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훈
▲이름없는교회 백성훈 목사.
하나님은 개인의 감사를 넘어 공동체의 감사를 원하십니다

시편 65편은 감사의 시입니다. 시인은 어떤 불평이나 원망을 하기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이 시편은 다윗이 저자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상 공동체가 함께 고백하는 듯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는 찬송으로 쓰여진 시로 생각됩니다.

이 부분은 우리가 감사의 고백을 할 때, 개인의 고백을 넘어 공동체가 함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흔히 개인의 감사는 그때 그때 감사한 일이 있을 때 고백할 수 있지만, 공동체의 감사는 공동체 모두가 감사의 고백을 함께 올려드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아서 함께 고백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군가 감사하면 누군가는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또 누군가는 슬픈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모두가 감사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공동체적 감사의 고백은 그만큼 큰 은혜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오래 전에 사역하던 교회에서 추수감사주일 예배를 준비하며 예배당에 현수막을 걸어야 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현수막을 설치하고 있는데, 한 집사님이 그 모습을 보더니 다가와서 말을 걸었습니다. 이 현수막을 설치하는 것을 자신은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영문을 몰라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지금 감사하지 않아요. 뭐가 감사하다는 말이예요. 우리 남편이 오늘도 저를 욕하고 때려서 도망나왔는데, 뭐가 감사해요.

성도가 이런 일을 당했는데 교회가 자기들 멋대로 감사하다고 저렇게 현수막을 달 수 있나요?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내 고통은 왜 생각해 주는 사람이 없나요?”

그 말을 듣는데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위로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다고 안 달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난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저도 그 교회를 떠나서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추수감사주일 현수막을 달고 있었는데, 순간 그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기도가 터져나왔습니다.

“하나님, 우리 모든 성도가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시오. 감사의 예배 중에도 슬픔을 가진 자들이 있을텐데,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감사할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라고 말입니다.

개인의 감사가 회복될 때 결국 공동체의 감사로 확대됩니다

그래서 본 시편과 같이 공동체적인 감사의 시가 너무 귀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편에서는 무엇을 감사하고 있을까요?

전체적으로 보면 죄를 용서받는 축복, 또 이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곡식과 양들을 받아 누리는 물질의 축복 등 자기들이 받은 여러 가지 축복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 감사의 배경을 알면 조금 더 이해가 잘 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 40년을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정착한 뒤로는 드디어 농경 생활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 시절을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모든 백성이 모여 먹을 것을 추수할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자는 이 시편을 쓰게 됩니다.

오래 전 사역했던 교회에서는 성미가 있었습니다. 성미는 성도들이 가지고 온 쌀을 성미함에 모아 목회자들을 돕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저도 전도사지만, 한 달에 한 번씩 성미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받았을 때는 마음이 어려웠고 불평도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집이 멀었습니다. 약 2시간 정도를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와야 하는 길이었고, 차도 없어서 오직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성미를 받아보니 양이 좀 많아서, 도저히 들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왜 나에게 들고가기 힘든 것을 주었는지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 집에 조금씩 나눠주고, 집으로도 좀 가져왔습니다.

자취를 할 때라 성미로 밥을 지었는데, 맛이 없었습니다. 쌀이 여러 종류가 혼합해진 상태였는데,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불평을 했습니다.

다음 번에 또 성미를 주길래, 이번에도 나눠주었습니다. 그 날은 추수감사주일이었기 때문에, 과일도 같이 받았습니다. 저는 또 집에 가져가기 힘들다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느 학생이 자기 집에 좀 달라고 해서, 이번에는 한 집에 다 몰아 주어야지 생각하고 같이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가 받으시고는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진심어린 감사의 말 한 마디에 제 마음이 부끄러워졌습니다. “내게는 저런 감사가 없었구나” 하면서, 나에게 이 귀한 음식들을 주셨는데 감사하지 못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개인의 감사가 없는데 공동체의 감사를 원한다면, 결국 정죄만 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감사하지 못하는데, 우리 교회 모두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우리 모두 감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정작 나부터 감사하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공동체의 감사는 개인의 감사부터 회복되어 점점 확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원리를 말입니다. 그래서 제 개인의 감사가 회복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시편의 위로
▲시편의 위로 백성훈 | CLC | 280쪽 | 13,000원
돌아보니 공동체의 감사를 기도하면서도 나 개인의 감사를 회복하지 못했다면, 아마 다른 사람들을 향해 왜 감사하지 않냐고 정죄만 했을 것입니다.

다윗의 인생을 돌아보면, 비록 왕이 되었지만 왕이 되기 전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도망생활을 했고, 왕이 되어서도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가야 했습니다. 그 파란만장한 삶 중에 한 나라의 왕이 된 사람인데, 이 먹을 것들이 눈에 들어왔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며 백성들에게 함께 감사하자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먼저 감사하고 더 감사하려고 이 시편을 쓴 것입니다.

이 시편의 저자가 바로 다윗이라는 사실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저의 경우처럼 다윗은 공동체의 감사를 위해 자기부터 더 감사했던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우리 하나님이 이스라엘 모두가 감사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고 또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들에 이런 공동체의 감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시편 속 수많은 다윗의 시들을 보면 원망과 불평도 많고, 그 삶의 이야기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태로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는 추수의 날에는 감사를 잊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이 너무 귀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들도 이런 공동체적 감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바쁜 현대인의 삶을 사는 우리 성도들은 이 감사의 마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결국 성도 개개인의 감사가 회복될 때, 교회 전체의 감사로 확대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다윗처럼 내가 먼저 감사의 마음 가지고 고백하도록 결단해야 합니다.

오늘도 스스로의 감사를 위해 기도하며 감사의 회복을 누리는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백성훈 목사(김포 이름없는교회)
<팀사역의 원리>, <시편의 위로>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