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옥 박사 기독문학세계] 아하! 절정의 이 경험은 은혜의 차원이다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하던 일을 도저히 계속 할 수 없어 멈춰 버리는 때가 있다.
책을 읽다가도 일어나는 일이다. 어느 한 페이지 앞에서 책장을 더 이상 넘기지 못하고 그대로 꼬옥 안고 눈을 감아 버린다. 어떤 때는 한 단어 앞에서 모든 것이 멎어버리는 듯한 벅참을 느끼기도 한다. 감성이 극대화되고 행복의 절정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때론 미술관에 전시된 화가의 원작 그림 앞에 섰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강하게 일어난다. 그걸 가라 앉히려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석상처럼 서 버린다. 심지어는 다리에 힘이 풀려 다음 그림으로 옮겨갈 수 조차 없는 경우도 있다. 스탕달 신드롬이 아니더라도, 보통 사람인 우리가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결정적 순간의 이러한 경험은… 참으로 고맙게도 사랑만 있다면 사소한 일상에서도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사랑은 아무리 하찮은 일에서도 행복을 빚어내는 힘이 있다.
원래 사랑이란 무심한 눈빛에서조차 온갖 사소한 기미들을 잡아내 그로부터 한없는 결론들을 이끌어내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감동을 일으키지 않는가.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이 계절, 사월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절정의 경험을 한다. 이 평범한 사실에 가슴 뛰노는 기쁨이 있음이 기적이다.
헝가리 출신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 1943-2021) 교수는 평생 ‘창조성과 행복의 관계’를 연구한 심리학 분야 권위자로서 긍정심리학을 주도해온 학자이다. 그는 결정적 순간의 경험을 ‘몰입 상태 (flow state) 또는 몰입 경험(flow experience)’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몰입 상태라는 말보다 절정 경험(pick experience)이나, 좀 더 따뜻하게 ‘아하 경험’이란 말을 쓰고 싶다. 용어가 무엇이든, 학문적으로는 공통의 요소가 있다.
절정 경험이란 대상에 대한 사랑의 작용이므로 첫째는 같은 사물을 다르게 보는 힘이며, 두 번째로 이 힘은 창조적 사고에 의해서만 가능하고, 세 번째는 창조적 사고는 전문적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면에서 몰입 상태나 경험은 지식과 창의적 사고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창조물을 아우르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오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오른다. 아, 바로 그 일이구나!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꼬모에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 중 하나인 꼬모 호수가 있다. 밀라노에 머물던 하루, 기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려 꼬모 마을에 도착했다. 호수 인근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꼬모의 푸른 날씨와 하얀 대리석의 조화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묻혀 빛을 잃었다.
특히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알프스가 가까워지고 스위스 느낌이 더 많은데, 그 쪽을 향해 행군하듯 줄을 있고 있는 사람들은 보석처럼 빛을 발하는 호수나 올리브 숲에 이는 바람 소리 같은 건 들리지도 않는 듯 하였다.
나는 망설이며 대열에서 빠져 나와 숨을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스탕달의 <파르마 수도원>이 머리를 치고 지나갔다. (이 작품에 대하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나의 시선은 호수 건너편에 자리를 잡고, 이쪽으로부터의 조망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별장 지대에 멈추어 섰다. 바로 그 위쪽으로 스폰드라타의 신비스러운 숲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호수 건너 별장 지대로 갔다. 작품 속 멜치 별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스폰드리타의 숲은 여전히 신비했다.
우뚝 솟은 곶들은 관능적인 꼬모 호수와 렉코 쪽으로 흐르는, 위엄에 가득찬 호수를 여전히 둘로 나누었다. 숭고하면서도 우아한 이 풍경은 여행사나 일반 여행 스케줄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정경이다.
세계적인 명성의 나폴리만이라도, 이 곳에서 바라보는 꼬모의 정경에는 미칠 수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나는 너무나 황홀한 마음으로 작품 속에서 파브리스를 데리고 백작 부인이 거닐었던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천성의 빛에 쌓인 듯한 아름다움, 나는 절정의 경험으로 몸을 떨 었다.
생각해 보라. 장편 소설, 육백 페이지가 넘는 <파르마 수도원>의 수많은 배경 중에서 어떻게 나의 꼬모 여행길 그 순간에 그 장면이 떠올랐을까. 그리고 내가 작품의 무대에 발을 딛고 서 있다. 주인공이 밟은 숲속 산책로의 흙을 밟고 새들의 소리를 듣는다. 숭고하면서도 우아한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엄청난 기쁨으로 춤추며 영혼의 무릎을 꿇었다.
I really want to gaze on the beauty of you, my Lord, my God, all the days of my life.
하나님. 내 평생에 아름다움 자체이신 당신의 아름다움을 보기를 원합니다.
송영옥
영문학 박사, 기독문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