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혁 목사 “전 세계에서 가장 힘들었던 아프가니스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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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혁 목사 설교] ‘강하고 담대하라, 환난날에 나를 부르라’

장소: 청주 양성교회
일시: 2024. 2. 4
본문: 수 1:1-9. 시 50:15

▲김명혁 목사가 과거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방문한 모습. ⓒ크투 DB

▲김명혁 목사가 과거 아프가니스탄 카불을 방문한 모습. ⓒ크투 DB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북한의 신의주와 평양에서 살았는데 신의주와 평양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일본 시대와 공산 시대 때 자주 감옥에 붙잡혀 가시면서 고난을 당하시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주일을 성수하면서 정성껏 예배 드리면서 살려면 감옥에도 자주 잡혀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양의 어느 감옥에 잡혀가 계시는 아버지를 찾아가서 “아버지 저 남쪽으로 갈래요. 여기서는 주일 성수를 하지 못하겠어요” 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를 한참 바라보시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께서는 “그러면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너무너무 사랑하시던 어머니 유춘택 사모님에서 “저 남쪽으로 갈래요” 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어머니는 울면서 “그러면 가”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저는 캄캄한 밤에 38선을 혼자서 뛰어 넘어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함께 오던 어른들을 모두 북한 인민군들에게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서 언덕을 넘고 파밭을 달리고 강을 건너서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주일 성수와 주일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남쪽으로 건너온 사건은 저의 삶을 귀중한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말씀들을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수 1:6).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라”(수 1:7).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수 1:8).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저는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귀중하고 축복된 말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저는 한 평생 주일을 성수하면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 한 평생을 귀중하고 아름답게 살아오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싶습니다. 사실 부족한 저는 한평생 주일을 성수하면서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난한 자들과 고난 당하는 자들과 슬픔과 어려움을 당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살아오게 되었는데 그것이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크신 사랑과 도우심과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28년동안 목회하면서 중국 연변의 가난과 고난 중에 있는 학생들 수 백명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북한에서 가난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아프리카에서 가난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게 되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서 극심한 가난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면서 학교를 건축해서 학교 준공식에 참예하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귀중하고 아름다운 일들이었는지 모릅니다.

연변 조선족 가난한 어린이들과 아프가니스탄의 극심하게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편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전합니다. 중국의 연변 조선족 어린이들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었는데 부족한 제가 사랑과 도움의 12년 동안 펴왔기 때문에 부족한 자에게 사랑과 감사와 고마움을 고백하는 귀중한 편지들을 아주 많이 써서 보내곤 했습니다. 그 중의 몇가지 사랑과 감사와 고마움의 편지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연변 지역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난을 당하는 고아 학생들에게 23년동안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 안과 병원을 하나 지어주고 노재인 선교사를 파송해서 15개 학교의 학생들에게 30여년동안 돕기도 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쌍한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 학교 하나를 지어주고 학교 준공식에 참여했는데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모슬렘 지도자들의 함께 참석해서 너무 너무 고마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으면서 감사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부르키나파소,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지를 찾아다니면서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기도 했는데 얼마나 귀중하고 축복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한국 교회와 사회에 필요한 사람들도 무엇보다 먼저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어떻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펴는” “착한” 사람들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너무너무 “착하신” 분들이신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그리고 사도 행전에 나타난 “착한” 사람들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 우리들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착함”을 우리 몸과 마음과 영혼에 지니고 나타내 보이는 “착한” 사람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39-45).

부족한 제가 중국 연변 지역이서 살고 있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처해있는 학생들을 23년 동안 도우면사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는데 조선족 고아 학생들이 저에게 보낸 사랑과 감사의 편지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그들이 보낸 편지들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김명혁 회장님께 안녕하세요? 저는 한창 소학교 필업을 앞두고 있는 소학교 6학년 학생입니다. 저는 오늘 회장님께 그동안 감사했던 마음을 전할까 합니다. 저는 리영숙 회장님을 통하여 회장님이 보내주신 장학금을 9살부터 받았습니다. 철없고 세상 모르던 저를 5년 동안 격려해 주시고 따뜻한 마음을 선물하셨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나이 어리고 힘들어하던 아이들에게 따뜻한 희망과 큰 용기를 주셨습니다. 회장님은 우리들의 기댈 수 있는 큰 나무, 따스한 태양 같은 분이십니다. 우리는 회장님이 계셨기에 더욱 학습에 열중하고 사회에 쓸모 가 있는 바른 사람이 되자고 노력했습니다. 회장님은 우리들에게 따뜻함, 배려심과 고마움, 사랑이라는 값진 선물과 희망, 용기와 실천이라는 뜻깊은 도 리와 행복, 즐거움과 뿌듯함이라는 금보다 귀한 재산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회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회장님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소녀로부터”

“김명혁 회장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초중 3학년생 김가희라고 합니다.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감사하다는 말을 올리고 싶어서입니다. 1년 전쯤부터 저는 행운스럽게도 아리랑재단에서 발급하는 장학금을 받게 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제나 저를 격려해주시고 제가 공부를 하는 데 힘을 보태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이 계셨기에 제가 더 쉽게, 더 편히 공부할 수 있었고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제 꿈을 위해 분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심이 생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회장님, 나아가 아리랑재단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요즘 받은 돈으로 제가 꿈에도 그리던 이어폰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중에 가서도 공부와 휴식을 겸하면서 더욱 우수한 학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님에게 이 또한 선물로 주신 회장님의 선심 덕분입니다. 이 감사한 마음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하단 말 한마디,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장학금을 받기에 손색이 없는 우수한 학생이 되겠다는 다짐 밖에 더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 1년간 저는 덕, 지, 체가 전면적으로 발전한 학생이 되기에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저 자신한테 대한 요구를 높이면서 더 우수한 학생이 되렵니다. 이렇게 고중 입시 시험을 앞두고 있는 지금, 회장님께서 먼 길을 마다하시지 않고 직접 우리를 찾아오신다니 너무 기쁘고 격동된 심정입니다. 빨리 뵙고 싶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회장님도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김가의 올림”

“존경하시는 김명혁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회장님께서 소학교 1학년부터 지금까지 도와주신 학생 변선화라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한테 아주 많은 도움을 해결하셨습니다. 무슨 곤란이 있다 해도 회장님께서 이렇게 방조해 주셔서 더 노력을 하지 무슨 일이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가정이 좋지 않아 공부를 끝까지 할 생각도 조금 머리가 아팠지만, 저한테 이 오랫동안 도움을 들여서 저의 학습도 괜찮고 행복하게 자랐습니다. 장님께서 제가 작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번 마다 도와주셔서 아주 감사합니다. 정례 변선화으로부터”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도문시 직업고중에서 자동차 기술을 배우고 있는 김경림이라 합니다. 우선 먼저 저에게 10여년 사랑의 손길을 주신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충심으로 되는 경례를 드립니다. 저의 가정생활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유일한 아버지의 혼자 농사 수입으로 가정을 이끌어야 하니 참 보기가 안쓰럽습니다. 존경하는 할아버지, 소학 시절부터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많이 부족하니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하여 유용한 인재가 되라는 뜻이라고 항상 생각해 왔고 바르게 커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에게도 꼭 밝은 미래가 올 것입니다. 끝으로 할아버지께서 항상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행운이 함께 하시길 진 심으로 기원합니다. 김경림 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량수진 민족연합학교 9학년에서 공부하고 있는 리해연입니다. 제가 필을 들게 된 이유는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다년간 지원의 손길을 주신 데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집 생활 형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어머니는 간질병에 지력이 처해서 하는 행위가 다섯 살 어린이와 별다름이 없고 부지런한 아버지는 어머니 병수발하랴, 저의 학습에 신경 쓰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세간 하랴, 정말 힘든 나날을 보내왔습니다. 가정생활이 너무도 어려워 책가방 하나, 책 한권 사기조차 힘들 때 할아버지께서 나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 주셨습니다. 김명혁 할아버지! 정말 고맙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신 김명혁 할아버지! 부디 옥체 건강하시고 무병장수하시기를 빌고 또 빌게요. 리해연 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성도, 이름도 모르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저에게 몇 년간 장학금을 보내주셨는데 이제야 비로소 문안을 올려 너무너무 죄송 합니다. 할아버지의 너그러우신 양해를 구합니다. 저는 도문시 제2소학교 6학년에 다니는 최승관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나의 병 치료를 위하여 다년간 외지에게 마른 일, 궃은 일, 품팔이하다가 끝내는 병을 지니고 돌아왔습니다. 70의 고령인 할아버지께서는 두 차례의 뇌경색에 걸렸으며 할머니는 40여 년간 심장병과 골질 증식으로 고생 하시기에 가정 살림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나로 인해 가정 경제가 어렵고 사회와 학교의 부담이 가중할 때마다 학업을 포기하려는 생각을 할 때도 없지 못해 있었습니다. 때마침 김명혁 할아버지께서 구원의 손길을 보내 주셨으니 실로 구세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 고맙습니다. 눈물겨운 고마움이었습니다. 나는 학습에 노력하여 사회에 유용한 사람이 되어 할아버지의 그 은혜와 보답하려 합니다. 할아버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최승관 올림”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도문시 제2소학교 6학년에 다니는 리향숙이라 합니다. 저의 아버지는 일찍 암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자식을 버리고 집을 나갔습니다. 지금 노동력을 상실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촌 동생 네 식구가 셋집에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께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해 지금도 굽은 허리를 펼 수가 없습니다. 우리 가정이 가장 어려울 때 김명혁 할아버지는 나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 다. 저에게 사랑의 단비를 뿌려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그 은혜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며 열심히 공부하여 꼭 훌륭한 인재로 될 것입니다. 끝으로 할아버지께서 장수하셔서 우리가 성공하는 그날 보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만수무강하세요. 리향숙 올림”

“존경하는 김명혁 할아버지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도문시 제2소학교 5학년에 다니는 박지연 학생입니다.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고아 학생으로서 어려서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심장병으로 고생하시고 있고 할머니는 디스 크로 인해 다리 마비가 왔고 대소변을 받아야 합니다. 손녀 공부시키기 위해 농촌에서 도문 시내에 왔으나 경제 수입이 없기 때문에 학교 다니는데 많은 어려움을 받아 왔습니다. 이때 김명혁 할아버지께서 정성어린 도움을 주셔 마음껏 학교로 다닐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어린이들이 보낸 사랑의 편지 고맙습니다. 저도 앞으로 학습을 잘하여 한국 할아버지처럼 어려운 사람을 도 와주는 훌륭한 사람으로 되겠습니다. 할아버지, 부디 건강하시고 매일매일 행복하세요. 박지연 올림”.

이제부터 “악의 축” 이라고 멸시하고 적대하는 아프가니스탄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2003년 7월 15일부터 26일까지 11일 동안 국제기아대책기구의 부회장인 정정섭 장로와 5, 6명의 후원자들과 함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세계 여러 곳을 많이 여행하고 다녔지만, 타지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여행만큼 힘든 여행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한재와 기근과 불볕 더위의 땅 부르키나파소 여행도 힘들었지만, 아프가니스탄 방문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쿤두즈 지역에 4, 5개월 동안 계속되는 여름의 기온은 40도와 50도를 오르내리는데 밤에도 열기가 뜨거워 아무 것도 덮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쿤드즈 지역은 물론 아프간 나라 전체가 짙은 흙먼지에 쌓여 있었습니다. 포장된 도로는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는 아무 곳에도 없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든지 길을 걸어갈 때 물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지 않고는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타고 다니던 차에는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와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쿤두스 공항에서 수도 카불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8시부터 오후4시 까지 8시간을 기다렸지만, 먼지가 너무 많아서 비행기가 올 수도 뜰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저녁 6시경 쿤두즈를 출발하여 자동차로 굴곡과 요철이 극심하고 험준한 먼지투성이의 산길을 24시간 달린 후 카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낭떨어지로 이어지는 험준한 산길을 달리는 것은 장애물 경기를 연상케 하는 아슬아슬한 모험의 연속이었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해 사람들이 몸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흙 먼지 속에서 한 주간을 지내다 보니 신도 옷도 머리도 몸도 짐도 모두 먼지투성이가 되었고 목은 계속해서 아팠습니다.

너무너무 극심한 고난과 고통 중에서 살아가는 아프가니스탄을 돌아보며 그들이 처한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 참예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극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극심한 어려움에 처한 아프간 사람들의 삶의 처지에 부분적으로나마 참예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재난에 처한 아프간 사람들의 육신적이고 영적인 삶의 향상을 위해 극복하기 힘든 가난과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몇몇 한국 선교사들과 현지 사역자들의 삶과 사역의 현장을 목격하고 깊은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 선교사들이 살기조차 힘든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서도 우리는 우리 선교사들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FHI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쿤두즈주에 3개의 학교(초, 중, 고등학교를 겸한)를 지어 주었는데 3학교에서 각각 1,500여명의 학생들이 행복하게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전도가 금지된 모슬렘국가이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의 빵과 복음을 전달받은 쿤드즈 지역의 어린이들과 지역의 유지들이 길게 줄을 서서 손뼉을 치며 우리를 환영했고, “할렐루야” 라고 소리를 지르며 연호하기도 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학용품과 과자가 들은 가방과 비타민 병을 나누어 주었을 때 저들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 경동교회 송월교회, 화평교회가 헌금한 헌금으로 1,700만원 상당의 학용품과 1,000만원 상당의 비타민을 한국교회의 이름으로 쿤두즈주와 카불 지역의 어린이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쿤두즈 지역의 국회의원이며 국경수비대장인 압둘라우 장군은 한국교회가 학교를 지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공식 석상에서 말하며, 학교를 더 많이 지어줄 수 없느냐고 저에게 거듭거듭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아프간 어린이들이 아프간 김명혁 목사님에게, 지금 반수에 달하는 아프간 어린이들이 학교가 없어서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 하나를 건축하는데, 8만 불 가량이 소요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지어진 학교에도 책상과 의자가 부족하며 학용품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결국 저는 2년 동안 강변교회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금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쿤두스 지역 무랃취흐 마을에 무랃취흐(Murodsheh) 학교를 하나 세울 수 있었고 이 학교의 준공을 기념하기 위해 아프간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타지키스탄에 본거지를 두고 아프간 사역에 전력하고 있는 이미정 선교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프간에 있다가 타직에 가면 타직이 천국 같고, 타직에 있다가 우즈벡에 가면 우즈벡이 천국 같고, 우즈벡에 있다가 한국에 가면 한국이 천국 같아요.”

저는 황폐한 땅 아프간에 사는 어린이들을 잊을 수 없어서 1,400만원 상당의 선물 보따리를 가지고 2005년 12월 15일 밤 국경을 넘어 ‘지옥’과 같은 아프간에 간 것이었습니다. 타직 비자가 나오지 않아서 우즈벡에서 15일 새벽 3시에 떠나 자동차로 23시간을 달려서 우여곡절 끝에 아프간 국경을 넘은 후 또 달리고 달려서 16일 새벽 2시경 아프간 쿤두스에 도착했습니다. 불법으로 캄캄한 밤에 국경을 넘어서 아프간에 도착했는데 저는 국경수비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프간의 국경수비대장 들라워 장군을 만나서 내가 국경을 불법으로 넘은 것은 내가 사랑하는 아프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학교를 하나 지었는데 학교 준공식에 참예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들라워 장군은 제 이야기를 한참 듣더니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대우 넘버 원, 현대 넘버원, 코리아 넘바 원, 노 프로발름 오케이!”

결국 저는 12월 16일 아침 10시 아프간 무랃취드 학교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400여명의 어린이들과 100여명의 모슬렘 지도자들이 학교로 들어가는 길 좌우편에 길게 서서 우리 일행을 열렬하게 환호했습니다. 10여 미터를 지날 때 마다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고 종이로 만든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면서 우리들을 뜨겁게 환영했습니다. ‘할렐루야’를 외치기도 했습니다. 감동적인 순간들이었습니다. 이윽고 학교 준공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주지사와 교육감등의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의 환영사였습니다. 어린이들이 나와서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발음이 정확한 한국 말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일어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400여명 학생들에게 Korean Church 라는 글이 인쇄된 가방과 티셔츠와 학용품 선물을 나눠주었을 때 저들은 너무너무 좋아했습니다. 가난의 빛이 진하게 드리워져 있었지만 귀엽고 예쁜 얼굴들에 행복한 웃음들이 꽃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1억 원 수 천 만원을 들여서 새로 지어진 학교는 16여 개의 교실을 갖춘 아담한 학교였습니다. 운동장 부지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학교 팻말에는 KFH라는 글과 함께 Kangbyun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저의 의도와 요청과는 어긋나는 글자였습니다. 강변이라는 말 대신 Korean Church 라는 말을 넣으라고 신신 당부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학교 팻말에 Church 라는 말을 넣으면 적대와 테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강변이라는 글자만 넣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달리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번에 짓는 학교 팻말에는 버젓이 “한국교회 후원” 이라는 말이 새겨질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라는 주님의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이번에 학교를 짓는데 그리고 사랑의 선물을 보내는데 기도와 헌금으로 참여하신 사랑하는 강변교회 성도들에게 눈물겨운 감사를 드리고 또 드리는 바입니다.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에 처한 아프가니스탄 학생들은 물론 다른 나라의 학생들에게도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계속해서 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며 축원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김명혁 목사
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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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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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에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끄는 반군이 수만 명의 시민들에게 식량을 공급할 수 있는 인도적 물품을 압류한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인종청소에 해당된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리아에서 현장 지원 네트워크를 유지해 온 미국 박해 감시단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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