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받은 후 인쇄술 발명 전 성경 전체 필사 맡아
성경 전체 암기, 해석에 절대적 영향 끼친 전문가
오늘날 ‘신학교수’ 해당, 하나님 말씀 전문적 담당

서기관 The Scribe 루드비히 도이치 Ludwig Deutsch
▲유대인 화가 루드비히 도이치(Ludwig Deutsch)의 서기관(The Scribe, 1894).

1. 들어가는 말

1) 문서의 역사

15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발명하자 인류 역사에서 실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큰 변화 중 하나는 책 만드는 법이었습니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모든 책들이 서기관들의 손에 의하여 한 페이지씩 필사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손으로 책을 필사하여 만들다 보니 자연히 책이 귀하고 또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더구나 신약과 구약 모두 합쳐 총 66권이나 되는 성경의 경우에는 너무나 방대하여 한 개인이 소유하기에는 그 값이 너무 비쌌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개인이 소유할 수 없었고, 교회나 회당에 가야 비로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마다 회당에 가셔서 성경을 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눅 4:16).

그런데 이렇게 66권이나 되는 성경을 손으로 필사를 하다 보니, 아무리 집중을 하며 쓰더라도 필사본에는 오류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훈련을 받은 서기관이 성경 전체를 필사하는 데 ‘약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이 아무리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쓰더라도, 거기에는 반드시 오류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온전히 보관된 필사본을 비교해 보면 어느 것도 동일한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모든 현존 필사본에는 반드시 오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오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연구 분야가 바로 ‘본문 비평(Textual Criticism)’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하나님 말씀을 다루는 서기관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전체적으로 보면 필사의 오류가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구텐베르크 초상화.

이런 필사본의 문제점들이 해결된 것은 A.D. 1450년경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입니다. 이제 각 나라 지방어로 번역된 성경을 싼 가격에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게 되어 그동안 신부들이 독점하던 하나님 말씀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였고, 인쇄본의 오류는 쉽게 발견되어 다음 판을 인쇄할 때 즉시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쇄술 발명으로 지식이 대중화되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정보 혁명’이라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더불어 종교개혁의 불씨도 전 유럽에 퍼질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만일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95 Theses)’ 30만여 부가 인쇄되어 순식간에 유럽 전역에 전파되지 못했더라면, 종교개혁은 불가능하였을 것입니다.

이후 인쇄물에 익숙해진 인류는 이전 서기관들에 의하여 문서들이 필사되었던 시대의 상황들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잘 모르면 그만큼 고문헌 연구 특히 성경이 기록되어 우리에게 전수되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성경의 정통성과도 연관된 매우 중요한 이슈입니다.

특히 성경에 106회 이상 나오는 ‘서기관’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면, 그만큼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의 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서기관’이라는 직업은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분야였고, 또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인기있는 직업이기도 하였습니다.

구텐베르크 인쇄술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만든 인쇄 기계.

정보 생산자·독점자, 출신보다 능력 우선 ‘꿈의 직업’
왕·제사장 ‘외형적 측면’, 서기관 ‘내용적 측면’ 관리
성경 구체적 언급 없지만, 신앙생활 이끈 실질 주역

2) 서기관 개관

그러나 누구나 갈망하였던 서기관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서기관이 되려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은 기본이고, 다양한 분야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동반되어야 하였습니다.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고대 사회에서 서기관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고, 때로는 신의 세계를 다루는 신비로운 직업으로 여기기조차 하였습니다.

상형문자나 쐐기문자와 같이 문법이 발달되지 않은 고대어들은 배우기가 매우 까다로웠고, 숙달되지 않으면 서기관 역할 자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계약서나 편지 작성 능력은 물론이고 수학, 과학, 천문학 등에 대한 지식도 필수였습니다. 또 당시 유행하던 지혜 문학(Wisdom Literature)에 대한 소양도 두루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언어도 정확하게 이해하고 번역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어야 하였습니다. 특히 외교 문서를 작성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일로 ‘최고의 서기관’이 되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능력이었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서 점토판 쐐기 문자
▲점토판에 기록하는 메소포타미아 서기관들.

이처럼 서기관이 되는 것은 뛰어난 재능과 노력이 동시에 요구되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후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꿈의 직업’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어려운 서기관이 되고 나면 그에 따른 보상도 매우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기관이라는 직업은 ‘출신’보다는 ‘능력’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평민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물론 서기관 중에는 귀족 자제나 제사장 등 상류 계급 출신도 많았는데 그 이유는 ‘신분의 특권’과 ‘행정 집행의 이익’을 한꺼번에 누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기록을 전문으로 하는 단순한 ‘기능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이들은 익명으로 활동하였지만, 실질적인 국가 운영 권력이 이들의 손에 있었습니다. 왕의 재산 관리부터 시작하여 국고 출납, 세금 징수, 병역 의무 부과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정보 생산자’이자 ‘정보 독점자’였습니다.

특히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서기관들이 성경을 필사하였다는 점에서, 같은 문서를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기능적인 그룹이라 단순화시키기 쉽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지식은 제사장을 포함하여 다른 어떤 그룹도 감히 필적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성경을 다루는 서기관들은 성경 전체를 줄줄이 암기하는 것은 물론, 성경 해석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성경 전문가’였습니다. 이들의 역할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일종의 ‘신학교 교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왕이나 제사장들이 국가 운영이나 제사의 ‘외형적인 측면’을 주관하였다면, 서기관들은 그 ‘내용적인 측면’을 관리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비록 이들의 이름과 역할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이스라엘 신앙 생활을 이끌어간 주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메소포타미아 문서 점토판 쐐기 문자
▲쐐기 문자로 점토판에 기록된 메소포타미아 문서.

사회 발전, 문명 발달, 왕국 형성 ‘기록’ 중요성 커
서기관 기본 역할, 다양한 사항 문서 기록 및 보관
국가 정보 독점, 거의 모든 분야 실질 영향력 끼쳐

2. 고대 사회에서 서기관의 역할

1) 시대적 배경

고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맹이었습니다. 인구의 10%도 안 되는 관료들을 제외하면, 나머지 90% 이상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주로 농업이나 목축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문자를 읽거나 쓸 줄 몰랐습니다.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굳이 힘들여 배울 필요도 없었습니다.

매매나 판매 등 일반 백성들의 일상적인 상행위는 대부분 구두로 이루어졌으며, 필요한 경우 ‘증인’을 두거나 ‘담보물’을 맡기고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창 38:18). 전설이나 신화들도 처음에는 구두로 전해져 내려오다가 후대에 이르러 비로소 문자로 기록된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사회가 발전해 가면서 기록을 남길 필요성이 점점 생겨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대한 왕국 형성으로 권력이 중앙집권화되면서 농업이나 목축에 종사하지 않는 엘리트 행정 관료들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들의 통치 수단으로 문서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인구 조사를 하고 왕의 명령을 전달하며 세금 납부 여부를 파악하고 개인간 매매 계약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수였습니다. 이 외에도 왕의 치적이나 재산 목록, 국가간 협약이나 거래도 문서로 남길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문명이 발달할수록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들이 무궁무진하게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절대 없어선 안 될 전문가요 행정 근간, 상당한 대접
신분 상승 사다리, ‘양성 학교’ 입학·성적 경쟁 치열
주술 및 점성술 등 예언 문서 통한 미래 세계도 관리

2) 서기관의 역할

서기관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이런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문서로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문법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은 고대 사회에서 읽고 쓰는 기술을 익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알파벳에 해당되는 문자만도 수백, 수천개가 넘었으며, 또 이들을 조합하여 문장을 만든다는 것은 마치 암호를 해독하는 것처럼 매우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따라서 왕, 귀족 그리고 제사장들도 읽고 쓸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기록된 문서를 읽는 것은 그나마 쉽습니다. 특별한 훈련을 받지 않으면 복잡한 문법에 따라 문장을 구성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아가 관습적으로 사용하는 문학적 표현 기법에도 익숙해져야 하였고, 지방 사투리나 여러 전문 용어에도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레닌그라드 필사본 서기관
▲가장 오래된 현존 히브리 성경 레닌그라드 필사본. ⓒ위키
문서를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보관하는 것도 서기관들의 중요한 역할이었습니다. 방대한 문서를 분류하여 빨리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효율적 국가 운영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고대 왕궁이나 신전에는 반드시 관련 문서들을 보관하는 도서관들이 있었으며, 이 전통은 지금의 도서관 제도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서를 기록하고 보관하는 일에 집중을 한 서기관들은 자연스럽게 왕과 귀족들을 포함하여 국가 전체의 정보를 독점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외형적으로는 귀족이나 제사장처럼 상류 계급에 속하는 높은 자리가 아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들이 배후에서 끼쳤던 영향력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났습니다.

이처럼 국가 운영의 핵심 내용들을 문서로 기록할 수 있는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절대 없어서는 안 될 전문가 대접을 받았고, 국가 행정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서기관들은 왕이나 권력자의 중요한 측근으로서 국가로부터 상당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이들의 활동 영역은 왕의 측근, 외교관, 과학자, 점성술사 등 실로 광범위하였는데, 모두 기록 능력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3) 서기관의 양성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들을 양성하는 서기관 학교가 많이 세워졌고, 이 학교를 졸업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될 뿐 아니라 신분 상승을 이끌어내는 사다리로도 활용되었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마치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주는 ‘명문대 졸업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자식을 서기관 학교에 보내려 하거나 혹은 자식이 매우 버티기 힘든 서기관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여 좋은 곳에 취업하도록 해달라는 부모의 기도를 적은 점토판이 신전의 창고에서 자주 발굴됩니다. 비록 가난한 농부지만 빚을 내서라도 자식을 서기관 학교에 보내 출세시키고자 하였던 부모의 마음이 지금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고대 서기관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①문서를 기록하고 보관함으로써 ’현재 세계’를 관리함 ②과거에 기록된 문서들을 정리함으로써 ‘과거 세계’를 관리함 ③사회적 가치를 모든 계급에 주입시킴으로써 ‘교육적 기능’을 함 ④주술이나 점성술 등 예언 문서를 통하여 ‘미래 세계’를 관리함. <계속>

류관석 교수
대한신대 신약신학
서울대 철학과(B.A.), 서강대 언론대학원(M.A.),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M. Div.),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Th. M. 구약 / M. A. 수료), Loyola University Chicago(Ph. D., 신약학)
미국에서 Loyola University Chicago 외 다수 대학 외래 교수
저서 <구약성경 문화 배경사>, <산상강화(마태복음 5-7장)>, <기적의 장(마태복음 8-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