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결코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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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 김순권 박사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 (3)

한동대학교 석좌교수이자 국제옥수수재단(ICF) 이사장인 김순권 장로(포항 수정교회, 평양 칠골교회 명예장로)는 한국의 옥수수와 미국의 옥수수를 교배해 크기도 훨씬 더 크고 병충해에 강한 옥수수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

옥수수 수확량이 늘면서 많은 이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수 차례 노벨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사명감으로 옥수수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본지는 김순권 박사가 옥수수를 개발하는 과정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 그의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새해 2024년 남과 북 모두에 통일을 향한 희망이 솟아나길 위해 기도한다. 1950년 내가 다섯 살 때 일어난 6.25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었다. 달밤에 쳐들어 온 공비들이 아버지를 산으로 데리고 가 총살시키기 직전, 마을에 도착한 순사들의 총소리가 들렸고, 이에 공비들이 놀라 움직이는 바람에 아버지가 낭떠러지에 굴러 살아 돌아오셨다. 사촌형이 군에서 왼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부산 아미동 부산대학병원에 입원했는데, 마취 주사도 없이 다리를 자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시는 민족이 서로 싸우는 전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울산 바닷가 농어촌 마을의우리 집 마당에서 피난민 아주머니로부터 전복 껍질에다 저녁 쌀밥 한 줌을 얻어 먹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대구제일교회(이상근 목사님 시무)에서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5살 때 피난민 아주머니가 주신 그 밥 한 덩어리를 영상처럼 훤하게 보여주셨다. 지금도 그 장면이 기억이 난다.

배고픔을 경험한 것도 ‘인류의 굶주림을 해결하라’는 하늘이 준 사명으로 생각해, 1969년 당시 수원 소재 농촌진흥청에서 옥수수 연구를 시작해 56년째 이어오고 있다. 오늘도 북한의 주식량인 강냉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971년부터 1974년까지 미국 정부 장학생으로 하와이대학교, 일리노이스대학교 대학원, 종자회사에서 옥수수 육종 기술을 배울 때 우리는 너무 가난했다. “하나님, 왜 미국만 다수성 하이브리드콘이 재배돼야 하는 건가요? 우리나라 강원도, 충북, 경북 북부에도 안전 다수성 하이브리드콘이 심겨 농민들이 잘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기도하며 내가 죽든지 이 역사적 소명을 감당하든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통일벼는 산간 마을에 닥친 저온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부터 잘 살리고 그 다음 아프리카로 가서 죽어가는 이들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특히 일리노이대학 농장 옥수수 밭에서 “하이브리드콘으로 세계 인류의 배고품을 해결할 수 있다”는 꿈을 품었다. 반드시 남과 북이 공생(co-survival)할 수 있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 어느 한 쪽을 항복시키겠다는 허황된 꿈은 버려야 한다. 우리에게는 핵도 필요 없고 오직 통일만이 필요한 것이다.

▲황해도 황주 룡천 강냉이 밭.  ⓒ김순권 박사 제공

▲황해도 황주 룡천 강냉이 밭. ⓒ김순권 박사 제공

황주 룡청은 한반도에서 가장 넓게 강냉이가 재배 생산되는 곳이다. 김일성 수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두 번씩이나 이 농장을 방문해 지도한 기록이 있다. 여기서 개발한 슈퍼옥수수의 표지 사진이 바로 “북한 적응형 슈퍼옥수수 남북공동연구개발”의 결과다. 1만 헥타르 3,000만 평에 주식인 강냉이만 재배되고 있었다. 6.25 사변 전에는 모두 배 농장이었다고 한다. 남북공동 슈퍼옥수수 개발 연구는 남한 과학기술부가 경북대학교 국제농업연구소에 연구비를 제공해 25개 연구소에서 추진했고, 그 시험 장소 중 한 곳이 바로 이 황주 룡천 벌판이다. 1,000쪽 분량의 이 책 보고서는 남한에서 육종한 강냉이 종자 5,000종이 북한 25개 시험장에 심긴 기록이다. 북한 과학자들이 시험장에서 일일이 강냉이 신품종 작황을 조사해 기록한 책자를 경북대 컴퓨터로 분석해 나온 보고서다. 이 보고서를 과학기술부에 20권, 북한 농업과학원에도 10권을 전달했다.

난 황주 룡천의 시험 농장을 여러 번 방문했다. 1999년 여름 강냉이 개화기에 이 농장을 방문했을 때는 마침 태풍이 와서 비가 세차게 내렸다. 조사 연구를 하기가 매우 어려웠으나, 내가 죽어도 북녘 동포를 위해서 연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안내원 세 사람이 우산과 비옷으로 날 보호해주는 가운데 좋은 강냉이 품종의 번호를 고르는 작업을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주 작은 종이에 선발 번호만 적었다. 이날 사진이 CNN 주선으로 사이언스 저널(Science Journal)에 실려 있다. 일을 마치고 평양으로 오면서 안내원들과 같이 차 안에서 속옷을 전부 벗어 물을 짜내고 다시 입었다. 군인 출신 안내원이 “박사 선생, 이러다가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 북쪽 강냉이 식량난이 해결될 때까지 절대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난 “동포를 위해서 북 강냉이 밭에서 죽는 것이 영광”이라고 답했다.

이 시험장과 이름이 비슷하고 룡천 핵단지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묘향산 가는 길에 위치한 개천시 룡진리 시험장은 북한 전역에서 강냉이가 가장 잘 되는 곳으로, 1956년 김일성 장군이 방문해 “강냉이는 밭 곡식의 왕이다”라고 말한 곳이다. 1999년 가을에는 강냉이 농사가 잘 되어 알곡이 헥타르당 12톤까지 생산되기도 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권민 참사가 도로가에서 날 부르며 “박사 선생, 박사 선생, 통일이 되었으니 빨리 나오시라”고 소리쳤다. 급히 밖으로 나오니 그가 말하길, 새벽 2시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김용순 대남 비서와 같이 보고를 했는데 “박사 선생에게 강냉이로 북녘 식량이 해결되면 반드시 통일이 된다고 전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를 더 옥죄어 연구를 앞당기기 위한 소리였다. 나는 그때 북한 지도자가 했다는 말을 믿고, 지금도 남한과 중국에서 열심히 북한 강냉이 연구를 하고 있다.

▲청산리 협동농장 전경. ⓒ김순권 박사 제공
▲청산리 협동농장 전경. ⓒ김순권 박사 제공

청산리 협동농장은 강냉이19호 (북한 이름 수원19호)가 마을 전체에 심겨 북에서 가장 잘 사는 농촌 마을이다. 이 농장의 한명화 관리위원장 (남한의 국회의원격인 인민대의원)은 북청에서 태어난 나의 부인 한은실 때문에 나를 형부라고 불렀다. 한 관리위원장은 “형부가 비료를 특별히 많이 가지고 가라고 했다면서 남포에서 남한 동포들이 보낸 비료 20톤을 받아 왔다”고 했다. 뽕나무 오디로 만든 포도주를 대접하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다. 또 다른 협동농장은 북에서 가장 먼저 생긴 원화리 협동농장이다. 이곳도 수원 19호(강냉이19호) 종자가 우선 보급되는 곳으로, 1998년 7월 3차 방문 때 내가 생생하게 경험한 하나님의 2번째 기적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화리 협동농장에는 농장 단원들이 기록한 책이 있었는데 김일성이 회원 1번에, 김정일이 회원 2번에 적혀 있고, 회원 3번은 비어 있었다. 4번 뒤에는 모두 단원들이 적혀 있었다. 나보고 3번에 당원 등록을 하라고 했다. 난 통일이 되면 반드시 등록한다고 했다.

내가 일한 3번째 협동농장은 단군릉이 있는 봉화리 협동농장이다. 이곳 농장장도 여성 인민대의원(국회의원)이었다. 난 김일성 수령이 모셔진 금수산 궁전에 3번이나 참배를 했다. 내게 머리를 숙여 인사하라고 간청하고 평양TV가 나와서 직접 찰영을 했다. 난 절대 머리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서서 묵념으로 기도했다. 방문을 마치고 옆방에 가보니 카메라 앞에서 “위대하신 김일성 수령님” 한 번만 적어 달라고 했다. 그러나 난 고집스럽게 “위대하신 하나님, 북과 남이 하루 빨리 통일되게 해 주시옵소서. 남조선 강냉이 박사 김순권”이라고 남겼다. 아마도 평양 군인열사릉과 묘향산 김일성 수령 기념관 및 김정일 국방위원장 기념관 등 10곳 정도에 같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난 김일성 수령의 어머니 강반석 집사가 다니신 평양의 칠골교회에 등록돼 있다. 내가 59차례 북한을 방문했는데, 첫 방문 때 예배 드린 곳이 바로 칠골교회이다. 간혹 큰 교회인 봉수교회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다. 봉수교회 방문 때에는 우리 집사람 한은실이 특송을 부르기도 했다. 평양에는 창광성당이 있다. 신부님들을 대동할 때는 교회와 성당 양쪽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교회와 성당 외에도 6곳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묘향산 및 보현사 사찰은 여러 번 방문했다. 북한에서 공기가 가장 맑고 좋은 곳이 묘향산이라고 한다. 통일 되기 전이라도 묘향산 공기를 비닐봉투에 넣어서 남한에 팔고 싶을 정도로 자고 나면 마음이 너무나 상쾌했다. 나의 북한 주제곡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을 새벽마다 호텔 문을 열어 놓고 불렀는데, 중국 동포 관광객이 아침에 호텔 앞에서 “조금 전에 찬송가가 들렸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불렀다”고 말해주었더니 너무 반갑게 인사했다.

국제옥수수재단(ICF)은 160만 비료 포대(각 20kg)에 기증한 교회와 가톨릭 단체, 혹 개인 이름을 적어 십자가를 붙여서 북에 전달했다. 1998년 1월 첫 방북 때 고려호텔 2층 세미나실에서 북한 관리들 30명 앞에서 북한 강냉이 증산 계획을 발표했는데 “만약 강냉이 증산이 실패하면 내가 십자가를 진다”고 선언했다. 단동에서 옥수수 알곡을 구입해 보내는 자루에는 큰 십자가를 붙일 수 있다는 특별 허락을 받았다. 실패하면 내가 십자가에 메달린다는 약속의 표시였다. 두 명의 초기 안내원이었던 권민 참사(남북 통일장관 북한 장관)는 오른쪽에, 라운석 민경련 참사는 왼쪽에 메달려 박사 선생과 같이 죽을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비료를 가장 많이 지원해 준 단체는 여의도순복음교회, 명성교회, 지구촌교회, 가톨릭 단체인 한마음 본부, 남측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와 전국 200여 개 중소교회들이었다.

▲십자가와 기증단체 이름이 새겨진 비료 3,000톤 (15,000만 포대)이 선적된 남포가는 배.  ⓒ김순권 박사 제공

▲십자가와 기증단체 이름이 새겨진 비료 3,000톤 (15,000만 포대)이 선적된 남포가는 배. ⓒ김순권 박사 제공

1998년 4월 10일 여수 남해 화학에서 첫 비료 3,000톤을 싣고서 북으로 가는데 그날 비가 너무 너무 많이 내렸다. 여수에서 비료 배를 떠나 보내고 해남까지 가는데 내 평생 비가 그처럼 내린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평양에 도착하니 남포항에 비료를 실은 배가 도착해 하역을 하는데 남측 동포들이 선물로 보내준 “황금의 비료”라면서 비료를 모두 내렸다고 했다. 이때 중앙일보사와 공동으로 “북한 옥수수 심기 비료 보내기 범국민운동”을 전개했는데, 남한 민화협 정책국장이 비료 1,000톤을 싣고 남포로 직접 가서 북한 민화협에 비료를 건내주고는 국제옥수수재단에 비룟값을 안 준 사건이 벌어졌다. 비료 값 3억 600만원의 원금 중 2억 600만원을 아직도 갚지 않고 있다! 정치 단체가 국민들의 모금으로 운영되는 NGO에 사기를 친 격이다. 이 비룟값에 가담한 두 간부가 현재 국회의원을 하고 있다. 나는 이 비룟값 사건만 없었으면 통일이 되었을 수도 있고, 북이 초기에 핵도 포기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북이 제안한 김순권-정주영 노벨평화상을 김대중 대통령한테 양보하라고 해서 양보했는데, 약속대로 김대중-김정일 추천이 안 되었을 수도 있다. 노벨상 공동 수상 가능성 때문에 정주영 회장이 소 1,001 마리를 몰고 방북했고, 이후 정삼회담, 이산가족 상봉, 최초의 국방장관 회담이 나의 주선으로 급속도록 추진됐다. 북한은 내가 약속한 노벨상 상금이 북에 한 푼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매우 섭섭해 했다. 실제 남북관계는 이때부터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난 통일을 위해서는 북에 절대 거짓말을 해선 안 되고,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해선 안 된다고 확신한다. 청와대 오찬에서 직접 대통령님께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 1주일 전 반드시 민화협 비룟값이 청산되어야 한다고 직언을 해 드렸다. 내가 들은 바는 평양에서 정상회담이 하루 연기된 것에도 국제옥수수재단이 대납한 민화협 비룟값을 갚지 않은 것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었다. 민화협 비료를 싣고 간 민화협 국장이 바로 개성공단의 남북 사무소 남한측 총책임자였다는 것은 남북 간 신뢰에 있어서 하나의 오판 장면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를 모른다. 신뢰가 생기지 않으면 통일이 될 수 없다. 한번은 청천강 언덕에 있는 정주 농업고등학교 출신 이산 가족인 한 회사의 사장이 자기가 다닌 학교가 아직도 있는지 꼭 한번 방문해서 사진을 찍어 오면 북 강냉이 밭에 뿌릴 비료를 지원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안내원들과 나의 신뢰 때문에 성사된 방문이었으나, 조선호텔 식당에서 점심 한번 먹이고 그것이 전부였다. 사진값도 안 주고 연락도 두절됐다. 북한 당국은 나에게 북한을 많이 도와주는 이산 가족들은 죽어서 자기 고향에 묻힐 수 있도록 허락해 주겠다고 약속했으나, 한 건도 성사되지 못했다.

우리 가족은 나와 부인 한은실의 재산 50%를 통일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우리 집사람은 오빠와 언니 가족까지 모두 45명 가까이 되고, 남북의 문이 열리면 이들과 같이 살 준비를 하고 있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특히 이산가족 1세대들이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반드시 통일이 이뤄져야 통일 후 북한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남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998년 4월 목숨을 걸고 북경 비료 회담을 주선하고, 현대 정주영 회장님이 소 1,001 마리를 몰고 북으로 가시도록 주선했다. 북이 필요한 강냉이 증산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선 정산회담이 되어야 하고 통일을 위한 전 단계로 이산가족의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끈질기게 북한 당국이 오해를 할 정도로 설득하는 등 남북의 심부름을 했다. 북한 강냉이 밭에서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남북 강냉이 연구를 열심히 했다. 총 5만 종을 시험해서 12종을 골라서 북한 지역 이름을 붙여 보급하게 도왔다. 재단의 일을 시기 질투로 방해하는 분들도 상당히 많았다. ‘옥수수 밭에 콩심기’ 등 북한법으로 금지된 콩심기 운동을 제안해서 생산량 10%를 먹도록 한 것이 장마당 형성의 시작이었다. 북에서는 개인이나 협동농장에서 자체로 먹어도 좋다는 경제법이 없다. 옥수수 밭에 콩을 생산하면서 된장과 간장이 20년 만에 다시 나오게 됐고, 콩우유가 수백만의 북한 어린이들의 생명을 구했다. 북의 문이 열려서 새로 개발한 당도 15%의 꿀 초당옥수수 “NKSugar OPV”가 3년간 생산돼 기다리고 있다. 북의 6개 생태 지역 어디에서든 선발 생산될 수 있도록 육종됐다.

북한도 핵만 고집하고 통일을 멀리하는 최근의 정책들은 고치길 제안한다. 금강산 남한 동포 관광객 총기 사건 등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사건들이었다. 개성공단 사무실 폭파도 마찬가지다. 난 현대의 금강산 관광도 버는 돈을 반으로 나누는 계약을 하도록 제안했다. 하루빨리 양쪽이 공생하는 남북 관계를 풀어가야만 한다. 우리가 통일이 되면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대국 코리아가 될 수 있다. 남한의 첨단 과학기술, 무역으로 외화를 버는 장사기술, 북한의 지하 자원과 노동력으로 남한과 북한이 처해 있는 어려운 경제 상황과 아이들을 적게 낳아 생긴 국가 존립의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 있다. 남한 울산 사람인 김순권 옥수수 박사와 북한 북청 사람인 한은실 사이에 난 세 자녀들은 미국의 일류대학교 (하바드, 코넬, 텁스)를 졸업하고 뉴욕 맨해튼에서 세계 제일의 IT회사와 금융 회사(JP 모건)에서 근무하며 미국 국적자이지만 한국인의 깃발을 날리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키워주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가도록 가정교육을 시켜야 한다. 부모가 도와주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들이 가난한 아프리카 등 세계 인류와 북한 동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보며 자라서 공부를 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젊을 때 고생이 얼마나 좋은 것인 줄 모르고 자라는데 가슴이 아프다. 애국자가 되고 세계 시민이 되고 통일의 일꾼이 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 전에도 “북한 강냉이와 남한 쌀을 맞교환하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지는 것은 양쪽이 윈윈할 수 있는 경제 통일 정책일 것이다. 통일이 모든 것의 열쇠이다. 운동권들만 통일의 주역이 되어선 안 되고, 국민 다수가 통일의 역군이 되길 제안한다. 통일된 한국은 세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통일이여, 어서 오라!!! 북한 동포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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