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문화축제
▲과거 퀴어축제 부스 중 한 곳에 놓여있던 책자. ⓒ크투 DB
19세기까지는 동성애에 대한 논의조차 할 수 없었다. 20세기 중반까지는 동성애를 형사 처벌로 다스리는 나라들이 있었다(이것을 지지하진 않는다).

오랜 기간 동안 세력을 키워온 동성애 세력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원사격을 든든히 받아, 20세기 말부터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21세기 초인 지금 상당히 세력을 키운 이들 세력은 더 이상 소수자가 아닌 성 권력, 성 특권층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한다. 시간이 흐르며 죄의 기준이 옮겨가는 현상들이 보인다. 살인죄인 낙태가 그렇고, 간음죄인 간통죄가 그렇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죄악의 기준이 시대의 가치를 반영한다는 것이고, 성경을 토대로 보면 죄악이 관영해지는 것이다.

죄를 바라보는 세상의 기준은 바뀌지만, 성경은 진리이기에 영원 불변하다. 그럼에도 작금의 시대에 죄의 기준을 옮기는 작업과 더불어, 교회 내에서도 세속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들어와 동일하게 죄의 기준을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고, 실효를 거두고 있다. 이름 자체가 모순인 퀴어신학이라니….

그 결과로 과거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교회 내에 들어오고 있고, 이미 들어와 있다. 혼전순결, 이혼의 문제, 간통, 낙태, 동성애까지…. 교회 내에서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단어들이 되어 가고 있다.

아마도 우울한 예감이지만 이 상태로 가다간 교회 내에서조차 동성애를 죄라고 말하지 못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들이 바로 거듭나지 않은 이들로 교회가 채워져 있기에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은(이런 사람들이 가득차 있는 것은) 교회에서 복음이 사라졌다는 반증이다. 즉 교리적 타락의 결과이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이 직분을 받아 집사, 장로, 목사가 되어 종교적 열심만을 가지고 교회를 다스리려 한다. 이것의 큰 문제점은 성경적 기준이 없기 때문에, 너무 쉽게 세속적인 것들에 교회의 문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급속도로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거룩함을 상실하여, 억지로 외적 행위에만 집중하는 요란한 빈 수레로 전락한 것이다.

오늘날 빈번하게 지적되고 있는 목회자의 윤리, 직분자의 타락, 교회의 부정부패는 교리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결과물이다.

참된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고, 자연스레 성경의 기준이 세속의 기준에 밀려나게 되고, 그렇게 된 교회는 불신자들이 열렬히 추구하는 저주받은 도덕적 행위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