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인선교회 세미나에서 강의하고 있는 김병호 교수. ⓒ이대웅 기자

김병호 교수(백석대 기독교미술대학원)는 지난 22일 열린 한국미술인선교회의 ‘현대 기독교 미술의 정체성’ 세미나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비해 비교적 덜 알려진 미켈란젤로와 그 작품의 기독교적 가치에 대해 밝혔다.


김 교수는 세미나에서 “다 빈치는 창조적이고 훌륭한 화가였지만 그 정도 실력을 가진 화가들은 당시에 많았다”며 “하지만 18세기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다빈치의 명성이 다소 포장되었다”고 밝혔다.

김 교수에 따르면 르네상스 당시 유럽의 중심에는 교황주의자(카톨릭), 인문주의자, 종교개혁주의자(개신교)라는 세 부류가 있었다. 이들 중 새로 생겨난 인문주의자와 종교개혁주의자들은 당시 공통의 적이었던 교황주의자들의 부패상을 함께 공격하며 세력을 키웠다. 이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후 서로가 너무 다름을 확인하고 갈라서게 되는데, 18세기 인문주의를 이은 계몽주의자들이 그들과 ‘코드’가 맞는 다 빈치를 당시 더 위대한 화가였던 ‘종교개혁주의자’ 미켈란젤로보다 더 부각시켜 다 빈치가 오늘날 널리 알려지게 됐다는 것이다.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의 명화 뿐만 아니라 ‘다비드상’ 등의 조각을 남긴 미켈란젤로는 “돌을 보면 돌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형상을 좇아간다”고 말할 만큼 신앙심이 깊었다. 젊은 시절 이미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미켈란젤로에게 미완성 작품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작품 ‘천지창조’에 등장하는 아담은 생기없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미켈란젤로가 성경적인 작품을 그리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는가를 알 수 있다. 김 교수는 미켈란젤로를 가리켜 “사역적 소명의식과 예배로서의 미술에 투철했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기 전 아담의 기력없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또 김 교수는 이날 세미나를 통해 활발했던 기독교 미술이 중세 이후 쇠퇴한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교황은 종교개혁에 맞서 예술을 전략적으로 선택, 바흐같은 음악가가 탄생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기독교 예술, 특히 미술은 거의 소멸했으며 작가들이 신앙고백 차원에서 몇 점 그리는 것이 고작이었다”며 “20세기, 근대 미술의 조형 언어를 기독교적으로 해석한 루오가 나타나서야 기독교 미술이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김 교수는 중세와 르네상스라는 용어에 대해, “중세라는 말은 르네상스와 비교해서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다”며 “흔히 말하는 중세에 이미 백과사전이 출판되는 등 지식문화가 발달하고 있었고, 신과 인간이라는 이원론적 사고가 깨지기 시작하는 등 새로운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김 교수는 세미나에 참석한 한국미술인선교회원들을 격려하며, “세계적으로 기독교 미술의 위치가 미약하다. 더구나 미술인선교회처럼 미술을 통해 선교하는 단체는 전무(全無)한 실정”이라며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글로벌 리더라는 자부심을 갖고, 주신 은사를 드러내는 책임을 잘 감당하길 바란다”고 말해 모인 회원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