회가 이렇게 요란해질 줄도 몰랐다. 국제무대에 올라서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것”이라며 “그런데 영화를 직접 보고 나니 북한의 인권 실태를 국제사회에 알리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고 했다.

목숨을 건 여정을 거쳤다고는 믿기지 않는 앳된 얼굴의 노 양에게 “국경을 넘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는지”를 묻자, “솔직히 어디로 가는지 몰랐어요. 춥기도 했고, 비닐로 몸을 데웠던 기억은 있어요. 근데 최악이었어요. 잊혀지지 않아요”라고 답했다. 우 씨가 덧붙였다. “국경을 넘을 때 ‘잡히면 죽는다’고 소리쳤어요. 극도로 긴장했을 테니 아이들은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지 않을 거에요.”

우 씨는 북한 주민들이 “지쳐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김정은 시절, ‘고난의 행군이 끝나면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핵무기를 만들었으니 누구도 덤빌 수 없다’고 한다. 세상 밖을 모르는 북한 주민들은 ‘싸우면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렇게(굶어서) 죽고 저렇게 죽을 바에는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이도 있다”고 했다. 처절한 감시 속에 살던 우 씨 가족은 “차라리 자유를 찾아 가자”고 결심했고, 탈북을 감행했다.

이들의 처절한 탈북 여정은 그야말로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북한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때를 선택한 것은 보위부 감시를 피하기 적합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성묘를 할 것처럼 채비를 하고 80세 노모, 두 아이와 함께 일가족이 떠났다. 그리고 곧장 국경으로 향했다.

우 씨는 “너무 어리석었다. 강만 넘으면 성공할 줄 알았다. 그런데 넘고 나니 허허벌판이었다”고 했다. 두꺼운 옷은 강을 건너는 과정에서 젖어서 모두 버렸다. “낮에도 저녁에도 걷고 또 걷는데, 너무 추워 이가 다 떨렸다. 가시밭을 걸을 때는 샌들을 신은 발가락이 다 터졌다”고 했다. ‘탈북’을 먼저 제안했던 우 씨에게 남편은 “목숨 갖고 장난하냐”고 고함쳤다. 그렇게 밀림 같은 백두산 자락을 지나 인가를 발견하기까지 꼬박 1주일이 걸렸다.

▲일가족과 함께 탈북을 감행하던 당시 상황을 전하는 우영복 씨. ⓒ송경호 기자
▲일가족과 함께 탈북을 감행하던 당시 상황을 전하는 우영복 씨. ⓒ송경호 기자

생과 사의 엇갈림, 다시 카메라를 켰다

살아남았기에 영화로 세상에 드러날 수 있던 이들과의 만남은,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탈출하려던 이의 비참한 결말에서 시작됐다. 개빈 감독과 김성은 목사는 자신들이 구출을 돕던 북한 10대 아이가 중국인 브로커의 거짓말로 인해 북송당한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우 씨 가족의 소식을 접했다. 그들은 각본 없이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김 목사는 “한 브로커가 ‘목사님이 좀 살려 줘야겠다’고 연락이 왔다”고 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중국에서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다. 신분도 없기에 인신매매와 성매매, 심지어 장기매매를 당하기도 한다. 노모와 갓 6, 9살 난 아이들은 이들에게 ‘쓸모없는 사람들’이었다. 말이 살려 주라는 것이지, 팔아먹을 수 없으니 교회가 돈 좀 내고 데려가라는 이야기였다”고 했다. 한둘을 살리는 경우는 많았지만, 일가족을 구출해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지금 세대는 자유의 소중함을 알지 못한다. 왜 통일이 되어야 하는지, 왜 군대가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 영화를 들고 유럽과 미국 전역을 다닐 때 모두들 깜짝 놀랐다.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보기만 해도 기절할 것 같은데, 왜 한국인들은 별로 반응이 없느냐”라는 것이었다. 그는 “심각한 문제를 우리는 너무 자주 접하기에 그 심각성을 오히려 모른다. 탈북의 현실, 공산주의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아픔, 인권의 문제까지 함축적으로 표현한 영화”라고 했다.

▲탈북민들을 구출해 오고 있는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와 탈북민 노진혜 양(11). ⓒ송경호 기자
▲탈북민들을 구출해 오고 있는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와 탈북민 노진혜 양(11). ⓒ송경호 기자

24년 전 두만강서 시체들 보며 무릎 꿇고 결단
필사적으로 탈북한 한 여성과 결혼해 함께 사역

김 목사가 탈북민 구출 사역에 뛰어든 지 벌써 24년째다. 한국으로 오는 루트를 찾기 위해 몽골 사막도, 동남아 밀림도 가고, 밀항도 수없이 했다. 탈북민을 돕다 넘어지는 과정에서 목이 꺾여 철심을 박았고, 밀림을 넘다 허리를 다쳐 세 차례 수술을 받았다. 코로나 직전에는 탈북고아들을 데려오다 쓸개(담낭)를 적출했다. 자신의 어머니가 감옥살이를 하는 일도 당했다.

우연히 두만강에 갔던 오래 전 그날, 탈북민들의 시체들을 두 눈으로 보면서 “이 민족을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 무릎을 꿇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북한을 넘어 온 한 여성을 만났다. 그가 목숨 걸고 탈북을 도운 그녀가 그의 지금의 아내다. 아내는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탈북민 여성 1호 목사가 돼 탈북민 사역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고된 사역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통은 7살 난 아들의 죽음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만큼만 시험하셨어도 좋았을 텐데….” 괴로워하는 김 목사 부부에게 하나님께서는 “천하보다 귀한 너의 아들은 천국에 있지만, 북한의 2,400만 영혼들은 지금도 지옥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까지 그가 구출해 낸 탈북민은 1천 명에 달한다.

10배 오른 구출 비용에 “여기까지입니다” 기도했더니…

한국인도 힘든 한국 생활, 탈북민들에게는 몇 배 더 힘들 것이라는 그는, 탈북민이야말로 통일 후 북한에 복음을 전할 미래의 선교사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가서 하는 백 마디 말보다 이들이 자신들이 만난 예수님을 전하는 한마디가 더 힘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우영복 씨 일가족을 구출해 한국으로 이끈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 코로나 직후 10배로 오른 구출 비용에 24년간의 사역을 내려놓으려 했다는 그는, 1천만 성도 중 절반만 1만 원씩 후원해 줘도 탈북민 모두를 구출해하도 남는다고 했다. ⓒ송경호 기자
▲우영복 씨 일가족을 구출해 한국으로 이끈 김성은 목사(갈렙선교회). 코로나 직후 10배로 오른 구출 비용에 24년간의 사역을 내려놓으려 했다는 그는, 1천만 성도 중 절반만 1만 원씩 후원해 줘도 탈북민 모두를 구출해하도 남는다고 했다. ⓒ송경호 기자

코로나19는 탈북의 장벽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였다. 그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시민들의 이동을 막고자 이중 철조망, 전기 철조망을 세웠고, 상대적으로 허술했던 북한 역시 중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철조망을 보강했다. 더 큰 문제는 구출 비용이다. 북한이 지난해부터 시행한 ‘반간첩법’으로, 브로커에 대한 처벌도 기존 벌금형~최대 5년형에서 13년형으로 강화됐다. 리스크가 커진 만큼 탈북민 구출 비용도 1인당 약 3백만 원에서 약 3천만 원으로 10배나 상승했다.

너무 힘든 마음에 김 목사가 사역 중단을 고민할 즈음, 이번 영화를 비롯해 그의 사역을 담은 각종 영상 등이 전 세계에 알려지며 더 많은 후원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는 “‘10배나 오른 탈북민 구출 비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10배 더 후원받으면 되지 않느냐’고 응답하셨다”고 말했다.

“한국 성도 한 달 1만원, 팔려간 탈북민 다 구하고도 남아 ”

그는 한국교회에 ‘보내는 선교사’를 감당해 달라고 했다. 그는 “1,200만, 그 중 절반인 600만 성도들만 한 달에 1만 원씩 후원해 준다면, 중국에 팔려간 탈북민들을 다 구하고도 남는다”며 “가장 고통받고 있는 탈북민들을 살린다면, 그들이 전한 복음으로 민족의 복음화가 이뤄질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탈북 과정을 생생한 화면에 담은 &lt;비욘드 유토피아&gt;의 매들린 개빈 감독. ⓒ감독 제공
▲탈북 과정을 생생한 화면에 담은 <비욘드 유토피아>의 매들린 개빈 감독. ⓒ감독 제공

가짜 유토피아의 국경을 넘어서는 평범한 이들의 여정을 담은 ‘비욘드 유토피아’는 선댄스영화제 관객상과 시드니영화제 최우수 국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10월 미국 600여 개 극장에서 개봉했으며, 1월 3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김 목사는 무엇보다 이 영화를 통해 교회가 고통받는 약자들을 섬기고 있음을 온 세상에 알리고,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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