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박사(한일장신대·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제10장 인터넷과 채팅(1)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는 현상이 증가하고 있다. 복잡해지는 현대 생활 양상으로 점차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운 현실인데, 인터넷은 사람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현대인에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형성하여 일시적이지만 외로움을 극복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그런 이유로 인터넷은 비록 가상세계이지만 인간 정신에서는 동일한 효과를 갖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채팅으로 다시 이성(異性)과 사랑의 관계를 맺기도 하면서 점차 심화되는 추세다.

1. 채팅의 이해

인터넷에서 채팅은 그 변화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것이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고, 깊은 사랑의 마음을 교류한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인터넷의 일반화로 사이버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체험을 현실에서 느끼는 것과 거의 같을 정도로 경험하며, 시간과 공간의 장벽을 뛰어넘고 있다. 인터넷으로 컴퓨터가 쉽게 연결돼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처럼 네트워크화된 컴퓨터를 통해 타인과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통신 매체적 측면에서 사이버 커뮤니티(cyber community)라는 새로운 개념의 의사소통 집단이 형성됐다. 이런 채팅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심화되는 추세다.

1) 채팅의 정의

채팅(chatting)은 온라인상에서 컴퓨터로 대화하는 형태다. 대화에서 말을 주고받듯 키보드로 메시지를 입력해 네트워상에서 실시간(real time)으로 의사를 소통한다. 채팅이란 챗(chat)이라는 영어에서 비롯됐으며 잡담, 담소와 같은 가벼운 대화를 의미한다. 신분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는 점 때문에 현실처럼 이것저것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채팅은 대화를 주로 하는 또다른 만남의 공간이 되고 있다. 물론 상대방에 대한 정보까지 상세히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한다. 채팅을 즐기는 사람 가운데 상대방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자신의 고민에 대해 교감을 나눌만한 상대를 찾는 사람들도 있지만, 때로 속어를 사용하고, 자신의 정보가 밝혀지지 않는 특징을 이용해 시간 낭비성 잡담을 늘어놓는 몰지각한 경우도 많다. 이와 달리 채팅은 시간 낭비성 잡담보다 진실한 입담이 있는 대화가 원래 바라는 ‘챗(chat)’이고, ‘네티켓(인터넷과 에티켓의 합성어)’을 지키는 사람만이 사이버상의 대화를 진정으로 즐길 자격이 있다.

채팅은 무엇보다도 실시간으로 상대방과 대화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채팅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채팅사이트에서 원하는 종류의 대화방을 선택한 후 방에 들어온 사람들과 함께 동시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다. 그러던 채팅이 인터넷에서 남모르는 이성(異性)과 자신의 깊은 사랑의 감정까지 표현하는 상태로 발전해 거기에만 집착하거나 빠져드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물을 것도 없이 바로 컴퓨터로 대화하고 사랑의 감정을 쏟아놓는 형태다.

이제는 익명의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다 화상채팅이 등장해 실제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기에 이르렀다. 특이한 것은 이성과의 대화가 무르익으면 자연스럽게 성적인 관심으로 발전하는 점이다. 실제 이성과의 대화는 모두 성적인 전이(轉移)를 전제로 한다. 물론 채팅 당사자는 그것을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지만 말이다.

채팅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보지 않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더 큰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 성격적 특성에 기인한다. 상대방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의 대화는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주의가 떨어지기 때문인데, 이는 서로 얼굴을 보면서 대화하는 상호 작용에 부담을 느끼는 내향적이고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들의 경우 편안함과 심리적 안정을 느끼는 점에서다.

2) 인터넷의 그늘로서의 채팅

인터넷은 편리하지만, 거기에도 그늘이 있게 마련이다. ‘인터넷의 그늘’이란 인터넷으로 채팅·불륜·이혼이 늘어나는 사례를 들 수 있다. 가정법률상담소 통계에 의하면 인터넷중독 문의는 전년 대비 2배 급증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데, 인터넷 사용 인구가 급증하면서 인터넷 도박이나 채팅으로 가정불화를 겪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음란사이트나 도박사이트 등 불법사이트가 성행해 청소년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됨은 물론, (화상)채팅 등을 통해 불륜으로 빠지거나 성범죄로 이어지는 경우마저 빈발하고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청주지부 통계를 예로 들어보자. 2010년 11월 말까지 인터넷게임과 채팅에 의한 불륜 및 이혼 상담 문의는 총 49건으로, 총 이혼 상담 900여건 중 5%가량을 차지했으며, 이는 2009년(27건)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 가운데 이혼 결심을 굳힌 후 위자료 상담 등을 하는 경우도 상당수여서, 적어도 절반 이상이 실제 이혼한 것으로 추정하면 ‘인터넷으로 인한 이혼’이 급증했다는 결론이다.

인터넷 관련 상담 내용에는 음란물과 게임중독, 도박중독, 그리고 채팅중독으로 인한 불륜 등으로 이혼 상담이 주류를 이뤘다. 컴퓨터에 손을 못 대게 하자 휴대폰으로 채팅 상대자와 연락을 취해 만나는 등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채팅에 중독된 30대 아내를 둔 남편이 참다 못해 이혼 상담을 해온 경우도 있었으며, 또 채팅에서 만난 유부녀와 외도에 빠진 30대 중반 남성, 매일같이 도박에 빠져 사는 남편이 수개월간 부부관계를 멀리해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주부 등 사례가 다양하다.

직장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채팅을 한다는 회사원 김모(37) 씨는 “채팅을 통해 새로운 여성을 만난다는 것이 설레이기도 하고, 친해지면 아내에게 말 못하는 속사정도 얘기하게 된다”며 “주부들은 마음에 드는 대화 상대를 정해 그 사람하고만 채팅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제는 직장에서도 사이버 외도의 ‘경험담’은 그다지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말해 심각성을 일깨웠다. 지금까지 그 예를 실례로 들었거니와 가정법률상담소 청주지부의 상담부장의 말은 더 의미심장하다. “최근 배우자의 ‘사이버 외도’ 관련 문의가 30-40대 부부를 중심으로 늘고 있다”며 부부생활에서의 책임감과 절제력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3) 채팅의 문제

채팅의 문제는 일반적으로 인터넷 과다 사용과 관련된다. 다만 채팅에 몰입한다는 점만 다르다. 다음 중 한 가지만 해당해도 채팅중독을 의심할 수 있다.

0. 하루 중 2시간 이상 컴퓨터에 앉아 채팅을 한다.
0. 친구들과 노는 시간보다 채팅으로 만난 사람들과 노는 시간이 더 많다.
0. 다른 일을 할 때도 채팅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0. 다른 사람에게 컴퓨터로 채팅하는 것을 숨긴다

어느 기독교인의 사례를 들어보자. 그의 이메일은 “나는 매우 외로워요”로 시작됐다. “남편과 나는 8년 전 결혼했고, 교회생활도 매우 활기차게 했어요. 나는 몇 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도 했어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 남자를 만났고, 그 이후 아무런 설명 없이 갑작스럽게 남편과 교회를 떠났죠. 그 이후 교회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어요. 나는 내 본연의 생활과 멀어졌고 곧바로 성(性)중독임을 깨달았는데, 인정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나는 대학교육을 받은 직장 여성이에요. 사탄이 내 삶을 뿌리채 흔들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아요. 내가 알아챘을 땐 이미 나의 정신적 방황이 극도에 달했어요.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하루종일 인터넷을 해요. 나는 다시 교회에 다니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내 자신이 준비돼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그저 엉망일 뿐이에요.”

위 이메일에서는 절망과 낙담을 느낄 수 있다. 인터넷상의 관계가 얼마나 급격하게 삶을 변화시켰는지 믿을 수 없을 정도다. 그 중독성은 그녀의 성격까지 지배했다. 그녀는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일정 시간에는 모든 생활을 집에서 했다. 어떤 이유에서든 인터넷에 접속하지 못하면 그녀는 미칠 것 같았다. 때때로 인터넷에 들어가려 가사와 아이들, 이 모든 것들을 등한시한다. 그녀와 채팅하는 남자가 인터넷에 있을 때 아이들 중 하나라도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으면, 강제로 물러나게 만들어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그녀는 심지어 애들이 고집을 부리는 경우 애들을 발로 차고 소리를 지르면서 질질 끌어냈다. 실로 부끄러운 순간이 아닐 수 없으나, 채팅을 정사(the affair)라는 시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녀의 남편은 트럭 운전기사여서 많은 시간을 집 밖에서 보냈다. 그녀의 남편은 자신의 감정을 아내에게 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로 인해 그녀는 외로워서 대화방을 찾는다.

그녀가 사건을 일으켰던 그 사람도 기독교인이었고, 그 점이 서로가 얘기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둘은 종교에 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눴고, 잘못된 것은 없었다. 그러나 대화가 오래되고 분위기가 점차 무르익자 상황은 달라졌다. 둘은 모두 신앙심이 매우 부족한 기독교인들이었기에, 늘 괜찮다고 변명하면서 서로를 더 가깝게 끌어당겼다. 그러면서 둘은 서로의 진심을 알게 돼 공감하고 동정하면서 서로의 문제를 슬퍼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감정 교류는 흔히 성적인 문을 열어 대화하다 나중에는 육체 접촉까지 가능하게 된다.

이들의 사례는 결코 특이한 상황이 아니다. 이는 채팅이 갖는 특성으로, 상당히 보편적인 일에 불과할 수 있다. 실제 이들의 이야기는 인터넷상의 성적 유혹을 말할 수 있도록 ‘포커스온더패밀리(Focus on the Family)’에서 개설한 웹사이트 퓨어 인티머시(Pure Intimacy)의 비극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는 인터넷상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중독이 될 수 있고, 또 부정을 저지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2. 채팅의 원인

채팅은 그런 성적 관심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어디서나 쉽게 밝히기 어려운 성적 문제를 온라인상에서 해결하려 한다. 그러니까 채팅은 단순히 뇌에서 이뤄지는 관심을 대화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흔하지만, 더 발전하면 화상을 이용한 시각적으로 이어진다. 이런 횟수가 증가하면 물론 성(性)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성중독에 빠지면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개의치 않고 성적 쾌락을 얻는 데만 몰입하게 된다.

성중독(sexual addiction)은 종종 성학대(sexual abuse)와 결부된다. 패트릭 칸즈(Patrik Carnes)는 성중독자의 80% 이상이 성학대를 받았다고 추정한다. 성중독은 종종 인터넷 없이도 나타나지만, 인터넷에서 관계를 맺고 있는 수백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킴벌리 영(Kimberly Young)은 실질적으로 보다 쉽게 무차별적이고 중독적인 행동을 하게 하는 인터넷 환경은 익명성(anonymity), 편리성(convenience), 현실도피(escape) 등 세 가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여기서는 일반적 요인에 해당하는 채팅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1) 채팅과 관계의 외로움

채팅은 관계의 외로움이 일차적인 원인이라고 해야 한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고독한 존재다. 이런 고독을 떨쳐버리려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완전히 해소할 수는 없다. 그래서 신(神)을 찾고 자기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는다. 이처럼 채팅의 원인은 인간적인 간계의 외로움에서 이해돼야 한다. 인간적 외로움은 마음을 통할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나누는 성격이 1차적이다. 이는 현실보다 인터넷에서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을 찾고 있다.

인터넷은 모르는 사람과도 쉽게 대화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여기에 채팅의 대단한 유혹이 있다. 원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할 수 있다는 기대와 함께, 그에 따른 호기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 유혹의 힘이 마력과 같아서 채팅을 하려 든다. 예를 들어 채팅은 그 주체에게 별다른 부담 없이 즐기면서 대화하고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공간이 된다. 이런 채팅은 어느 정도 관심과 호기심만 가져도 시·공간을 초월해 즐거움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즐거움과 만족감은 사람이 본능적으로 추구하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특성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갖고 있는 본능이다.

즐거움과 만족감은 인간이 추구하는 본능 중 ‘향유’에 해당한다. 베르고트(Antoine Vergote)에 의하면 일, 의사소통, 사랑, 즐거움은 인간의 실존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네 기능은 인간에서만 찾아볼 수 있고,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거나 심리적으로 심각히 금지되면 정신질환으로 이행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네 가지를 인류학 전체가 담긴 표지라 말한다. 이런 본능은 때로 욕망이라 표현해도 어색하지 않다. 인간은 이런 욕망을 죽을 때까지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이처럼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과 만나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움을 넘어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 이때 그 대상이 이성(異性)이라면 그 기쁨은 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있지만, 그 대상이 이성이라면 더할 수 없이 좋다. 심리학적으로 이성과의 교류 또는 연합은 가장 강력한 에너지를 유발하는 특성이 있다. 이런 시각에서 아무리 하나님과 통한다 해도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만남과 교류의 특성은 인간이 반드시 충족해야만 할 욕망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욕망은 생활이 어수선하고 피곤할수록 내면에서 더욱 치솟아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의 마음에 도랑을 만들고 거기에 발을 담그라고 유혹한다.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교류하는 것이기에 어느 정도 체념적 태도를 갖거나 그들에게 다가오는 여러 즐거움에 자신을 내맡긴다. 이를 보면 그들은 한 가지를 알고 있는지 모른다. 인간에게 아무리 모든 욕망을 제거한다 해도, 무욕(無慾)의 상태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을 매혹시키는 대상을 뛰어넘어 그들의 현재 상태를 보완해 줄 것 같은 사람에게 사로잡히는지 모른다. 비록 어느 순간엔가는 약간의 죄의식이 들겠지만, 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죄의식보다 욕망이 그들에게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것을 채팅에서 한꺼번에 획득할 수 있기에, 마치 인생의 보물을 인터넷에서 찾은 것처럼 향유할지도 모른다.

채팅의 마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사람을 쉽게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점이다. 특히 채팅은 자판만 두들기면 항상 원하는 사람을 만나 교류할 수 있다. 이는 많은 수고와 노력을 들여 사람을 만나는 현실과 크게 다르다. 현실에서는 사람을 만나려면 여러 요소들이 작용해야 하지만, 채팅에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보편적인 채팅 중의 하나인 성인 채팅조차 만남의 방에서 결과를 즉시 알 수 있다. 채팅방에서 자기가 개진한 결과를 즉시 알 수 없다면, 채팅의 매력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이런 즉각성은 장시간에 걸쳐 수행되는 현실의 만남이라는 자발적 행위를 과소평가하고 망각하게 만들며,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 충동을 다스리는 억제력과 인내력을 저하시키도 한다. 이렇게 채팅 주체자들은 항상 조급증에 시달리게 된다. 별다른 노력 없이 즐기면서 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생각하면, 채팅이란 때로 불필요하게 시간을 소모하는 비생산적 행위라 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이를 소모적인 것으로 지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채팅에는 ‘교류전략과 대화기술의 함양’ 및 ‘보상’이라는 즐거움과 만족, 그리고 때로는 존재적 가치가 교묘하게 결합돼 있어 소비가 아니라 고유한 교류활동의 대가로 여긴다. 그래서 이들은 채팅 전략을 구사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예측력을 증진시키는 일이야말로 매우 합리적인 활동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채팅을 ‘즐기면서 사람을 사귈 수 있는’ 합리적 관계로 착각한다. 채팅의 위험성은 여기에 있다.

2) 네트워크 의사소통으로서의 채팅

채팅은 네트워크상의 의사소통이 또 하나의 원인이다. 네트워크 의사소통(network-communication)이란 개인이 개인에게 또는 다수가 다수에게 특정한 방향 없이 소통을 하되, 그것이 특정 네트워크 안에서 작동하는 소통 방식이다. 여기는 전달자와 수용자라는 구분 없이 모두가 전달자인 동시에 수용자로서, 특정한 방향 없이 다수가 다수와 소통을 하는 성격을 ‘다방적 소통(multi-way communication)'이라고 한다. 이런 다방적 소통이 일정한 지속성을 갖고 유지되는 경우를 네트워크 의사소통이라 한다.

‘네트워크 의사소통’은 소통의 특성과 소통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개념이다. 네트워크 소통에서 소통자들은 관계망의 한 결절점(node)을 차지하며, 메시지의 생산자이자 수용자로서 상호 관계에 놓인다. 안정화된 하나의 지점을 차지하면서 전체 네트워크를 살아 숨쉬게 만드는 소통이 바로 네트워크 의사소통인 것이다. 이미 정리된 정보를 탐색하는 데서 벗어나 스스로가 정보생산자로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거나, 인터넷을 ‘매개체’로 보면서 소통(computer-meadiated-communication)할 경우 네트워크 의사소통이 성공적으로 장착된다. 전달자(sender)에서 수용자(reciever)로의 흐름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동시 소통이 일어난다. 이런 시각에서는 전달자나 수용자가 아니라 모두가 참여자다.

채팅의 주체는 기술적 네트워크 위에 인간적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이들은 누구나가 ‘노드’로서, 일련의 흐름 속에 자신의 위치를 점하는 네트워크 의사소통 구조 위에 있다. 모든 채팅 주체는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동등하게 대우받으며,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누구도 ‘전달자’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가질 수 없으며, 수동적 수용이 강요될 수도 없다. 모든 채팅의 주체들에게는 자신의 개인적 책무, 이를테면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을 모든 사람에게 보고하는 태도를 가질 것이 권유되며, 이는 ‘보다 많은 전달자’가 있을 때 소통이 활성화됨을 알려준다.

네트워크 의사소통은 사람과의 단순한 대화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상품을 구입하거나 특정한 상담을 하는 것 등 실로 다방면에서 활용된다. 신용카드로 차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여 받기(drive-thru windows), 무료 상담전화(800-numbers)를 활용하기, 가정배달 등은 모두 소통을 편리하게 해 준다. 아직 기업들은 기존 고객들의 더 편리한 생활을 위해서보다는 새로운 고객, 즉 이전에는 불편해서 상품을 사지 않았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끌기 위해 이런 편의성을 활용한다. 많은 인터넷 사용자들이 정사나 성(性)중독에 빠져 있을지 모르는 동안에도 인터넷은 점점 편리해진다는 단순한 이유로 그들이 중독에 빠질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과거에는 작업장과 다양한 사회적 장소들이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어했던 사람들을 위한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다. 그러나 특정 시간에 특정 장소에 가야 하는 게 불편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심지어 신문과 잡지에 개인적 광고를 내는 데도 다소 불편을 감수한다고 느껴지는 시대다.

인터넷은 전체 만남의 과정을 간편하게 해 준다.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서비스는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연결시키고, 서로 알 수 있도록 게시판, 뉴스그룹, 멀티플레이어 게임, 대화방, 이메일, 메신저(instant messaging), 기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붙들 수 있다. 이 모두는 컴퓨터상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가정이나 직장에서 컴퓨터 사용자는 스프레드시트(spreadsheet)부터 활발한 의사소통(spicy communication)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런 문제 때문에 가장 인기있는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은 누구나 활발한 의사소통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져 단 한 번으로 클릭만 하는 것을 선호한다. 야후, 알타비스타, 아이빌리지, 그리고 다른 인기있는 웹사이트에 들어가는 첫 화면마다 다양한 클럽과 게시판, 채팅 영역들을 선전한다. 이러한 사이트들에 대한 대다수의 관계 지향적 영역들은 ‘로맨스 관계’, ‘도망가지 않을 남자를 찾는 편모’ 등의 이름이 주류를 이룬다. 나머지도 ‘더 많은 것을 찾는 기혼이며 애착심을 갖게 하는 여성들’, ‘자유분방한 부부’ 등 헤아릴 수 없다.

이보다 더 나쁜 것들은 매우 교묘하다. 여기에 킴벌리 영은 기본적으로 부정을 조장하도록 설계된 이같은 영역들은 ”처음에는 사람들이 충격을 받지만 동시에 가상에서 간통에 참여했던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인됨으로써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아무 때나 여기저기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가며 살펴보는 사람(casual browser)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설명한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에서의 의사소통은 현실의 부족을 보충하는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실생활에서 정사를 시작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은 사람들이 인터넷상의 정사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심지어는 폰 섹스(phone sex)와 만남을 주선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미 정사나 성(性)중독을 경험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채팅은 과거 패턴으로 되돌아가도록 유혹하고 있다.

58세의 한 남자는 슈나이더(Schneider)박사에게 “내 경험에 비춰볼 때, 인터넷 성중독은 이미 성중독 문제를 가진 사람이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성적인 어떤 것이나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게 일어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24시간 동안 언제라도 그곳에 갈 수 있고, 여러분이 선택하는 만큼 오랫동안 머물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이지요”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넘어 채팅은 어느새 우리 옆에 다가와 있고, 우리 생활에서 어느 정도 편리하게 결핍의 문제를 해결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자리잡게 됐다.

3) 공환성 체험으로서의 채팅

공환성 체험은 채팅의 원인 중 하나다. 공환성(共歡性, conviviality)이란 함께 지식과 마음을 공유하면서 즐거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공환성에는 대개 자율공동성, 기쁨 등의 의미를 가진 인간적·창조적·자율적 상호작용이 갖는 특성이 존재한다. 이는 개인이 갖는 지식이나 경험을 서로 나누고, 서로 도와주면서 즐거움이 극대화되는 특성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물론 자발적이고 비조작적인 인간가치 추구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의미하는데, 이때 인터넷에서는 순수한 언어적 소통으로 형성되는 또 하나의 사회를 이룩한다.

여기서는 신체를 사용해 함께 경험하는 일이 불가능하므로 단순히 언어로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기술, 경험 등을 서로 교환한다. 이때 언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언어란 우리의 정신경험에서 이름을 붙이는 작업으로, 또 일반화된 범주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언어만으로 충분히 소통하기는 쉽지 않다. 타인이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공유하기 위해선 충분한 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 이를테면 존재자에 대한 동일한 존재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언어에 의한 의미소통이 가능한 식이다.

그러나 채팅은 단순한 언어만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인터넷 채팅이 더 활성화되는 경우도 있다. 인간은 누군가와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나누려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진정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나누고자 한다. 자신의 마음을 언어로 나누면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경험하려 한다. 물론 이런 조건이 갖춰지려면 상대방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워야 하고, 서로 알고자 하는 열정이 존재해야 한다.

카페를 예로 들 수 있다. 전자언어에 의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카페는 이러한 열정의 공유지가 있다. 물론 회원들은 카페 주제에 대한 공통 의식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 사전에 형성된 관심 혹은 견해가 카페를 선택하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는 것이지, 카페에 대한 선택이 공동의 경험기반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카페는 유사한 수준의 친구를 시·공간의 틀을 넘어 발견하는 희열과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미 살아왔던 과거의 경험이 모임의 토대를 이룬다.

공환성은 심리적으로 인간의 욕구에서 이해된다. 여기에는 인간이 갖는 욕구가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욕구를 일리치(I. Illich)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체스를 잘하는 자는 언제라도 같은 정도로 잘하는 사람을 찾아 시합을 하는 데서 기쁨을 발견하고, 초심자는 초심자대로 또 다른 초심자를 발견하고 좋아한다. … 특수한 책이나 논문에 관해 의논하고 싶은 사람들은 아마도 논의 상대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그들의 노력에 대한 보수는 그 친구를 찾아내는 일이다.”

여기서 노력에 대한 보수가 자기와 함께할 “친구를 찾아내는 일”인 점이 특이하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며, 조직을 유지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 채팅을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힘에 의한 것이다.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체험이 가지는 ‘함께함의 즐거움’, 즉 공환성의 체험에 있다.

그러므로 채팅에서의 공환성이란 ‘관계’ 중심 개념이다. 상대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게 생각돼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다. 채팅은 이런 공환적 관계에서 서로는 경험을 나누면서 가르침과 배움이 출현한다. 상대가 더 많이 알고 있으면 그로부터 배우며, 자신이 더 알고 있을 경우, 상대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준다. 이런 가르침과 배움의 과정은 관계 유지와 긴밀히 결합되며, 존재 유지의 방식이다. ‘함께함의 즐거움’이란 자신의 삶에 환희를 던져 줄 수 있는 근원을 제공하는 것이다.

성별이나 신체적 조건, 인종이나 나이 등 존재 조건에 기반한 카페의 경우, 공환성은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비롯된다. ‘소외집단’의 경우, 사람들은 모임 자체에서 힘을 얻는다. 이런 카페의 구성원들은 자신과 유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바를 답하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독특한 집합적 즐거움을 수반한다. 상호 인정과 처지에 대한 공감, 그리고 집합적 실천의 실마리가 연쇄적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즐거움은 상호 작용을 통해 무언가를 나눠가질 때 발생한다. 이는 채팅에서의 공환성이 중요시되는 이유다.

4) 일상의 전환으로서의 채팅

채팅은 일상의 전환 원리에서 이해된다. 일상의 전환이란 일상을 벗어나 바꾸려는 심리에서 작용한다. 이런 전환에는 물론 시각 전환(perspective transformation)을 비롯해 생각이나 태도, 신념 등을 특정한 방향으로 돌리는 시각, 이른바 ‘의미 관점’에 전반적 변화가 이뤄짐을 의미한다. 채팅이 활성화되는 것은 채팅 주체의 내면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채팅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만큼, 자신이 이미 갖고 있던 시각 자체의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다. 그러나 서로가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심리적 충족을 이루고 다양한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내면의 충족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로 인해 채팅의 주체는 시각의 근본적 전환보다는 시각을 재구성하는 개별 단위요소의 전환이 이뤄진다. 민족주의적 시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일상의 체험 하나하나를 그 관점에서 바라보기는 어렵다. 또 모든 사태를 맹목적 민족주의 관점에서 재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채팅으로 서로의 의견이 교환됨으로써 부분적이지만 어느 정도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

채팅은 물론 인터넷에서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경험을 인터넷에 올리는 과정에서 일정한 전환이 경험된다. 오히려 일상에서 나누기 어려운 의견이나 심리를 더 깊게 나눈다면 충분히 전환의 역할을 경험할 수 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어 항상 좋은 의견을 교환하려는 욕구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 일상을 곰곰히 성찰한다. 다양한 분석 지침을 동원해 경험을 분석하는 것이다.

물론 경험의 논의가 그 자체로 비판적 성찰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문제의식을 경유하는 것이 요청되기 때문이다. 이때 채팅에서의 깊은 마음의 고백은 경험을 언어화하는 과정이다. 언어화는 일반적인 질서화 과정으로, 경험이 상황에서 지니는 의미를 조명한다. 중요한 것은 언어화의 지향성이다. 이런 시각에서 여성주의 카페에서의 고백이 의미를 갖는 것은 언어화의 과정에 ‘여성학적’ 시각이 경합했기 때문이다. 여성주의 카페에서의 대화는 모든 일상의 단편들이 이러한 시각으로 재단된다고 보는 데서 시작된다. 고백을 하고, 고백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일상 하나 하나를 주의 깊게 ‘여성학적으로’ 보는 반복을 경험한다. 비판적 성찰로 보면, 이렇게 자신의 생활 전반을 바라보는 자세는 자아의 사회적 구성을 밝혀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게 하는 중요한 전제다.

이렇게 보면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행위는 자신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내용을 게시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다른 일상의 내용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보며, 다른 사람이 일상을 보는 법을 읽는다. 이는 일상과 해석이 결합된 이야기가 공동체 유지의 핵심적 요건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이때 채팅 주체들은 사이버 공간 안에서라도 세계를 일관되게 경험하기 원하며, 그것은 일상에 대한 언어화 과정을 통해 가능하다. 이때 오프라인의 경험을 가장 적절한 해석의 틀로 재단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은 현상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인터넷의 오프라인에 대한 적용이 “맞아. 그렇구나!”하는 감탄의 차원에서 이루어진다면, 오프라인의 인터넷 전환은 “바로 이거야!”라는 의미발견의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채팅을 통한 전환 과정은 근본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지향해야 한다. 여기서 비판적 사고란 자신이 행하는 바나 내면적 신념의 가정(assumption)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과정, 즉 가정을 구성하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이때 비판적 사고는 일상적 사유의 전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종류의 학습이 된다.

그러나 그런 비판의식을 가짐과 동시에 전혀 다른 문제의 경우에도 상당한 수용력을전제로 해야 한다. 여성이나 유색인종, 동성애자 등 소외 집단의 개인은 아동기에 ‘객관적’ 이해방식을 받아들이고 그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지만, 이런 이해방식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지 못하므로 성인이 되면서 점차 자기 경험을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도 사회에 적응하는 동안 어느새 지배 논리에 의해 ‘사소하고, 어떠한 정치적이거나 일반적인 중요성도 가지고 있지 못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그 사소한 문제가 공동의 문제이며, 정치적이며 일반적인 문제라는 점을 인식해 나간다. 일상적 전환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작은 고려다. 생각의 전환은 상당히 복잡한 과정을 거쳐 가능하지만, 채팅에서는 매우 단순한 방법으로도 전환아 가능한 점이 놀랍다.

3. 채팅으로 인한 문제들

인터넷이 생활화되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문제점이 노출된다. 그 중 하나는 아직 성장해야 할 청소년의 정체성과 사회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를 꼽으라면 인터넷채팅과 음란물중독이다. 우리 사회에서 인터넷 채팅과 음란물에 대한 몰입은 초기를 지나 점차 일반화되는 실정이다.

국내 인터넷 주 이용자층인 10-30대의 15%가 성적 욕구를 음란사이트 및 음란 채팅 등으로 해결하려 집착하는 ‘사이버 성중독증’에 걸려 있고, 특히 5%는 그 증세가 심각한 수준이다. 한양대 사회학과 심영희 교수팀이 최근 10-30대 네티즌 226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15%가 ‘성적 흥분이나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에 인터넷에 접속한다’고 응답했다. 또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사이버 섹스 파트너를 찾고 싶어지는가?’라는 질문에 10대는 11%, 20대는 10%, 30대는 16%가 ‘그렇다’고 응답해 30대의 사이버 성중독이 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5%는 ‘사이버상에서 성 상대와 전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대답해 사이버 섹스가 현실로 이어지는 심각한 증세를 보였다. 적절한 자료를 제시하기 어렵지만 주부채팅을 중심으로 몇 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그 실태를 파악해 보자.

1) 채팅으로 고민하는 아내

채팅에 빠진 32세의 주부다. 그녀는 채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채팅에 빠져 남편과 아이(4) 돌보기에 소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 채팅을 멀리하려고 맘을 먹었지만 잘 헤어날지 모르겠어요. 결혼생활을 하면서 채팅에 중독되다 보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아요.”

그녀는 남편이 자신이 채팅하는 줄 모른다고 했다. 남편과의 성생활에 크게 불만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컴섹, 폰섹 하는 재미에 빠져드니 정신을 차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채팅 때문에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신경이 예민해져 사소한 일로 부부싸움을 자주 한다. 발신자 전화번호 표시라는 제도가 시행되니 폰섹도 그만둬야 되겠다 마음먹고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올렸더니 어떤 주부가 ‘인터넷폰을 이용하면 된다’며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 놓았더란다. 인터넷에서 무료로 전화할 수 있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발신자 표시도 되지 않을 뿐더러 통화기록을 삭제하면 증거도 남지 않아 일석이조라는 내용이었다.

‘컴섹’은 채팅으로 섹스를 하는 것을 일컫는 통신은어 중 하나다. 노골적으로 ‘음란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자위행위를 하기도 한다. 여기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 폰섹이다. 채팅으로 섹스를 즐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성적 충동에 빠져들게 되고 좀더 자극적 방법을 찾게 된다. 폰섹은 채팅을 하다 전화로 음란한 대화를 나누기 원하면 상대 남자가 전화번호를 가르쳐주면서 시작된다. 폰섹은 여자가 남자에게 전화를 거는 게 불문율이다. 이쯤 되면 폰섹에서 번섹으로 이어질 확률 또한 높다. ‘번섹’은 채팅을 하다 번개처럼 만나 섹스를 나눈다며 붙여진 통신은어다. 이처럼 인터넷은 생활에 편리함도 가져다줬지만 생각지 않은 새로운 통신은어를 익히며 살아야 하는 시대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2) 채팅에 중독된 아내가 말리는 남편을 살해

2009년 3월23일 서울 강서경찰서에서는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 채팅에서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하는 남편 강모 씨(39)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명모 씨(38)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이다. 단란했던 명씨 가정에 불화가 생긴 것은 지난해 11월, 명씨가 인터넷 채팅에 빠져들면서부터였다. 초등학교 3학년, 1학년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명씨가 채팅에 빠져들게 된 것은 심심풀이로 즐겼던 게임을 통해서였다. 게임방 대기실에서 게임하던 사람들과 일상적인 얘기를 주고 받으면서 채팅의 묘미를 맛보게 됐다.

그러나 평범했던 대화는 차츰 음란한 내용으로 변했고, 명씨는 헤어나지 못할 만큼 채팅에 중독돼 갔다. 남편은 아내의 채팅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에 대여섯 시간씩, 그것도 남편이 보는 앞에서까지 낯선 남자와 채팅을 계속하자, 막는 과정에서 부부싸움이 잦아졌다. 남편은 명씨가 채팅을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의심을 시작했고 갈등의 골은 깊어만 갔다. “채팅을 통해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있느냐”는 남편의 질문에 명씨는 “만난 적은 있지만 부정을 저지르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두고 불화는 끊이지 않았다.

명씨는 “다시는 인터넷 채팅을 안하겠다”며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들은 체도 안 하자 이에 격분해 술에 취한 남편을 찔러 숨지게 했다. 명씨는 범행 직후 관할 파출소에 찾아가 자수했다. 경찰은 “명씨가 꼼꼼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말했다. 집안 살림살이도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상태였다고 한다. 명씨는 “채팅을 통해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빌고 또 빌었지만 남편이 끝까지 의심하자 ‘이렇게 살면 뭐하겠나’ 싶어 같이 죽을 심정으로 남편을 살해했다고 한다. 명씨는 채팅에 빠진 자신의 행동에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렸지만 이미 ‘살인범’이라는 올가미가 씌워진 채 구속 수감됐다.

3) 남편이 채팅하는 아내를 살해

2010년 10월에는 채팅하는 아내를 남편이 목 졸라 살해한 일이 있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컴퓨터를 샀던 것이 화근이었다. 가정생활에 답답함을 느끼던 아내 이모 씨(38)가 컴퓨터에 흥미를 느끼다 빠져들었던 것이다. 인터넷에서 모르는 남자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며 스릴을 느꼈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만남이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가정불화는 예고됐다. 결혼생활 10년간 아이들과 집밖에 모르던 이씨가 채팅을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을 만난다며 새벽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는 횟수가 늘어나자 부부싸움이 잦아졌고 결국 살인을 부르고야 말았다.

채팅하는 여자들은 대개 ‘대화방에서 마음이 통하는 남자와 오랜 시간 채팅을 하다 결코 나쁜 남자가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만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채팅을 통해 여러 대화를 나눠서 그런지 낯설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실제로 만나면 채팅의 목적은 성관계에 있음을 단번에 눈치챌 수 있지만,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남자 손에 이끌려 러브호텔로 향한다’는 주부들의 고백이 적지 않다. 자신의 아내, 또는 남편이 채팅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다. 채팅에 중독된 아내에게 더 이상 채팅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하다 급기야 남편이 아내를 목을 졸라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4)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채팅 즐기다 이혼 당한 주부

채팅에 빠진 42세의 주부다. 그녀는 인터넷이 일반화되기 훨씬 전부터 PC통신을 이용해 채팅도 많이 해 봤다. 남자들로부터 유혹을 받기도 했고, 마음에 드는 남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감정을 느꼈지만, 더 이상 빠져들면 안될 것 같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 채팅의 수렁에서 빠져 나왔다.

그런데 남편이 밖에서 망나니같이 논다고 생각하니 생각이 달라졌다. 그녀의 성격상 밖에 나가서 낯모르는 남자와 성관계를 갖기는 좀 그렇고 해서 화상채팅을 이용해 ‘화끈한’ 사이버 섹스를 즐기다, ‘번섹’도 하게 됐다. 결국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됐고 이혼을 했다. 요즘엔 만약 채팅을 몰랐었더라면, 이 세상에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자신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후회했다.

그녀는 처음 남편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화상채팅을 하고 사이버 섹스를 즐겼다. 사업하는 남편은 늘 바빴고, 거래처 사람들 접대한다고 했지만 남편이 술과 여자를 좋아해 일부러 접대를 핑계로 술집에 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 남편이 ‘룸살롱에 가서 술 마실 때 남자들이 어떻게 노는지 아느냐’고 물어봐 그냥 여자 옆에 끼고 가끔 가슴 정도 만지면서 술 마시지 않냐고 대답했다. 이때 남편은 ‘세상 모든 아내들이 불쌍하다’는 소리까지 하면서 웃었다. 벌거벗은 여자가 탁자 위에 올라가 나체쇼를 벌이면, 가슴에 술을 따라 먹는 것은 기본이고, 여자의 성기 윗부분에 술을 부어 아래쪽에서 받아먹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 모든 짓을 혼자서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있자니 요즘 애들 표현처럼 머리꼭지가 돌아버리는 것 같다고 했다.

이상에서 우리는 몇 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채팅의 실례를 들었다. 채팅으로 가정불화가 일어나고 이혼을 하는가 하면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실로 무서운 것이 채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화상채팅이다. 최근 인터넷에는 화상채팅이 채팅문화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화상채팅은 말 그대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면서 하는 채팅’을 말한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폐쇄성을 내세워 얼굴 대신 신체의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고 사실상 사이버 섹스를 즐기는 화상채팅의 음란성은 위험수위를 넘어섰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공공연히 ‘나체쇼’를 벌이고 있어 탈선의 온상으로 자리잡았다. 화상채팅은 헤드셋과 PC카메라만 설치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예전 PC방에서 주로 이뤄지던 화상채팅은 공개된 장소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옷을 벗거나 자신의 성기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화상채팅을 통해 상대방의 얼굴을 확인한 후 마음에 들면 ‘번섹’을 위한 도구 정도로 이용됐던 화상채팅이 PC카메라가 가정에 빠르게 보급되면서 ‘사이버 섹스’도구로 이용되고 있다. 화상채팅 사이트에 개설된 대화방의 제목만 봐도 기가 찰 정도다. ‘배꼽 아래만 보여줄 뇨자’, ‘고딩꺼 보고 싶은 녀… 들어와’, ‘호~올~딱 벗는 방’.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만큼 자극적인 제목들로 도배돼 있다.

이런 화상채팅이 어느 정도 수준으로 이뤄지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10여 군데의 화상채팅 사이트에 접속해 ‘다 벗자구…’ 라는 부분을 클릭했을 때 여성동아 김순희 기자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방의 정원은 모두 10명. 남자 넷, 여자 2명이 화상채팅 중이었다. 팬티를 벗고 자신의 성기를 보여 주고 있는 남자, 자위를 하는 남자, 자신이 주부임을 밝히고 가슴을 애무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여자 등이 보였다. 물론 얼굴을 드러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에 입장하자 ‘캠 없는 녀 강퇴시키라’는 글이 올라왔다. PC카메라 없이 들어와 ‘구경’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방장(대화방을 만든 주인)이 강제로 대화방에서 쫓아내는 ‘강퇴’ 처리를 했다.

이런 현실은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 거리로 생각될지 모르지만, 실제로 채팅 현장에서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것은 이제 주부들이 가정에서 환상 채팅을 돈을 버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이런 것은 TV에서도 특집으로 다룬 바 있지만, 채팅하는 순간 계좌에서 돈이 쑥쑥 빠져나가는 실로 손쉬운 돈벌이가 되고 있다. 이런 것이 얼마나 더 늘어날지는 포르노 스타가 증가되는 지금 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4. 결론: 신앙에만 치중하면 주변 사람이, 신앙이 약하면 자신이 채팅 빠질 위험

지금까지 채팅에 대해 기술했다. 인터넷에서 이뤄지는 채팅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져야 하기에, 채팅중독을 다루기 전 일반적 채팅을 다뤘다. 채팅으로 엄청난 문제가 발생하는 데도 채팅을 간단한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서 그 실상을 소상히 다뤘다. 그러다 보니 정제해 기술돼야 할 정도의 문제를 그대로 노출했다. 현장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는 의도에서 가감하지 않은 측면도 있다.

실제로 채팅으로 가정이 파탄되고 심각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 그리고 정신 치료를 받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도 덮어두려고만 하지 않고, 비교적 적나라하게 기술하려 노력했다. 그래야 채팅을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다.

현대인들은 유달리 외로움을 느끼는 경향이 높은 듯 하다. 과학이 발전해 생활이 편리해졌는데도 인간관계의 문제는 날로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이런 인간관계의 문제는 더욱 채팅을 부를 위험이 크다고 봐야 한다.

채팅으로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가정의 문제로 이어진다. 현대인의 고독이 이런 채팅을 부추기는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실상과 달리 특히 기독교인들은 심각하게 생각지 않는 것 같아 그 실체를 다루는 데 중점을 뒀다. 채팅으로 부족한 성욕을 채우려다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심각하게 후회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교인들이라고 예외가 아님은 물론이다. 드러내지 않아서일 뿐 상당수가 채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임상경험에서 이런 채팅의 문제를 여러 건 상담해 알고 있다.

특히 이런 채팅 문제는 신앙에만 치중해 부부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에게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기독교는 영혼을 중시하고 신앙을 강조하다 보니 육체적인 성욕을 등한시하거나 무시하는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다. 물론 이런 경향은 몇몇 보수적 성향을 가진 신앙인들에게 국한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 발견되고 있는 점이 경각심을 갖게 만든다.

최근 성직자의 성적 문제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려 시끄럽기도 했다. 이는 본능적 문제를 억압하다 자신도 모르게 성적인 실수를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두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무익하다. 그러나 목회자는 인간의 성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할 필요가 있고, 아울러 교인들의 성문제 중요성도 인정해야 한다. 더 이상 영적인 것만 강조해 억압하면 또 어떤 사건이 사고가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직도 목회자가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교인들은 채팅으로 심리적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많이 남몰래 회개의 기도를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런 점을 고려해 목회자들은 채팅으로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서둘러 이를 전문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채팅으로 신앙생활이 흔들리고 가정이 깨지는 사건이 여기저기서 일어날지 모른다. 물론 채팅하는 교인들이 모두 번섹을 하고, 사이버 섹스중독증에 걸려 가정불화의 원인 제공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이해하면서 말한다면, 그런 교인들 중에는 어떤 면에서 채팅으로 새로운 활력소를 경험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채팅은 잘못하면 본인은 물론 가정까지 파괴하는 무서운 흉기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신앙생활에 매진하지 못하는 교인들이나 세상과의 단절을 시도하던 교인들이 어느 날엔가 심심풀이 삼아 또는 시간이 무료해서 채팅할 기회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간접적인 만남을 통해 폭넓은 경험의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여지를 생각해야 한다. 목회자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앙의 정진에 힘쓰도록 교인을 독려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인들의 부부관계, 그리고 가정생활의 원만성을 신앙과 동일한 정도로 중요하게 살펴야 한다. 이는 목회자가 채팅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고, 그에 따른 이해와 더불어 정확한 지식을 갖추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