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이 목사(술람미상담소 연구원).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여전도회가 연합수련회를 하였는데, 필자가 성경공부시간에 그 중 한 팀을 인도하였다. 성경공부의 내용은 사라와 하갈을 비유로 하여 약속을 받은 자와 약속을 받지 못한 자, 성령에 속한 자와 율법에 속한 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하갈 이야기가 나오자 연세 드신 분들이 첩으로 인한 자신의 한 많았던 고충을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그 분들에게는 사라와 하갈 이야기가 단순한 상징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가슴 아픈 사연들이었다.

성경에도 여인네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나온다.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는 자녀가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만, 기다리는 데 지쳤다. 사라는 자기 종 하갈을 통하여 자식을 얻고자 하여 그녀를 남편과 동침하게 하였다. 하갈은 임신을 하여 그의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였다. 고통이 극에 달한 사라는 남편에게 “내가 받는 모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내가 나의 여종을 당신 품에 두었거늘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나를 멸시하니 당신과 나 사이에 여호와께서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창 16:5)고 하였다.

당시 여종은 여주인의 허락 아래 여주인 남편의 ‘대리모’로 들어갈 수 있었고, 그 경우 이 여종은 더 이상 종이 아니라 그녀를 취한 남자의 아내의 자격을 얻게 되는 관습이 있었다. 그러나 여종이 자기 여주인을 깔보거나 멸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사라와 하갈은 질투와 분노로 뒤엉킨, 조선시대의 처와 첩의 관계처럼 되어버렸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여종을 마음대로 하라고 하자, 사라는 하갈을 학대하였다. 하갈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도망하였다.

광야로 도망간 하갈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여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하였다. 하갈은 하나님의 현현에 놀라며 주인의 집으로 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사라와 하갈의 갈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자 상황은 달라졌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는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스마엘도 큰 민족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내어 보내게 되었다(창 21:8-13).

사라의 아들 이삭과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각각 큰 민족을 이루었다. 그들은 공교롭게도 현재까지 원수처럼 싸우는 유대인과 아랍 민족의 조상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여주인과 여종 관계였던 사라와 하갈의 다툼과 질투에서 시작된 형제들의 분열은, 4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자손들의 끝없는 유혈전쟁으로 이어졌다.

축첩제도와 대리모가 당연시된 사회에서조차도 여인들은 괴로워하였다. 대부분 일부일처가 확립된 현대사회에 있어서, 더더욱 혼외 관계 애인의 존재는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주게 된다. 문제는 외도와 불륜에 빠지는 사람들이 배우자에게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주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부부사랑의 필수요건은 순결이다. 부부가 살면서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고통 중 가장 큰 고통은 다른 사람과 마음과 몸을 나누는 것이다. 당하는 사람은 고통을 이렇게 표현하다. “심장에 칼이 꽂힌 것 같아요” “너무 아파 숨을 쉴 수 없어요” “가슴에 총 맞은 것 같아요” 외도와 불륜은 부부의 신뢰관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머니, 할머니 세대에는 남편이 데리고 들어오는 여자와 한 집에서 살아야 했다. 그런데도 다른 여자를 껴안고 좋아하는 남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여인들은 그냥 울분을 쌓아놓고 한을 품고 살아야 했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기독교는 일부일처제 확립에 기여를 하였다. 이제 결혼은 종족번식이나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남녀가 평등하게 서로 존중하며 살아갈 수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가부장적 틀 안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믿음의 연약함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부부의 자녀 이삭을 통한 구속사를 이어가신다. 종종 일부일처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은 자기애적 쾌락주의자이거나, 배우자의 배신에 의한 상처의 심각한 고통을 전혀 모르거나, 주님 안에서의 진정한 부부사랑을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