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구 도움 급박 절박 구조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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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4장 17-24절

말은 영향력이 강력하다

“리더십은 영향력이다.”

리더십 전문가인 존 맥스웰 목사가 한 말이다. 리더십은 영향력이 크다. 리더십의 시작은 말이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리더십이 결정된다. 이는 말이 영향력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말이 경건의 기준이 된다고까지 말한다. 그것이 야고보서 1장 26절과 3장 3절이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말의 영향력이 엄청나다. 어떤 말이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영혼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영혼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를 야고보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말의 영향력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하지만 부정적이다. 말이 길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을 길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인 군자쯤에서나 가능할 법하다. 이런 이유로 야고보 기자는 말이 갈들이 사람이 없다고까지 말한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약 3:8).”

말은 길들일 사람이 없다고 한다. 이는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치하시면 된다. 그러므로 내가 말을 길들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 거하려 해야 한다.

말보다 삶이 영향력이 크다

말이 영향력이 크다. 말보다 영향력이 큰 것이 있다. 삶이다. 저널리스트= 아서 고튼(Arthur Gorden)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말보다 쉬운 것은 없다. 하지만 매일 그 말대로 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 우리가 오늘 하는 약속을 내일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매일같이 새롭게 지켜 나가야 한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한 대로 살고자 해야 한다. 말한 대로 사는 것이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말이 죽이는 영향력이라면, 말대로 사는 것은 살리는 영향력이다. 우리가 가질 것은 죽이는 영향력이 아니라, 살리는 영향력이다. 살리는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어렵기에 아서 고튼은 “매일 그 말대로 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없다”고 했다.

삶은 말보다 영향력이 크다.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그럼 삶을 함부로 산다. 말을 신경 써서 해야 한다. 그럼 삶을 신경 써서 산다.

연결이 영향력이 크다

말대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 말대로 사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된다. 하나님께로부터 도움을 받으려면 할 것이 있다.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오늘 아브람이 하나님을 위해 십일조를 드린다. 십일조를 받은 사람은 살렘 왕 멜기세덱이었다. 아브람이 십일조를 드린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말로 드린 십일조가 아니라 삶으로 드린 것이다.

십일조를 드린 것은 조카 롯을 구하고 전쟁에서 이겨 전리품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니 남다른 삶을 살고 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그 다음 아브람을 축복했다. 그 축복 내용이 19절이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멜기세덱은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20절)”고 한다. 그러자 아브람이 전리품 중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20절).

십일조에 대해 말이 많다. 그러나 십일조는 기독교 전통적으로 봐도 중요하다. 저는 십일조의 중요성을 많이 체험했다.

십일조는 교회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만이 아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었는가를 나타낸다. 하나님과 연결되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위해서 소득의 십일조를 기꺼이 드릴 수 있다.

친구와 동료와 연결되기 원하는 사람들이 식사와 술을 먹으며 교제를 한다. 그 때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람과의 연결보다는 하나님과의 연결이 더 소중하다. 효과 측면에서는 비교할 수도 없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이 그 깊은 비밀의 말을 보았기 때문이다. 더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 결과 십일조를 드림을 통해 하나님과 더 깊은 연결을 소망한다.

하나님과 연결되면 십일조를 자원해서 드린다

박은몽은 《십일조의 비밀을 안 세계의 부자들》에서, 십일조의 비밀을 안 부자들을 언급한다. 그들은 십일조를 내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십일조의 비밀을 알았기에 부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부자가 되는 것에 초점이 있지 않다. 십일조의 영향력에 초점을 둔다. 이 책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 중 두 사람만 언급하려 한다.

첫째,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이다.

그가 헌금의 능력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습니다. 나는 평생에 걸쳐 필라델피아에 단 하나 있는 장로교회와 그 교회의 목사님, 그리고 집회와 예배를 후원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헌금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 치약 왕 윌리엄 콜게이트(William Colgate)다.

콜게이트 어머니가 콜게이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더 이상 너에게 해 줄 것이 없다. 너는 지혜롭고 용기가 있으니 차라리 먼 도서로 떠나서 네 살 길을 스스로 찾아보아라. 콜게이트,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십일조를 잊지 마라.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심히 살아간다면 부자가 될 수 있을거야.”

십일조를 드린 것에 대한 콜게이트의 고백이다. “저의 성공 비결은 십일조 생활에 있습니다. 저는 수입 중 십분의 일을 항상 구별하여 오른쪽 주머니에 넣어두고 나머지 십분의 구를 가지고 사업에 투자했습니다. 그래도 사업은 더욱 번창했습니다.

한때 하루 수입이 네 사람이 겨우 옮길 만한 무게의 큰 금덩어리만 했을 때도 십일조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가 제 복의 근원이었으니까요.”

벤저민 프랭클린이나 윌리엄 콜게이트가 하나님을 위해 십일조 등으로 헌금을 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으면 주머니가 열린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나님과 연결되어도 주머니가 열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십일조를 드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되었느냐다.

방향이 연결을 결정한다

아브람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말은 우리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연결하기 전에 할 것이 있다. 세상과의 관계 끊기다. 세상 것을 먼저 끊어야 하나님과 연결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불통이 되는 선을 연결하려면 먼저 할 것이 잡음이 나는 주위의 선을 끊어야 한다. 문제가 되는 주위의 선을 끊어야 소통의 선 연결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즉 선을 연결하려면, 먼저 할 것이 선 끊기다. 선을 끈은 다음, 새로운 선으로 연결해야 한다.

선을 연결할 때 살필 것이 있다. 방향이다. 잘못된 방향이 아니라 바른 방향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이 집중하는 것으로 방향을 맞춰야 한다.

방향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뜻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냐? 자신의 생각이냐? 가 방향의 키이다. 방향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실례가 누가복음 18장의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눅 18:10-14)”.

바리새인의 기도 방향은 자신이었다. 반면 세리의 기도 방향은 하나님이었다. 자신과 연결하면 자신이 우상이 된다.

이런 바리새인은 자신을 의인으로 보았다. 그는 자신을 죄인으로 봐야 했었다. 자신을 의인으로 착각하니, 자신이 우상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우상이 되니 구세주인 예수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세리는 자신을 죄인으로 보았다. 자신의 죄인 됨이 보이니, 예수님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을 수 있었다.

삶에는 방향이 중요하다. 그 방향은 우상을 쫓는 자신이 아니라, 진리를 쫓는 하나님이어야 한다. 방향이 바를 때 하나님과 연결된다.

우리는 방향을 하나님을 정해야 한다. 그럼 자신이 누구인가를 바르게 보게 된다. 그럼 저절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보인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 그것이 마지막 한 말씀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4절)”.

자기를 낮추느냐? 자기를 높이느냐? 에 따라 결과가 드러난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열정이 아니라 자기를 낮추는 방향이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방향 설정이다. 방향을 하나님께 두면 자신을 낮춘다. 방향을 자신에게 두면 자신을 높인다. 방향을 예수님께 둔 세리는 자기를 낮추었더니 하나님께서 높여주셨다.

신앙은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신앙은 연결하기다. 자신과 연결하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자신의 의와 연결하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하기다.

하나님과 연결된 모세는 방향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모세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였다. 당시 전쟁의 성패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었다.

모세의 손을 들면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했다. 모세의 손을 내리면 전쟁에서 패배했다. 그러자 아론과 홀이 양쪽으로 잡아 붙들어 올렸다. 모세는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한 후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이름을 “여호와 닛시(출 17:15)”라 불렀다.

모세가 손을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함을 상징한다. 모세가 손을 내렸다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 포기를 상징한다. 결국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여부는 하나님과의 연결 여부였다.

전쟁의 용사인 다윗이 한 유명한 고백이 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삼상 17:47).”

전쟁은 하나님과 연결하면 승리하지만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으면 패배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말씀이다. 전쟁도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도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하나님과 연결 방법은 세 가지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과 연결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하는 방법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예배하기다.
둘째,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기다.
셋째,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다. 다른 말로 십일조 드리기다.

아브람은 20절 말씀과 같이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소돔 왕이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21절)”고 했다. 그러자 아브람은 소돔 왕에 속한 것은 하나도 갖지 않겠다고 했다. 즉 물품도 갖지 않겠다고 한다. 사람도 주고 물품도 주겠다고 한다. 그것이 22절과 23절이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아브람은 하고 싶은 한 가지 행동만 한다. 그것이 24절이다.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

자신은 젊은이들이 먹은 음식 말고는 그 외에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한다. 단 나와 함께 싸움터에 나아갔던 사람들 몫은 주라고 한다.

그가 멋지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과는 연결이 끊긴 사람이라면 모든 전리품 차지하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연결된 아브람은 달랐다.

아브라함 행동은 마치 맥스 루케이도가 한 말과 같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계속해서 뽐내며 걷기보다 가끔씩 절뚝거리며 걷기를 원하신다.”

아브람은 뽐내는 인생이 아니라 절뚝거리는 인생을 살고자 했다. 한 마디로 바보같이 살고자 했다.

아브람은 하나님으로만 족할 줄로 여겼다. 자신의 전쟁에서 승리의 전리품에 관심이 없었다. 이는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 연결하기다. 하나님과 연결되려면 자기 것이 아닌 것과 선 긋기를 먼저 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97세로 별세했다. 이 여사는 결혼할 때 남자만 보았다. “무일푼이지만 꿈이 큰, 이 사람을 도와야겠단 생각 들었다.” 서울대학교 나온 여자가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남자와 결혼했다.

이런 결단이 어떻게 가능했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조건을 보지 않고 사람만 보신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만 보신다.

이희호 여사도 외모가 아니라 사람의 중심만 보았다. 그렇게 본 것이 결코 틀리지 않았다. 남편 김대중은 민주투사임은 물론, 한국의 15대 대통령이 됐다.

그녀는 죽을 때도 하나님과 연결을 했다. 그녀의(1922-2019, 6월 10일)의 임종 당시 병실에 성경 시편 23편이 울려 퍼졌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추구하는 것이 남다르다. 그 연결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원하심만을 추구한다.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쁨을 추구한다. 자신이 겪을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한다

하나님과 연결하는 사람은 영향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신앙은 연결하기라고 하지만 행동이 뒤따라야 진짜 연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을 할 때 진짜 연결이 된다.

자기계발서 유명 작가인 나폴레온 힐(Napoleon Hill)이 이런 말을 했다.
“행동할 준비가 되었다면 기억해라.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먼저 자신이 연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다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 손 잡아주신다. 그럼 떨어질 수 없는 연결이 이루어진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에서 7년간 연구 결과. 사람들은 하루 평균 60번 이상 핑계를 대며 일을 미룬다고 한다. 설령 조건이 갖추어져도 다른 문제를 트집잡아 자신의 행동을 늦춘다고 한다. 사람들은 행동하지 않으면서, 핑곗거리만 찾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은 다르다.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말을 앞세우면 안 된다. 행동을 앞세워야 한다. 그럴 때 핑계를 대지 않고 미루지 않는다. 자신이 할 일을 실행으로 옮긴다.

당장 행동해야 한다

그럼 언제 행동해야 하는가? 지금 당장,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조건이 80퍼센트 갖춰졌다면, 더 기다리지 말고 행동하라.”

사람들이 조건이 완벽하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은 조건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생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말도 해결책이 못 된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만 해결해 준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으로 옮길 때 해결된다. 우리가 할 행동은 하나님과 연결하려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알리바바그룹 회장 마윈은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아브람도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여호수아도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모세도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바울도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할 행동은 하나님과 연결을 위한 행동이다. 삶에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연결하기다. 다리를 연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또한 사물과 연결도 어렵다. 발명을 하려면 사물과 연결해야 한다.

발명은 주로 천재들이 한다. 결국 사물과 연결도 어렵다. 사람과 연결은 더 어렵다. 사람에게 대해 섭섭한 마음이 생기는 사람 관계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다. 방해자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방해한다. 자기 욕망이 방해한다. 사단이 방해한다. 방해를 받지 않으려면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즉각 실행해야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 “주인 행세 NO, 하나님 의식 OK”로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아브람과 같이 살아야 한다. “주인 행세 NO, 하나님 의식 OK”로 살아야 한다. 그럼 하나님과의 연결로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이 억지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드리게 된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독서‘꽝’에서 독서‘광’으로/ 목양》, 《설교는 인문학이다/ 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 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 CLC》, 《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 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 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 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