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흔 목사(엘림코뮤니오).
세기적인 선교사 사도 바울의 신실한 제자 데모데(Timothy)는 ‘하나님을 공경함, 하나님의 영예’라는 의미를 지닌 주후 1세기의 신앙적 인물이다. 디모데의 출생지는 루스드라(또는 더베)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부친은 이방 헬라인이었고, 모친은 유니게(Eunice)로서 신흥 기독교로 개종한 경건한 유대인이었다.


유대교에서 개종한 크리스천 외조모 로이스(Lois)와 같은 집에 동거하면서 디모데의 신앙이 매우 돈독해졌으며, 인격도 고상해졌다(행 16:1, 20:4, 딤후 1:5).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구약성경을 철저히 공부하므로 신앙이 자랐으며, 모친과 외조모의 양육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청년 디모데는 신앙의 가정에서 양육되므로 늘 신실해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칭찬받는 자였다(행 16:2).

제1차 전도여행 중(47년-49년) 사도 바울 일행이 루스드라(Lystra)에 들어갔을 때 디모데의 모친과 외조모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됐다. 디모데도 그때 사도 바울 일행을 통해 새로운 신앙을 소유하게 됐고,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하여 극적으로 회심했다(행 14:6, 22, 고전 4:14-17, 딤후 1:5, 3:11).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까이 하였으나(딤후 3:15), 정통 유대인이 될 수 있는 할례는 헬라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받지 못했다(행 16:3).

디모데가 전도사업에 동참할 때 할례받은 정통 유대인의 반감을 살 것을 염려하여 사도 바울을 통해 급히 할례를 수행했다(행 16:3).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육신적 할례는 구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효율적인 전도 사역을 위해서 내린 사도 바울의 현명한 조치였다.

사도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주후 50년경) 중 남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신흥 기독교 교회를 방문했다. 바울은 디모데와 긴밀하게 친교하면서 그의 사람 됨됨이를 확인하고, 세계 전도여행의 동반자로 삼았다. 디모데는 그 지방 교회와 성도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아서 주 후 1세기 많은 사람들의 좋은 본보기가 된 것을 사도 바울이 참작했다(행 16:2). 당시 디모데는 교회 봉사를 위해 택함받았다는 예언이 있었기 때문에(딤전 1:18, 4:14), 사도 바울은 전도여행 출발에 앞서 장로들과 함께 그에게 안수하고 특별한 절차를 통해서 지도자로 성별 했다(딤전 4:14, 딤후 1:6).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따라 갈라디아, 드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등지에서 전도하며 교회를 설립했다. 사도 바울이 가이사랴의 옥중에 있을 때, 로마로 가는 항해에 그가 동행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로마에서 쓴 서신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빌 1:1,2:19-22, 골 1:1, 몬 1:1).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디모데는 스승과 같이 동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도 바울은 제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제자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로 보냈다. 당시 고린도 교회는 성도들 간의 분쟁과 더불어 불필요한 교리적 논쟁이 많아 골치를 앓고 있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제자 디모데가 골치 아픈 고린도 교회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랬다(고전 4:17, 16:10). 디모데는 그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에베소에 있는 스승 바울에게 돌아갔지만, 적잖은 영적 수확을 거두게 됐다.

디모데는 평소 말수가 적고, 소극적이며 내성적인 인물이었다. 디모데는 진실하고 매사에 헌신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을 대적하는 세력들에게 맞서지 못한 연약한 성품의 인물이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서 석방된 다음 그전보다 더 중요한 책임을 신실한 제자 디모데에게 맡겼다.

디모데는 매우 소극적인 성격이었지만, 진실하고 성실하며 헌신적인 성품이어서 사도 바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디모데전서를 보면 디모데는 문제 많은 에베소 교회의 감독을 맡았다. 청년 디모데에게 있어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임무였다(딤전 4:12). 성도들을 괴롭히는 거짓 교사들과 싸우며, 적절한 교회 임원(장로 등)을 임명하고, 교회의 시행 규칙을 제정했다.

사도 바울은 주후 68년 순교 직전,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최후의 편지, 디모데후서를 썼다. 죽음을 눈앞에 둔 외로운 노(老) 사도는 영적 아들 디모데가 자신 곁으로 달려와 줄 것을 간절히 바랐다(딤후 4:9, 21). 제자 디모데는 사도 바울로부터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고전 4:17)’, ‘믿음 안에서 참 아들(딤전 1:2)’ 등으로 칭함 받으며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주후 1세기 당시 에베소 교회 감독이었던 그는 도미티아누스(Domitianus, 51-96년) 또는 네르바(Nerva, 30-98년) 황제 때 순교했다고 전한다. 디모데는 스승 바울이 어려울 때나, 행복할 때나 늘 옆에 있었던 좋은 동역자였으며 위로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사역 또는 문제 많은 공동체를 바르게 세우고 리드할 수 있는 지도자의 자격을 강력한 카리스마에서 찾는다. 사도 바울의 제자 디모데는 외적으로 매우 소극적이고 연약하게 보였지만, 에베소와 고린도 교회를 비롯한 신앙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디모데는 하나님 주신 성실성과 더불어 이웃을 향한 희생적 헌신을 통해 놀라운 리더십을 발휘했다. 지도자의 희생적인 십자가 프리즘을 통해 하나님 주신 비전을 크게 바라보며 실천하므로 21세기 현대 사회도 바르게 세워질 수 있다. 오늘은 국가와 민족과 세계를 이끌 수 있는 헌신적 지도자들이 요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