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부터 직장, 사회생활까지 뭐든 줄세우는 문화
비인간적 문화 속 열등감 겪거나 우월감 맛보기도
자신도 모르게 뿌리 깊은 만성적 피로 시달리기도
설교자들, ‘피로사회’ 기억해야, 강요나 선동 피해

하품 꿈 잠 피 게으름 피로 피곤 졸음 각성 수면
▲대한민국은 ‘피로사회’다. ⓒ픽사베이
설교의 목표를 삶의 변화, 다시 말해 설교자와 청중의 삶의 변화를 설교의 목표로 삼는다면, 얻을 수 있는 유익이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청중의 삶의 변화를 설교의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청중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청중을 이해하는 데는 청중이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이해와 안목을 길러가는 것이 필수라는 것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청중이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을 살펴보는 세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짧게 예고한 대로,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싶은 이 시대의 특징은 ‘피로사회’입니다.

‘피로사회’라는 말은 재독학자 한병철의 언어입니다. 그가 어떤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피로사회라고 일컬었는지 생각해 보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중이 마음을 이해하고, 청중이 가질 수밖에 없는 특성을 꿰뚫어 보는 데 큰 유익이 있습니다.

피로사회란 이런 것입니다.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각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 말 역시 재독 학자 한병철의 주장입니다(책 <피로사회> 11쪽). 여담이지만 지금은 코로나 혹은 바이러스라는 질병과 싸우는 시대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병철은 21세기가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주장합니다. 성과사회로 변모하면서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생산에 대한 부담감을 떠안을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에 뒤쳐질 경우 낙오자가 된다는 낙인이 자연스럽게 찍히고, 이 현상은 사람들은 우울과 불안으로 내몰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과’라는 단어가 가진 특징이 있습니다. 비교입니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성과를 더 올렸다거나 덜 올렸다고 평가합니다. 또는 기업이나 개인이 목표로 삼은 지점과 비교해 성과를 더 혹은 덜 올렸다고 평가하지요. 이처럼 성과라는 말은 그 자체가 비교를 전제로 합니다.

우리나라는 독특한 정서가 있습니다. 일종의 ‘줄 세우기’라고 불러도 좋을 문화입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심지어 직장생활과 사회생활까지 성적이나 외모나 수입이나 차량 소유나 주택 소유로 등급과 등수를 매기고 줄을 세우는 문화입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 문화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비인간적 문화에서 뒤로 쳐지면서 열등감에 시달린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이 독특한 문화를 지나는 동안, 비교 우위를 선점하면서 우월감을 맛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에게, 비교는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운 어떤 것으로 작용합니다. 일종의 DNA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청중 역시 이런 사회문화와 분위기 속에서 끝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고, 비교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는 사회를 살아갑니다. 더 빨리 생각하고, 더 빨리 움직이고, 더 빨리 더 많이 일하도록 강요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한국 사회를 경험한 사람은 누구라도 대다수의 사람이 분주하고 바쁘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분주하고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바쁘게 살지 않으면 그 자체로 일종의 죄책감이나 수치심을 느낄 정도입니다.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를 방문할 때,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단어인 것도 한국 사회와 문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대변합니다. 필자가 필리핀과 태국을 방문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가장 자주 또 쉽게 들었던 단어도 ‘빨리 빨리’였습니다. 특히 소비활동이 왕성한 지역이나 쇼핑몰에서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한국 사람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회, 무엇보다 끝없이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타인과 타인을 비교하는 사회, 성적이나 외모나 수입이나 소유라는 잣대로 사람에게 등급을 매기고 줄을 세우는 문화는 뿌리 깊은 피로를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청중이 이 같은 시대 속에서 자신도 모른 채 만성적인 피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피로사회가 만들어 내는 또 다른 풍경이 있습니다. 상상력과 사고력의 빈곤이 그것입니다. 성과라는 말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스스로를 비교하거나 비교당하면서 피로가 쌓이고 누적된 사람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고 어떻게든 비교우위를 선점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상상력은 사치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가만히 멈추어 서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과 내용을 점검하고 반추하는 일은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전락합니다. 뒤처지기에 알맞은 행동이나 태도로 간주됩니다.

이 시대의 특징을 살피면서 제일 먼저 말씀드린 것이 소비문화입니다.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피로사회 역시 소비주의 또는 소비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 더 큰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비교우위는 필수입니다. 바쁘게 움직이면서 더 높은 성과를 내야 합니다.

더 자주 더 많이 더 크고 좋은 것을 소유하기 위서는 분주하게 일해야 하고, 더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소비사회가 만들어 놓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지요.

한국 사회에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라는 단어가 유행했습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기 원하는 열망이 담긴 단어입니다. 1970년대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미국에서도 사용됩니다. 한국에서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단어들의 첫 글자를 사용해서 ‘워라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단어가 한국 사회를 강타했을까요? 일과 삶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과 삶의 균형 있는 삶을 향한 갈망 때문이지요.

한국 사회와 한국 사람은 부지런히 일하기로 유명합니다. 한국인의 근면성은 칭찬받을 만한 장점이자 강점입니다. 그러나 소비사회 속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축척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일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장점이나 강점이 아니라 가장 심각한 문제점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소비사회 속에서 지나칠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바쁘게 살아가는 생활습관은 한국 사회 자체를 피로사회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지금 한국은 피로합니다. 이 피로한 시대 한복판을 살아가는 청중들 역시 피로합니다. 설교자는 이 지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강단에서 울려 퍼지는 설교가 최소한 강요나 선동으로 흘러가지는 못할 테니까요.

지혁철
▲지혁철 목사는 “설교자는 하나님께 굴복하는 사람, 성경에 굴복하는 사람, 교회에 굴복하는 사람”이라며 “목사는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고 하나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하여 청중으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에 굴복하게 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전했다.
지혁철 목사
광주은광교회 선임 부목사
<설교자는 누구인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