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탐방
▲2011년 8월에 찍은 베데스다 연못의 유적지. ⓒ크투 DB
본문: 요한복음 5장 15-16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주님이 어떤 사람에게 하신 당부입니다. 어떤 사람이란 38년 동안 병에 시달리다 나았던 사람입니다. 주님이 성전에서 병 나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주님은 그 병자였던 사람을 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건강에 대한 당부를 하십니다. 이 말씀을 배경으로 ‘안식일 의미의 실종’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책임 회피의 조건이 되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은 잘못이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계속 재판에 회부될 것에 대한 압박을 받고 있었나 봅니다. 38년이나 앓던 병에서 나았는데, 기쁨은 고사하고 자칫하면 재판에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주님이 성전에서 병이 나은 그 사람을 알아보시면서, 아는 척을 했습니다. 사람이 많아 누가 자신을 고쳤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는데, 주님이 신분을 노출하신 것입니다. 그때 자신을 고친 분을 주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나를 고쳐준 분이 바로 예수라는 분이었다”고 알리게 됩니다. 그냥 알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혐의를 벗으려는 일종의 고발입니다. 요즘 말로 ‘꼬리자르기’입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입니다.

그때 사람이 너무나 많아 “나를 고쳐준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자신을 고쳐주신 주님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니, 나를 책잡지 말라”는 형식입니다.

그냥 앞뒤를 생각 못하고 겁에 질려 일단 회피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순진하게 한 말이라 해도, 결과적으로 고발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책임 회피가 된 것입니다.

2. 율법 준수의 조건이 되었다
안식일을 어긴 주님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사람의 말을 근거로, 유대인들은 주님을 안식일에 병을 고쳐준 사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안식을 어긴 문제의 사람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안식일은 노동하지 말고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날입니다. 30걸음을 걸으면, 노동으로 간주됩니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스위치도 누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건물에는 두 종류의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누르지 않아도 층마다 자동으로 서는 엘리베이터입니다. 다른 하나는 누를 수 있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안식일에는 “자동적으로 층마다 서는 엘리베이터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스위치를 누르는 것도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이니,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에 죽을병을 고쳐서도 안 됩니다. 안식일에 죽을 사람을 살려서도 안 됩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만이 중요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에는 유대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안식일이 율법 준수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의 근본 정신이 무시되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 자기 자식이 함정에 빠져 죽어가도 건지지 말아야 합니까? 그 함정에서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모든 법에는 특수한 경우도 인정되고, 예외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살인을 해도 타인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방위(正當防衛)라는 것이 인정되니까요.

3. 박해의 조건이 되었다
주님을 박해할 근거를 찾았다는 말입니다.

안식을 어긴 것을 근거로 “주님을 박해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본격적으로 주님을 박해할 단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의 말을 근거로 해서입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주님을 박해할 근거를 찾았습니다. 진정한 안식일 의미의 실종입니다. 주인과 손님이 바뀌었다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입니다. 주인이 손님 같고, 손님이 주인같이 되었다는 현실입니다.

안식을 주신 것은, 너무나 고된 노동을 계속하면 문제가 생기므로, 하루 정해놓고 쉬라는 뜻이었습니다. 하루를 쉬게 되면, 피곤이 풀려 일을 계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를 쉬면 문제 없이 일을 할 수 있기에, 건강에도 지장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안식일의 정신은 어디 가고, 오로지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사람이 구덩이에 빠져 죽어가도 “안식일이니 움직일 수 없다”는 식입니다.

더 가관인 것은 주님이 안식일의 주인이시라는 점입니다. 주님은 안식을 제정하시고, 인간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종들이 주인을 잡으려 하는 우스운 꼴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모르는 무지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4. 정리


우리는 인생 길에서 엉뚱하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올바른 것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것을 옳은 것으로 믿고 잘못 해동하게 됩니다. 무지 때문입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옳은 것을 선택하여 축복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책임을 회피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게 하소서, 잘못된 신념을 과신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게 하소서, 상대방의 선한 의도를 악용하는 파렴치한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참된 안식일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축복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
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