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88] 제2차 전도여행(16) 빌립보(6)
데살로니가 호텔에서 같은 방 쓴
그리스 청년, 필자 락커 돈 털어
돈 돌려받고, 경찰 신고는 안 해
조심해서 여행, 마음 잡는 교훈
데살로니가의 한 호스텔에서 필자가 배정받은 방은 2층 침대가 2개, 1인용 침대가 두 개가 있어 6명이 잠잘 수 있었다. 여행객이 별로 없어 필자가 들어갔을 때는 젊은 그리스 청년만이 1인용 침대 하나를 사용하고 있어, 필자도 나머지 1인용 침대를 사용하였다.
니코스(Nikos)라는 이 청년은 필자에게 초콜릿 등을 주면서 엄청나게 친절하였다. 독일에 일자리를 얻어서 가는 도중이라고 한다.
방에는 6개의 락커가 붙어있는 캐비닛이 있었으므로 필자는 배정받은 락커에 배낭 등 소지품을 넣고 필자가 가져간 자물쇠를 걸어 놓았다. 밤에 소변을 보려고 침대에서 눈을 떠 보니 니코스가 필자를 보고 급히 락커 캐비닛에 뭔가 감추려는 듯 등을 대고 있다가, 자기 락커를 여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필자에게 밤에 추우면 자기가 갖고 있는 여유분 담요를 주겠다고 말하였다.
이른 아침에 필자는 락커를 열어 배낭 속에 넣어둔 바지를 꺼내 입고 빌립보 가는 첫 버스를 타려고 새벽 5시에 숙소를 나왔다. 그때까지도 니코스는 침대에서 잠자고 있었다.
오전 6시에 빌립보행 버스가 출발하자 필자는 빌립보에서 오후에 돌아오면 이틀 후에 갈 아테네행 버스표를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열어보았더니 180 유로가 들어있어야 할 지갑에 20유로 한 장밖에 없었다.
순간 니코스의 짓이라는 게 확신되었다. 왜냐하면 그 전날 밤에 숙소에 들어오기 전, 숙소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생수를 사기 위해 지갑에서 돈을 꺼낼 때 잔액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아, 새벽에 니코스가 캐비닛 락커에 등을 대고 있던 것이 내 물건을 훔치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문제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버스에서 하차할 수도 없고 설사 하차하여 돌아간다 하여도 니코스가 이미 락커 안에 둔 노트북 컴퓨터까지 갖고서 도주하였을 것 같아 그냥 빌립보에 갔다.
락커 속에 넣은 배낭 안에는 입고 다니는 바지를 넣었는데, 바지 한쪽 주머니에는 지갑을 넣었고 다른 주머니에는 복대(현금을 넣은)를 넣었었다. 다행히 니코스가 복대 넣은 주머니는 무슨 이유였는지 뒤져보지 않고 지갑이 들었던 주머니만 뒤져 지갑에만 손을 댄 것이다.
빌립보의 유적을 다 돌아본 뒤 저녁에 숙소로 돌아와 보니 도주한 것으로 생각하였던 니코스가 뜻밖에 방에 있었고, 그는 필자를 보자 천연덕스럽게 잘 다녀왔느냐고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필자는 주인을 방에 불러와 주인이 보는 앞에서 니코스에게 훔쳐간 돈을 내어 놓으라고 하였다.
그는 처음에는 완강하게 부인하였을 뿐 아니라, 필자가 어디선가에서 분실하고 와서 자기에게 뒤집어씌운다고 항의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결백을 하나님 앞에 증명하려는 듯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손으로 몸에 천주교식 성호를 그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주인도 판단하기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인은 혹시 필자가 어디선가 돈을 잃은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니코스는 자기 가방을 열어 물건을 자기 침대 위에 펼쳐서 보이며 마음대로 조사하라고 한다. 이미 훔친 돈을 다른 곳에 감추고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침대 위에 펼쳐진 물건 가운데 필자가 한국을 떠날 때 탑승한 러시아 항공사에서 준 기내 슬리퍼용 파란색 플라스틱 봉지가 보이길래 이것을 어디서 얻었느냐고 물어보니, 다른 빈 락커에 버려져있던 것을 주운 것이라고 한다. 이때 필자는 니코스가 진범이라는 사실을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니코스에게 내용물인 슬리퍼는 필자가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락커 속에 두고 간 필자의 배낭을 열어보니 배낭 밑 부분에 넣었던 조끼가 맨 위에 올라와 있는 등 필자가 빌립보에 간 동안 필자의 배낭을 샅샅이 뒤진 것을 알게 되었다.
배낭 속에 노트북 컴퓨터와 함께 넣었던 마우스 받침도 니코스의 물건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주인에게 니코스를 필자가 직접 경찰서에 가서 고발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니코스는 30유로를 필자에게 주면서 나머지 돈은 다 사용하였으니 1주일 안에 갚겠다고 한다. 이에 주인은 니코스의 신분증을 빼앗고 필자가 요구한 대로 복사한 것은 필자에게 주었다.
그리스는 일자리가 없어 청년 실업률이 높아 니코스가 젊은 나이에 이런 잘못된 짓을 하였구나 생각하니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의 자백을 받기 위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겁은 주었으나 경찰에 고발함으로써 젊은이의 앞길을 막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므로 필자는 니코스에게 내일 오후 4시까지 나머지 130 유로를 가져와서 주인에게 맡겨두면 경찰에 고발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니코스는 그러겠다고 하고 부끄러워 그길로 짐을 싸서 숙소를 떠났다.
다음날 베뢰아를 방문하고 저녁 늦게 숙소에 돌아오니 주인은 니코스가 돈을 가져 왔다며 받은 돈을 필자에게 전해주었다.
나중에 보니 락커는 자물쇠를 거는 경첩이 힘을 주면 빠지게 되어 있는 것을 알고 주인에게 알려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니코스가 필자 락커의 경첩을 빼서 물건에 손을 대었던 것이다.
주인은 필자에게 미안하다며 숙소에 비치된 그리스 신화 책(새 것이나 다름없음)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스에서 발행되었으나 영어로 된 이 책은 종이도 고급이고 사진도 좋아, 그리스를 포함한 동부 지중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지금도 도움을 주고 있다. 여하튼 이러한 해프닝은 필자에게 앞으로 더욱 조심해서 여행해야겠다는 마음을 잡는 기회와 교훈이 되었다.
한편 여태까지 140개국을 여행하는 동안 모든 위험과 어려움에서 안보하여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앞으로 할 여행에도 하나님의 도와주심과 은혜를 간구한다.
권주혁 장로
세계 140개국 방문
성지 연구가, 국제 정치학 박사
‘권박사 지구촌 TV’ 유튜브 운영
영국 왕실 대영제국 훈장(OBE) 수훈
저서 <여기가 이스라엘이다>,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찾아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