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페트라 지역에 거주 가능한 인구의 검토

요세푸스 측의 주장에 대한 타당성을 더욱더 심도 있게 분석하기 위해 페트라 지역에 거주 가능한 인구는 과연 얼마나 되는지를 검토하여 보고자 한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처럼 과연 200만이 넘는 인구가 페트라에서 약 38년이나 머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왜냐하면,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했고(창 36:8), 에돔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바위 틈 높은 산악 지역에서 살았다(옵 1:1-3)는 분명한 사실과, 하나님께서 분명히 세일 산지를 에돔에게 기업으로 주신 사실(신 2:5)을 성서에서는 입증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세푸스 측은 에돔 땅 세일 산지 내에 있는 페트라를 가데스 바네아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페트라를 방문해 본 여행자라면 누구나 공통으로 느끼는 놀라운 여러 현상 중의 하나는, “천혜의 요새인 긴 협곡을 지나 높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에서 과연 어떻게 많은 사람이 살았을까?”라는 궁금증이다. 붉은 사암들이 펼쳐내는 기묘한 모양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함은 물론이고, 인간이 바위를 깎고 다양한 모양으로 조각하여 보기에 참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으며, 다양한 종류의 굴을 파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각종 시설과 무덤 등으로 사용했으니 말이다. 

특히 이곳의 지형 조건이 가져다 주는 문제 중의 하나인 급수를 해결하기 위해 오랜 옛날부터 페트라 주변 지역에 분포된 오아시스들에서 수로를 연결해 물을 끌어들여 사용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랍고 감탄스러울 뿐이다. 페트라는 온통 바위로 뒤덮여 있는 천혜의 요새로서 고대에 적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에는 최고의 요새(要塞)일지는 몰라도, 약 4.5 km나 되는 긴 계곡 내에는 사람의 생존에 필수 요소인 물을 공급하여 줄 수 있는 오아시스가 별로 없어,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이 살아갈 수 있는 지역이라고 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선하여 하늘에서 내려 주는 비(雨)에 의존하고자 했을 터인데, 과연 페트라 지역의 강우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요르단 정부의 한 보고서에 의하면 강우량이 가장 많은 시기는 연중 1~2월이고, 연중 평균은 150mm 정도, 가장 많이 내렸을 때는 연중 350mm 정도였다. 

그리고 페트라의 주변에 분포된 오아시스(천연 샘)를 살펴 보면 북서쪽의 아인 시야그(Ain Siyagh), 북쪽의 아인 벱드베(Ain Bebdbeh), 남쪽의 아인 브락(Ain Braq)과 아인 암몬(Ain Ammon), 그리고 동쪽 와디 무사(Wadi Musa)의 아인 무사(Ain Musa) 등이 있다. 여기의 오아시스에서 생산되는 물의 양을 조사한 기록은 아래 표와 같다.

찰스 오틀로프(Charles Ortloff) 박사팀의 탐사 결과에 의하면, 나바티아 왕국(BC 312~AD 106)과 로마 제국이 페트라에 만들어 놓은 급수 시스템(Water Supply and Distribution System)은 댐(Dam)의 숫자와 크기, 저수장(Cistern)의 숫자와 크기, 그리고 수로의 크기와 물이 수로를 따라 흐를 수 있는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본 결과, 약 10만 명 정도가 살 수 있도록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바티아 왕국과 로마 제국 당시에 약 2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고, 또한 페트라 주변의 오아시스에서 공급될 수 있는 물의 1일 최대 생산량인 1,087m³로는 약 3만 명 정도의 인구에게나 공급이 가능할 뿐이라는 것이 탐사단의 종합적인 결론이었다(참조: The Water Supply and Distribution System of the Nabataean City of Petra, BC300~AD300 Edomite, Charles  R. Ortloff, Cambridge Archeological Journal, 2005).

어쨌든 페트라에 공급할 수 있는 생수의 전체 양이 시간당 45.3m³ 정도였고, 이를 하루의 생산량으로 환산하면 약 1,087m³이다. 한 사람의 1일 생활에 필요한 물의 양을 40리터(0.04m³)로 보았을 때,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를 200만, 양, 말, 낙타 등 동물의 수를 50만으로 본다면 합계가 250만이나 되므로, 하루에 필요한 물의 양은 약 10만m³나 된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하루의 물의 양이 이스라엘이 필요한 하루치 물 양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형편없이 모자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저수장, 댐 등에 확보해 놓은 물이 있었다고 해도, 앞에서 확인하여 본 연중 강우량 정도로는 하루에 필요했던 양을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이 밖에도 와디 무사 지역에 4~5개 정도의 오아시스가 더 있지만, 나오는 물의 양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아인 무사는 페트라의 중심부에서 동쪽으로 약 7km 정도 떨어진 와디 무사에 있는 데 페트라 지역의 오아시스 중에서 물의 양이 가장 풍부하다. 이처럼 오아시스에서 확보할 수 있는 물의 양이 많지 않아, 페트라를 가데스 바네아라고 주장하는 측은 페트라와 그 동쪽에 있는 와디 무사, 그리고 북쪽에 있는 작은 페트라인 알-베이다 지역까지 포함하여, 이를 가데스 바네아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바티아 왕국과 로마 제국 당시 페트라의 급수 시스템 지도다. 탐사 결과, 이러한 수로 시스템을 만들고 개수한 것은 BC 300년경부터 AD 300년까지였다. 특히 빗물을 받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댐과 저수장이 아주 이채로운데, 물을 확보하는 문제가 최대 과제였음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당시에는 강우량이 지금보다도 훨씬 많아 그들에게 필요한 물의 양을 충분히 제공하고도 남을 수도 있지 않았겠느냐?” 하는 점과, 또는 페트라 지역 밖에서 낙타 등을 이용하여 물을 실어 왔을 수도 있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대의 나바티아 왕국과 로마 제국 당시에도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페트라 외곽인 알-베이다, 아인 벱드베, 아인 무사, 아인 암몬, 아인 브락 등에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저수장, 댐, 터널 및 수로 등을 만들어 급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처럼 탁월한 급수 시스템을 건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최대의 공급 가능 인구는 1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전성기의 나바티아 왕국과 로마 제국 시대에도 약 2만 명 정도가 살았을 뿐이고, 오늘날에 와서도 약 1만 4천 명 정도만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페트라와 같이 물의 확보가 쉽지 않은 험준한 산악 지역에서 2백만이 넘는 엄청난 인구가 38년이나 머물렀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다. (계속)

저자: 강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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