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운동과 정치력의 타협 결과: 롬바르드파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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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이단자들 15] 왈도파 3-1: 왈도파와 롬바르드파

리옹의 빈자들 청빈 주목했지만, 온건한 비판 정신
왈도파 신앙인들 달리 로마 교회와 조화 관계 모색
교황, 롬바르드파에 수도원 가입과 설교 금지 명령
몇 년 뒤 깡그리 사라져.. 정치력에 의한 타협 결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코모 호수. ⓒ픽사베이
▲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코모 호수. ⓒ픽사베이

4. 롬바르드파

리옹의 빈자들(Poors of Lyon)이 점차 많아지고 명성이 높아지자, 이 운동에 경쟁 그룹이 등장했다. 알프스산 동북부 롬바르디(Lombardy) 지역의 빈자들, 곧 롬바르드파 무리였다.

오스카의 두란의 지도를 받는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겸손파(humiliati)라고 불렸다. 그들은 리옹의 빈자들 곧 왈도파 신앙인들과 비슷한 형태의 신앙운동을 펼치면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소박한 옷을 입고 다녔고, 맹세, 거짓말, 법정 소송을 금했다. 로마 교회는 롬바르디 빈자들과 리옹의 빈자들 곧 왈도파 신앙인들을 동일시했다. 두 그룹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왈도와 그의 추종자들이 롬바르디를 방문한 적이 있다. 호감을 가진 그 지역 사람들이 추종했을 가능성이 크다.

롬바르디 지역은 중세사에서 독특한 정치적 기능을 가진 곳이었다. 교회에 대한 비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카타리파 이단과 로마 교회의 비평적 설교자 브레시아의 아놀드(1110-1155)의 추종자들 사이에서 교회 갱신을 주창했다.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제국 정치와 결탁하지 않았다. 부패한 성직주의와 갈등을 겪지도 않았다. 다만 기독인다운 정신을 가진 삶을 추구했다.

사도적 소명을 설교가 아니라 공동체적 삶으로 표현했다. 시골 지역으로 다니면서 설교를 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사도처럼 사는 하나의 방법이지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삯을 받지 않고 노동을 제공하는 것도 사도적 삶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리옹의 빈자들은 마태복음 10장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선교 메시지에 주목했으며,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사도행전 1장에서 4장 사이에 나오는 공동체 생활에 역점을 두었다.

리옹의 빈자들과 롬바르디의 빈자들의 두드러진 차이는 노동관이었다. 전자는 노동을 부를 축적하려는 유혹의 굴레로 보았다. 후자는 봉사와 증거(witness)의 수단으로 여겼다.

리옹의 빈자들은 여행하며 노래하며 설교하는 것을 좋아했고, 롬바르디의 빈자들 가운데는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자들이 많았다. 이 그룹 지도자 오스카의 두란은 본래 양털 가공 기술자였다가, 나중에 롬바르디 빈자들의 정당성을 변증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사회적 연대감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했다. 왈도파 신앙인들과 다른 길을 걸으면서, 로마 교회와 조화로운 관계를 모색했다.

왈도파 신앙인들과 로마 교회의 관계 단절(1205) 뒤, 롬바르드파와 두란은 로마와의 관계를 재정립했다. 후대에 롬바르디의 빈자들 일부가 수도단을 조직했다.

교황 인노센트 3세의 윤허를 받아 가톨릭 수도단으로 출범했다. 롬바르드파는 가톨릭 빈자들(Poor Catholics)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롬바르드파 무리는 왈도파 신앙인들이 이교도들에게 성경적인 신앙을 가르쳐 개종시키는 것을 본받아, 점차 이교도들의 개종에 관심을 가졌다.

▲롬바르디아 지역 한 대성당. ⓒ픽사베이
▲롬바르디아 지역 한 대성당. ⓒ픽사베이

롬바르디 빈자들은 리옹의 빈자들의 청빈한 삶을 주목했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따랐다. 그러나 왈도파 복음전도자들이 카타리파 사람들과 함께 박해받은 것과 달리, 롬바르디의 빈자들―가톨릭 빈자들은 교회의 보호 아래 세력을 점차 확산시켰다.

왈도파 사람들의 비판 정신은 롬바르드의 빈자들보다 온건했다. 로마 교회의 성직과 성례를 완전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직자들이 죄 때문에 교회의 권한을 행세할 수 없다거나 영적 권능을 상실했다고 보지 않았다. 또한 성직자가 완벽한 존재이기를 기대하지 않았다.

로마 교회 안에도 좋은 사람들이 많으며, 사악한 사제나 고위 성직자들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로마교회의 ‘성체성사’―성찬을 신성화하는 것과 관련하여 성체의 실체는 오직 하나님 말씀으로만 변할 수 있다고 했다. 하나님은 간음자 또는 행악자의 기도까지도 들으시고 받아주신다고 생각했다.

반면 롬바르드파는 로마가톨릭 교회의 비호를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악한 성직자의 기도를 듣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악한 사제는 필요하지 않다. 그러한 사제가 올리는 기도와 미사는 효력이 없다. 나쁜 고위 성직자들의 위계(位階)는 무가치하다. 그들의 성례는 무효라고 했다.

롬바르드파의 이 주장들은 카타리파의 주장과 비슷하다. 교회에 대한 롬바르드파의 과격한 반대는 먹구름을 몰고 왔다. 교회 법정에 고소되었다가 로마 교회와 타협함으로써(1210) 미리 불행을 막았다. 이 대목은 이단 정죄와 정치력의 상관성을 보여준다.

그 무렵 성직자들은 수도사들이 펼치는 왕성한 사회활동을 혐오했다. 교회에 속한 기사(騎士)들도 그들을 귀찮게 여겼다. 성직자나 기사들은 이단자들을 칼로 해치우는 것이 간단하고 손쉬운 억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을 허비하여 이단자들을 교화하고 개종시키려고 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교황은 가톨릭 빈자들에게 기존 수도원에 가입하라고 명령(1237)했다. 여러 해 뒤에는 이들의 설교 활동을 금했다. 그러자 가톨릭 빈자들, 곧 롬바르디의 빈자들은 깡그리 사라졌다. 진리 운동과 정치력의 타협 결과가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최덕성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크투  DB

▲최덕성 박사가 발표하고 있다. ⓒ크투  DB
최덕성 지음, <위대한이단자들: 종교개혁 500주년에 만나다>(서울: 본문과현장사이, 2015), 제5장 2부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교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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