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신앙 배경, 모임 갖도록 촉구하는 말씀
고난과 박해 속에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내와 영적 투쟁을

일부 믿음 약한 성도들, 종말 신앙 흐트러져
모임 결석하는 일이 습관 돼, 믿음 작동 중지

도둑같이 찾아올 재림의 날 준비하며 격려해

은평제일교회 8월 1일 방호복
▲성도들이 방호복을 착용하고 거리두기를 한 채 예배드리는 모습. ⓒ은평제일교회

초대교회 성도들의 종말 신앙을 가장 잘 드러내 보여주는 히브리서 3장을 살펴보자. 이 서신서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신앙인들은 미래를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소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첫 서두에서부터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함을 증거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보좌에 앉으셨느니라”(히 1:3).

따라서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히 3:1), 또한 ”바라보자”(히 12:2)고 권고한다. 유대 전통과 구약성경에 탁월한 이해를 제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역과 다시 오실 미래적 희망을, 기독론과 종말론의 조합이 가장 선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 날”이 바로 가깝기 때문에 열심히 모이라고 권면한다. 참되고 온전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함께 모인 성도들이 서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이다. 이런 집회를 거부하는 자들은 잘못된 습관에 빠진 자들이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2-25)”.

왜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 모임에 나오기를 권면하면서 살았던가? 어째서 그들은 모임을 폐하려는 자들의 ‘습관’과는 달리, 열심을 내고 부단히 모이는 일에 대해 다짐을 했던가? 왜 모이지 않는 자들의 습관이 나쁜 것인가? 왜 우리는 교회에 모여야만 살 수 있는가?

위에 나온 구절은 성도가 다른 기독교 신자와 인간적인 접촉 혹은 친교 모임을 더 많이 하라고 촉구하거나, 차를 마시고 담소하면서 친숙해진다거나, 성도 사이에만 식사를 자주해서 깊이 사귐을 갖도록 하는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라는 조언이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본질적인 기독교의 종말 신앙을 배경으로 하고서 모임을 갖도록 촉구하는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낙심한 영혼들과 고난과 박해 속에서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여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는 인내와 영적 투쟁에 관련되어 있다.

또한 우리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배와 관련된 영적인 교제의 모임에 대해 격려하는 것이라고 첨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히브리서에는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의 대조가 나온다. 옛 언약은 이 세상에 관계된 것들이다. 새 언약은 장차 다가올 세상에 관련된 것이다.

믿음을 가진 자들은 이미 새롭게 되었고, 장차 올 세대에 접속되어 있다(히 6:5, 9:11, 10:1).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은 이 세상을 깨어버리고 들어온 종말의 시작이었다.

예수님의 모든 구속 사역들은 자연 법칙으로 움직이는 세상의 질서 속에 비상적인 긴급조치들이 개입한 사건들이다.

바울 사도의 서신들에 보면, 현재의 세상은 악하지만 장차 올 세상은 순결하다고 대조하였다. 히브리서에서도 불완전한 이 세상과 완전한 미래가 대조적으로 나온다.

히브리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옛 언약과 새 언약, 이 세상과 다가올 세상의 대조에 주목하여야 한다. 거기다, 두 가지 언약과 세상의 각각의 특징을 파악하고, 이 두 가지 대립 관계 사이의 관련성이 무엇인가를 파악하여야 한다. 이 편지는 구약성경에 익숙했던 유대인들이나, 흩어진 유대인들에게 보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스 박사가 히브리서를 이해하도록 제시하는 기본적인 구조는, 옛 언약 속에 새 언약이 미리 제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구약 언약에는 하늘나라의 실체가 표상적으로 제시되어 있고, 새 언약의 시대에 도래하는 것들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미리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구약 시대에 나온 것들은 새로운 언약에 비교하면 매우 열등한 것이었다.

특히, 보스 박사는 세 가지를 대조하였다. 히브리서의 가르침에서 독특한 부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사역의 탁월함인데, 구약의 언약과 새 언약의 대조가 가장 기본적인 교훈이자 대조를 이룬다.

히브리서의 마지막 장인 13장 10-12절에서 구약 시대의 성막과 제단에서 올린 제물보다 위대하신 속죄사역을 대조시킨다. “여기에는 영원한 도성이 없고, 우리가 장차 올 것은 찾는다”하는 종말론적 전망을 확고히 심어주었다. 보스 박사가 요약한 두 가지 언약에 대한 대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장소: 옛 언약은 땅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새 언약의 중심지는 하늘나라다.
둘째, 본질: 옛 언약의 본질은 육체적인 것이다. 새 언약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다.
셋째, 효력: 옛 언약은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고, 희미하여 실패했다. 새 언약은 역동적이며, 영원히 함께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안목을 갖고, 히브리서 10장 25절을 살펴보도록 하자.

초대교회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종말을 향한 신앙인의 태도와 자세이다. “그 날이 가깝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한 열쇠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야만 한다.

가장 정확한 영어 성경번역으로 알려진 ESV 신약성경에는 ’그 날이 가깝다‘는 구절을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 날”(the day drawing near)이라고 번역돼 있다. “아주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 날”을 대비하려는 성도가 깨어서 준비하려고 다 함께 모이는 일에 열심을 냈던 것이다. 이처럼 히브리서에는 종말 신앙의 언급이 깊이 배어있다.

또한 조금 뒷부분에 해당하는 히브리서 12장 22에서는 성도가 소망을 갖고 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을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히브리서 12장 18-29절에서는 “시온산”,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 “하늘의 예루살렘”, “하늘의 기록된 장자들의 총회” 등을 ‘교회(히 12:23)’와 동등한 개념으로 열거한다.

모두 다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자취와 흔적들이 사용되었던 것들인데, 모두 다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요, 결국에는 미래에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를 표상적으로 알려주신 것들이다.

히브리서 12장 18절이 지적하듯이 “성도들이 모임을 가지는 곳”은 ‘교회’이자 ‘천국’의 영역이었다. 앞으로 다가올 약속의 성취를 사모하면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자고 격려한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에 살던 성도들이라 해서, 모두 다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승리하신 주님의 재림 신앙을 굳게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곧 오실 것이라고 기대하였던 주님이 오시지 않고 하루하루 지나가면서 문제가 발생하였던 것이다. 머지않아 곧 재림하실 것이라 믿었던 기대가 성취되지 않자, 차츰 늦어지게 되면서 일부 믿음이 약한 성도들 사이에서는 신앙생활이 흐트러지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일부에서는 성도들 간의 모임에 나오지 않으면서, 아예 ‘습관’(habit)이 되어서 교회에 전혀 나오지 않는 자들이 있게 되었다. 그들의 신앙은 돌처럼 굳어져 버렸다.

그러한 자들은 성도들의 모임에 결석하는 일이 그만 습관이 되어 버렸다. 참석을 중단한 자들의 경우에는 믿음이 작동 중지 상태에 빠지고 만 것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이는 데에 힘을 썼던 이유는 ‘말세’가 가까이 온다고 생각하면서, 철저한 준비를 실천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졌던 재림 신앙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고, 매우 역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원천이 되었다. 이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보다는 주님의 나라에서 살아갈 소망을 더욱 더 확실히 하고자, 모여서 힘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신앙교육을 받았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 43절에 언급하신 바와 같이, 사도들은 ‘도둑같이’ 아무도 모르는 순간에 찾아올 재림의 날을 준비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재림 신앙을 확고하게 정립하기 위해서는 함께 그 소망을 나누는 성도들 사이의 격려,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모임이 중요하였다.

김재성 박사
▲국내 대표적인 정통 개혁주의 신학자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김재성 박사가 은퇴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송경호기자

김재성 박사
총신대학교 신학과(문학사)와 신학대학원, 합동신학대학원(M.Div, 목회학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M.A, 문학석사),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신학석사과정), 미국 칼빈신학대학원(Th.M 신학석사),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Ph.D, 철학박사)을 나왔다.

국제신대 부총장, 합동신대 조직신학 교수, 합동신대 칼빈사상연구소장, 종교개혁500주년 공동대표,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 한국개혁신학회 창립발기인 및 회장, 미국 Calvin Study Society Congress, International Calvin Congress, 세계복음연맹(WEA) Theological Commission 한국대표, 신학위원회 아시아대표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명예교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