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서평은 신학서적중고장터의 독서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칼뱅과 공동선

칼뱅과 공동선
송용원 | IVP | 360쪽 | 18,000원

◈너, 나, 우리?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상대주의적 세계관과 개인주의, 소비주의로 끝없이 분열되고 있다(14쪽). 이런 시대의 특징이 교회에도 나타난다. 최근 세습을 단행한 교회를 향해 많은 교회들이 염려하며 세습을 반대했다. 이런 반대에 대해 그 교회에서는 '우리 교회 일에 왜 다른 교회에서 참견을 하느냐?' 라고 반문했다. 교회도 철저히 상대주의, 개인주의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시대에 순응하며 사는 자들이 아니라, 시대를 향해 바른 길을 제시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할 사명이 있다. 우리의 사명을 어떤 형태로 구체화해야 할까? 저자는 이런 문제를 '칼뱅의 공동선' 연구를 통해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공동선'은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지만, 실제적 측면에서 그 개념을 파악하기 쉽지 않다. 이는 한국교회가 '공동선'에 대한 인식과 실천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공동선의 신학적 근거: 하나님 형상, 성화, 율법

저자는 칼뱅 공동선의 신학적 근거를 하나님 형상, 성화, 율법으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하나님 형상'은 단순히 외형의 닮음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를 뜻한다.

즉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존재를 뜻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반영함을 말한다. 그래서 인간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상호 사귐을 반영하여 인류간의 관계도 가진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래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관계를 통해 공동선을 이루며 살아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인류를 향한 일반은혜와 교회 공동체를 향한 특별은혜를 통해 공동선은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선의 바탕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참된 형상이시다(고후 4: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교회 공동체를 세우셨다. 그러므로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은 공동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이시며, 그리스도께서는 그 몸의 머리이시기 때문이다. 칼뱅의 하나님 형상 이해는, 비록 타락했지만 남은 자취가 보편 사랑을 위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

하나님 형상인 인간 이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에게서 더욱 구체적으로 성도의 성화를 통해 나타난다. 성화와 공동선은 무엇보다 '자기부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성도의 자기부정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성화에서 자기부정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통합적으로 일하시는 '삼위일체적 참여'이다(87쪽)."

이런 성화에서 자기부정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부정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성부의 맡기신 직무를 감당하였으며, 자기부정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 백성을 위한 삶을 사셨다. 그러므로 자기부정은 공동체를 향한 윤리이다.

이웃의 유익을 위한 자기부정은 겸손과 존중을 통해 나타난다. 이웃은 단순히 내 곁에 있는 사람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포용한다. 하지만 칼뱅은 인류를 향한 사랑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성도를 향한 사랑에 우선순위를 둔다.

성화에서 자기부정은 청지기 정신으로 나타난다. 성도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재화이기에 주신 목적에 맞게 청지기로서 사용해야 한다.

성도는 나아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십자가를 지는 삶은 공로가 아니다. 성화를 통한 공동선을 형성하는 자기부정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세상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주실 때 '필요'와 함께 '기쁨'도 주신다.

이 세상의 삶은 단순히 부정만 하는 삶이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을 함께 누리는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성화의 삶은 고역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선물을 누리는 기쁨이다. 이런 기쁨 안에서 성도, 교회는 공동선을 이루어간다.

송용원
▲송용원 목사.
"칼뱅은 율법이 공동선을 위해 인간에게 주신 사회 질서라고 말한다(119쪽)." 칼뱅은 율법에는 세 가지 용법이 있다고 한다. 율법의 제1용법은 사회적 용법으로, 율법이 가지는 일반은혜의 측면을 말한다. 이는 죄를 억제하고 제어하는 용법으로 인간의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에도 일정 수준의 사회적 질서와 공공의 치안이 유지되게 한다.

율법의 제2용법은 교육적 용법으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깨닫게 함으로써 겸손하게 만들고 회개를 촉구하며,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할을 한다.

율법의 제3용법은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자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의 백성들의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의 법'을 심어주심으로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함은 물론,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율법을 사용하신다. 그러므로 율법은 개인의 삶을 교정하며 이웃을 위해, 공동을 위해 살게 함으로 공동선에 기여한다.

2부에서는 칼뱅의 공동선 사상의 적용점인 교회와 인류에 대해 논의한다. 칼뱅의 공동선 사상이 단순히 이론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 적용과 실천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적용점을 고민하게 한다.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 성화, 율법을 통해 형성된 그의 공동선 사상을 우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측면에서 교회에 적용한다.

이런 교회적 적용은 '성도의 교제'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교제하며, 한 몸의 지체로 공동체를 이루며 교제한다. 이런 교회 공동선을 위해 성령의 선물, 은사가 주어진다. 교회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은사는 다양성 가운데서 일치를 이루어 나간다.

칼뱅은 교회의 공동선을 향한 지침으로 기도와 성례를 강조한다. 기도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이어야 한다. 이런 공동체적 강조는 주기도문에서도 나타난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과 그리스도의 가족으로 들어가는 성례이며, 성찬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는 교제의 식사이다. 교회를 향한 성령의 선물인 은사는 직분의 수행을 통해 공동선을 구체적으로 이루어간다.

칼뱅은 직분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 목사와 교사, 장로와 집사이다. 칼뱅의 직분에 대한 설명 가운데 공동선과 관련하여 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집사 직무이다. 칼뱅의 집사 직무 이해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역과 교회의 공동 유익(199쪽)"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들을 위해 해를 비추시며, 비를 내린다. 하나님의 일반은혜로 인해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간다. 이런 하나님의 일반은혜는 인간의 타락에도 인류를 위한 공동선의 공동기반이 된다.

존 칼빈
▲종교개혁자 장 칼뱅.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향한 공동선을 정치적·경제적·박애적 공동선으로 베푸신다. 정치는 인류를 파멸에서 보존하고 선을 위한 평온을 제공하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를 위해 시민 질서와 공직이 나타난다.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처럼 시민 질서를 위해서 주신 공직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해야 한다.

칼뱅의 정치에 대한 관점에는 '공적 비용' 개념이 있다. 그 가운데 '세금' 개념은 우리 시대 '종교인 과세' 문제에 대해, 단순히 정교분리 접근만이 아닌 공동선의 접근도 고민하게 한다.

경제적 공동선에서 칼뱅은 '경제적 성화' 개념을 강조한다. 칼뱅은 이를 노동, 상업, 임금, 이자의 관점으로 개진한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신적 소명을 이루는 방편이다. 비록 타락으로 노동은 고역이 되었지만 여전히 본래의 노동을 통한 기쁨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구원받은 성도와 교회는 노동을 종말론적으로 이해하고 노동의 기쁨과 은혜를 드러내야 한다.

임금, 상업, 이자도 창조의 본래 의미를 회복하며 종말론적 관점에서 개선돼 공동선을 이루는 도구가 돼야 한다. 칼뱅의 박애적 공동선은 '종합구빈원'과 '프랑스 기금'을 통해 잘 나타난다. "종합구빈원은 가난한 사람들의 기초 경제 권리를 보호하고 공익을 직접 보존한" 기관이다.(265쪽)

'프랑스 기금'은 당시 제네바로 몰려들어온 이민자를 위한 기관이다. 하지만 단순히 이민자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주는데 그치지 않고, 당시 유럽에 개혁신앙을 확산하며 영적 공동선을 이루어 갔다.

◈공동선, 공교회성, 공적신앙...

공동선에서 말하는 '공(共)'은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이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며 인간과 관계를 형성하신다.

칼뱅은 이런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을 성경을 따라 '언약'으로 강조한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언약을 맺음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생성되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언약 관계 속에 이루고자 하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근거로 인간과 인간 상호 간의 관계로 발전한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 관계는 실패하고 만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은혜 언약을 맺으시고 이 언약의 성취자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형상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의 참된 형상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신다. 언약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그런데 하나님 형상, 교회가 공동선의 보편적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기독교가 공적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런 질문은 미로슬라브 볼프의 <광장에 선 기독교>가 출간됐을 때 대두됐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다종교, 다문화 사회에서 기독교가 '공적 신앙'인가? 오히려 기독교는 그 배타성으로 인해 공적 신앙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알라 좌담회 볼프
▲2016년 <알라> 출간을 기념해 볼프 교수(왼쪽)와 ‘화상 채팅’을 하는 모습. 송 목사가 시무하는 은혜와선물교회에서 진행됐다. ⓒ크리스천투데이 DB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한 복음은 당대 '공적 신앙'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울이 선포한 복음은 1세기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공적 신앙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공적 신앙은 당대의 주류 사상이 아니라도, 공적 신앙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삶을 살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복음이 하나님의 세상에서 공적 신앙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형상, 교회가 공동선의 보편적인 근거가 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기독교가 공적신앙으로 공동선을 이루는 주체가 되기 위해, <칼뱅과 공동선>에서 저자가 소개한 신학적 근거와 적용에 주목해야 한다.

교회는 공동선을 먼저 예배를 통해 개선하고 시작해야 한다. 예배를 통해 선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하며, 성도의 교제를 이루어가야 한다. 예배에서 선포되는 설교는 개인적·주관적 메시지를 넘어, 공동선을 향한 공동체적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는 '나' 중심에서 '우리'의 기도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를 강조하기보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는 공교회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가 공교회의 개체교회임을 인지하고 공교회성 회복을 통해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공동선을 이루어가야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 세습과 교회 건물이 공용도로를 점유하고 종교인 과세 법안 등의 문제로 공적 신앙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칼뱅과 공동선>은 교회가 시대와 사회 가운데 어떤 자세로 세워져야 하는지 하는 분명한 이정표가 된다. <칼뱅과 공동선>에 나타난 성경적 가르침을 따라 한국교회가 공교회성을 회복하고, 공동선을 행하여 공적 신앙으로의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해 본다.

글: 임용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