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회의 복지, ‘육’의 세계 넘어서야 하는 것”

이대웅 기자  dwlee@chtoday.co.kr   |  

‘디아코니아 코리아’ 주제 콘퍼런스서 ‘먹다, 듣다, 걷다’ 키워드로 강연

▲이어령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어령 박사가 강연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제3회 기독교사회복지 엑스포 '2016 디아코니아 코리아' 주제 콘퍼런스가 17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담임 오정현 목사)에서 개최됐다.

콘퍼런스에서는 '한국교회 대사회적 섬김에 대한 평가와 한국교회 미래를 위한 교회 통찰'이라는 주제 아래 이어령 박사(초대 문화부 장관)가 '먹다, 듣다, 걷다' 세 가지 키워드로 '교회가 해야 할 복지'에 대해 성화를 보여줘 가며 한 시간 동안 이야기했다.

이어령 박사는 "교회 바깥에 있던 사람으로서, 위기를 맞은 한국교회가 지금 당장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운을 뗐다.

먼저 '먹다'에 대해 이 박사는 "당장 급한 문제가 먹는 것인데, 이 문제만 제대로 알아도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다"며 "성경도 먹는 데서 시작해서 먹는 것으로 끝난다. 선악과로 시작해서, 부활하신 후 같이 식사하시며 빵을 찢는 것으로 끝난다. 마지막 설교에서도 함께 먹고 나누셨다"고 말했다.

그는 "함께 먹고 나누는 것만큼 구체적인 것이 없기 때문으로, 오늘날 교회가 '먹는다'는 것의 의미만 정확히 전달해도 복지가 달라질 것"이라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먹는다는 의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오늘날 크리스천의 메시지도 정치가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이야기하는 복지와 차원이 달라야 할텐데, 그것을 모르면 그들처럼 밥 나눠주는 것으로 끝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위쪽)’과 ‘만종’. ⓒ구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위쪽)’과 ‘만종’. ⓒ구글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과 '만종'을 보여주면서, 이 박사는 "밀레가 그린 농촌 풍경은 대단히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 가난과 고통과 슬픔이 배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의 메시지를 모르면 이것을 사회주의적으로만 해석해서 약자에 대한 동정과 사회 부조리에 대한 고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다"며 "거기서 끝난다면 우리의 메시지도 정치와 혁명으로 끝날 것이다.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한 차원을 버리자는 게 아니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령 박사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숱한 갈등과 싸움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했는데, 이 비참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해야 하는가"라며 "'만종' 그림 속 농부가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의 수고뿐 아니라 햇볕과 비를 알맞은 때에 주신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음을 감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박사는 "어렸을 때 기도가 뭔지 모르다 보니, 이 '만종' 그림을 볼 때마다 땅 속에 뭔가를 들여다보는 줄 알았다"며 "이처럼 모르면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왜 교회를 나오는가? 왜 기도하는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것을 교회에 나와서 볼 수 있는 눈을 얻는다면, 그것이 기도이고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Benedici’. 자녀들에게 식사기도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구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Benedici’. 자녀들에게 식사기도를 가르치는 장면이다. ⓒ구글

어머니가 자녀들에게 식사기도를 가르치는 샤르댕의 그림을 보여주면서는 "우리가 하루 세 끼 밥 먹을 때마다 기도하는 것은, 이렇게 밥을 먹게 된 것이 나의 노력만이 아님을 고백하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감사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사회복지의 출발이고 밥을 먹으면서 감사할 줄 아는 것이 사회복지의 시작이지, 뭔가를 주고 생색을 내는 것이 복지가 아니다"고 했다.

밀레의 그림들에서 가난한 농부들이 이삭을 주울 수 있었던 이유로는 신명기 24장 18-19절과 레위기 19장 9-10절 등에 나오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떨어진 이삭이나 포도열매를 줍지 않고 남겨두는'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렇듯 최초의 복지 개념은 의도적이기보다 '싹쓸이하지 말고 남겨 놓으라'는 소극적 복지였다"며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삭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걷어가서 문제"라고 전했다.

이 박사는 "예수님까지 가계가 이어지는 구약의 룻이 바로 과부이자 이방인,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었다"며 "밀레가 이삭줍는 사람들을 그릴 수 있었던 것은 룻의 이야기, 신명기의 이야기 등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학생과 신학만 배운 목사님들은 이 이삭줍기의 의미를 잘 모른다"고도 했다.

예수님의 첫 기적 '가나의 혼인잔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기적은 단 하나, 부활이고 나머지는 사인일 뿐"이라며 "예수님은 혼인잔치에 술이 떨어진 것에 대해 '여자여 나와 무슨 관계가 있나이까'라고 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을 채워주고 병든 것을 고치러 오시지 않았기에,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어령 박사는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러 오셨지, 마시면 취하고 사라져 버릴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지 않았음을 말씀하고 계신다"며 "그러나 예수님은 냉혹하고 법대로 하고 모든 걸 단칼에 밀어버리는 구약의 신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이고 악이 무엇인지, 슬픔이 어떤 것인지 아는 인간의 아들로 오셨기에 물리치지 않으시고 '일탈'하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박사는 "우리가 주려는 복지는 예수님이 권위로 맹물을 포도주로 만드는 그런 류가 아니다. 오해해선 안 된다"며 "진정 슬픈 자들, 죽어야 할 자들, 먹고 마셔도 여전히 배고프고 목마른 이들을 구하고 생명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잘못 하면 교회의 역할을 육의 세계를 만족시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듣다'가 시작된다. 그는 "먹는 것만, 빵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사람은, 예수님을 시험한 악마는 '빵만 주면 된다'고 했지만 빵만으로는 안 된다"며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양식이다. 듣지 않으면 배고프다. 죽는다. 여러분의 한동안 배고팠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마음이 고픈 것을 해결하지 못해 교회에 찾아온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Diego Velazquez의 ‘마르다와 마리아’. ⓒ구글

▲Diego Velazquez의 ‘마르다와 마리아’. ⓒ구글

이어 '마르다와 마리아'의 문제에 대해 전하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빵을 만들고 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마르다와 혼자 골방에 들어가서 열심히 말씀을 듣는 마리아 중 어디가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예수님은 모든 걸 버리고 말씀 듣는 일에 투신한 마리아를 택하셨다"며 "생명을 잃으면 천지를, 온 세상을 잃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제일 급한 것이 먹고 자는 일, 정치와 경제가 아니다. 무엇이 영원한 생명이고 진짜 삶인지를 찾아야 하지만, 이런 말은 안 먹힌다. 저 자신에게도 그랬기에 그 많은 세월을 비기독교인도 아닌 반기독교인으로 살았던 것"이라고 술회했다.

이어령 박사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그 길에서 '귀(ear)'로 예수님을 보게 된 것"이라며 "눈이 아니라 귀로 봐야 진짜 신앙이다. 여기 그림을 자세히 보면 준비된 음식들이 쏟아지려고 한다. 썩을 음식들을 쫓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까라바조의 ‘엠마오의 그리스도’. 음식 바구니가 식탁에서 떨어지려 하고 있다. ⓒ구글

▲까라바조의 ‘엠마오의 그리스도’. 음식 바구니가 식탁에서 떨어지려 하고 있다. ⓒ구글

또 "사랑 없는 복지, 단순히 물질로 돕는 복지로 끝난다면, 거듭난 영혼을 나누지 않는 급식이라면 포퓰리즘과 다를 바 없다"며 "그러면 교회가 설 땅이 없어진다. 요즘 모두가 복지와 나눔을 이야기하지 누가 혼자 먹겠다고 말하는가?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한 이야기, 권력과 부에 이용당하는 복지일 뿐이다. 교회마저 그래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마무리는 '걷다'였다. 그는 "예수님께서는 이집트로 피난가실 때부터 갈릴리 바다로,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끊임없이 걸으셨다. 총 거리가 약 240마일 정도 된다고 한다. 걷는 것이야말로 사랑의 실천이자 나눔의 길이다. 말씀대로 진리와 생명의 길, 하늘과 영생으로 향하는 길이셨다"며 "말뿐 아니라, 사마리아라는 배타적인 땅을 관통하시면서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진정한 사회복지는 걸어야 한다. 정신적이든 마음으로든 실제로든 걸어야 한다. 이 세상 끝날까지 걸어야 하고, 멈춰선 안 된다. 오늘과 다른 내일이 있어야 한다"며 "교회로 나오는 걸음이 바로 '뉴 라이프'를 찾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모든 걸 똑같이 만들어 내지만, '걷는 것'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참석자 대부분을 차지한 사랑의교회 성도들을 향한 '실제적인 제안'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아프리카 사람이나 자신의 원수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매일 일정 구간을 걷고, 그 걸음만큼 재정을 적립해서 물질적으로 빈곤한 사람들을 돕자는 것. 이에 대해 "이렇게 사랑의교회에서 1만 명씩 매일 걷는다면, 그 걸음 자체가 기도가 된다"며 "내 몸은 튼튼해지고, 그 사람은 천사를 만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이에 대해 "그렇게 10만 명이 걸으면, 10만 명이 천사를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먹고 듣고 걷는 것으로 실천하는 프로그램이고, '얼굴 있는 복지'가 될 것"이라며 "이는 '깡그리 다 먹지 말고 남겨두라'는 하나님 말씀의 실천이기도 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획이자 사랑의교회처럼 큰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오늘 강의는 여기서 끝내지만, '걷는 것이 기도'라는 생각으로 여러분이 지구 반 바퀴를 돌 수 있다면 한국과 세계가 변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성이 총장(한국관광대)의 강연과 오정현 목사의 인사말, 손인웅 목사(실천신대 총장)의 마침기도 등이 진행됐다. 사회는 최희범 목사(한국교회봉사단 상임고문)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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