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어리석은 교회 지도자들을 잘 피해,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는 법

입력 : 2018.05.06 19:22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따사로운 5월, 철쭉꽃이 만발하여 산과 들에 피어있던 개나리와 진달래 향기를 밀어내고 자신의 향기를 마음껏 뿜어대는 가정의 달입니다. 이 사랑의 달은 더욱 짙어갑니다.

잔인하다는 4월의 끝자락, 평화를 위한 판문점 회담으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마치 평화가 이 땅에 상륙한 것처럼 만세를 합창하는 모습들은 고양이 앞에 생선을 쥐어주는 것 같아, 미래는 더욱 불안의 도가니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형님을 암살하고, 삼촌을 사살하던 그가 갑자기 평화의 목소리를 내는 위선의 두 얼굴을 보니,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싸웠던 선배들의 거룩한 행동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구 쏟아내는 위장 평화 공세에 휘말려, 우리는 또 다시 6·25와 같은 비극의 역사를 맛보게 되는 것일까요. 연평도 포격사건, 천안함 사건, 금강산 관광객을 뒤에서 무차별 사격하여 죽인 사건, 저 멀리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과 청와대 습격 사건을 벌써 잊었을까요. 얼마 전 일어났던 지뢰 사건으로 젊은 장병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던 그들이 금세 평화를 외치고 있는, 그 속내를 과연 믿을 수 있겠습니까?

평화는 의식주가 해결됐다 해서, 또 잠시 혼자 세상 근심을 잊었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소유의 욕심은 결코 만족을 모르고, 세상 누구도 근원적으로 혼자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이성과 합리를 내세워 인류가 만든 제도, 사상 모두가 진정한 평화를 우리에게 가져다 줬습니까?

사회주의가 그랬고, 자본주의도 역시 그랬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한 편리주의도 평화를 주지 못했고, 집단 지성의 결집은 때로 인류의 평화를 위협하고 불평등을 커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서 나온 선물이고, 아이와 같은 순전함으로 온전히 주님을 믿고 신뢰하며 따를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판문점 회담 때 평양에서 공수해 온 냉면으로 인해 평양냉면집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면서, 어쩌면 그렇게도 저들에 대해 모를까 하는 마음에  온 밤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이야기가 나옵니다. 기름을 준비한 슬기로운 처녀는 신랑이 언제 당도할지 몰랐기에 늘 기름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철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신랑을 맞아들여,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설마 신랑이 지금 올까' 방심하며, '나중에 기름을 구하러 가면 되지' 하면서 안일하고 게으르게 있던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팔지 않는 깊은 밤중에 도착한 신랑 때문에 기름을 구하러 갔다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큰 낭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5분 뒤를 모르는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불확실한 미래, '아직 다가오지 않음' 이라는 미래의 말뜻이 이미 그 속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고 모르기에 더욱 불안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조금 알면 조금 불안하고, 더 많이 알면 아는 것만큼 불안해할 것입니다. 준비 없는 미래, 대처하지 않는 미래는 참으로 힘이 듭니다. 그리고 알 수 없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찾아오는 불안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 실존의 한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불안은 무언가 준비되었다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실상 준비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무엇이 미래를 위한 제대로 된 준비인지를 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늘 주님을 사랑하며 믿노라 하지만, 늘 현실에 안주한 채 교회 안에 발을 걸치고만 있습니다. 그렇다고 현재에만 매달린다면 기복신앙으로 쉽게 빠져들고 말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 처한 현실은 외면한 채, 내세만을 앞세우는 신앙 역시 마찬가지로 위험합니다. 자칫 살면서 만나는 불안과 괴로움, 어려움에 눈감게 만드는 마취제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현재 내 삶에 뿌리를 두고 이끌어가는 방향타가 되어야 합니다.

미래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여기서 신앙은 하나님께 '불안하고 알 수 없는 내일을 맡겨드리는 행위'인 것입니다. 맡기기 위해서는 성찰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일과 관련한 그리스도인의 용기는 미래를 주님께 '오롯이' 의탁할 수 있는 참된 덕으로서의 용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방향타를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갈수록 세상의 죄상들이 더욱 악랄해지고, 포악해져 갑니다. 거짓말과 권모술수가 만연한 이 땅에서의 삶을 이겨낸다는 것은 참으로 과중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위선적인 평화에 쉽게 현혹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순교의 피로 세워진 이 땅을 지켜내야 할 권리와 의무를 반드시 이행해야 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이 땅의 수많은 순교자들의 절규를 마음판에 새기고, 기도로 하나님께 이 땅을 지켜달라고 부르짖으며, 목숨을 내놓기까지 희생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꼭 실천하며 지켜내야 합니다.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을 외면하는 미래는 더욱 어둡고 불안의 연속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일어나야 합니다. 지금까지 안일하고 무사했던 우리의 신앙을 다시 점검하며, 잠에서 깨어나야 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들이 뿜어대는 악취를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향기에 심취해 이 땅에 백성들이 오염되고 있음을 깨닫고, 복음을 들고 나서서 외쳐야 하겠습니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불안한 이 땅에 미래를 위해 주님께서는 십자가 군병들을 찾고 계시기 때문에, 손들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 땅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5분 뒤를 모르는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는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당당히 나서서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일들입니다.

그리고 더욱 불안케 하는 요소가 있다면, 교회 안에서 자칭 지도자라는 분들의 신앙 자질이 너무나 미비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앞세워 자신의 잇속 챙기기와 명예와 권력을 탐하는 지도자들이 있어, 한국교회의 미래는 더욱 암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세에 적그리스도들과 함께 춤을 추는 어리석은 지도자들 때문에, 연약한 신앙인들이 현혹되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으로 인도할까 두렵습니다.

교회 안의 지도자 당회, 노회, 총회가 앞장서서 다가올 주님의 재림을 위해 편견과 모든 거짓된 것들을 물리고, 불확실한 미래, 다가올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며, 잘했다 칭찬 듣는 주님의 귀한 종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 겸손과 온유의 마음만 지니는 지도자들이 충만할 때, 불안은 사라지고 주님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음을 확실히 믿고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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