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무 목사
▲김진무 목사. ⓒ과천중신교회 제공
눅 10:25~37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저는 전에 이 말씀을 볼 때마다 마음에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 제사장이나 레위인처럼 그냥 강도 만난 사람의 옆을 지나다니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간증을 들을 때 아마 마음에 부끄러움을 갖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아주 중요한 예화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거의 죽을 때까지 그를 해한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 피해갑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사마리아 사람은 좀 달랐습니다.

그는 거의 죽어가는 사람을 봤을 때 아주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거의 죽어가고 있는데다가 상처가 보이니까 상처에 포도주를 부었습니다. 포도주는 살균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었다고 했는데 기름은 세균의 침입을 막아줍니다.

그렇게 치료한 후 그를 자기가 타고 가던 짐승에 태웠습니다. 가던 길의 중간 지점에서 그랬다면 15km 이상을 자기가 나귀를 타지 않고 그를 태워서 끌고 가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지금 그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에 마음이 쏠린 것 같습니다. 빨리 그를 살려야 하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주막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살리려고 돌보아 줍니다. 그 이튿날 떠나면서도 그 사람이 끝까지 살아나야 된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주막 주인에게 돈을 주고 맡깁니다. 그리고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돌아올 때에 더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웃은 바로 이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위인, 제사장, 바리새인 이런 사람들에게 너희도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그리고 강도를 만나서 상처 받고 죽어가는 사람은 누구를 말할까요? 저는 이것이 모든 인생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아담 이후로 사단의 공격을 받고 평생 동안 상처를 받으면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질병과 사망과 외로움, 환란, 재난 이런 일들을 겪습니다. 그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첫째로 여러분에게 말씀 드린 것은 우리 모두가 강도 만난 상처받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상처를 싸매시는 선한 목자시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죽어가는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해서 다가와서 자기 것을 다 주고 살리는 그 모습은 누구를 생각나게 합니까?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상처를 싸매십니다. 그리스도는 상처를 치유하실 때 절대로 자기를 아끼거나 머뭇거리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예수님이 여러분의 상처를 싸매시고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치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치유를 받은 사람입니다. 치유를 받은 사람은 또한 남을 치유 할 수 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치유 받은 사람은 또 남을 치유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남을 치유하면서 사실은 자기가 치유 받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는 나와 또 내가 치유하는 사람 사이에서 그분의 치유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 말씀 드린 것은 그리스도의 치유를 받은 사람은 또한 치유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계속 치유를 받으며 또한 그 치유를 나누며 사는 삶은 그리스도께서 지금 우리 안에서 이루고 계십니다. 그것을 그리스도 사랑으로 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점점 커지는 그리스도를 경험할 것입니다.

우리 믿음은 그리스도가 치유하신다는 것이고, 치유를 경험 할수록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점점 커지신다는 것입니다. 치유 받고 또 치유하는 일들은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속에서 계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감격하고 감사하며 주님에 대한 감동 때문에 놀라운 에너지를 받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베푸는 일이 두려운 일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특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