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총장.

김홍식 씨는 <자존심을 버리면 사람들이 다가온다>란 책에서, 사람의 마음을 양파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나 자존심과 자존감은 다르다. 자존감(self-esteem)은 인간 심리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자기의 존재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일은 인간의 품위를 지켜주고,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분별케 해 주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신앙인들에겐 자기 존재가 하나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것과, 하나님의 영(내적 인격)을 받아서 지고지순한 삶을 살 수 있다(성령 충만)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여타 동물들과 구별된다. 그래서 동물 계통 분류의 연속선상(스펙트럼)에 놓여 있지 않다. 돌아갈 내 고향, 천국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취사선택할 자유의지를 갖고 있고, 그 결과에 대해 무한 책임도 져야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상의 만물을 관리하고 다스릴 특권도 받았다. 그래서 하나님 외의 모든 피조물에 대해 사랑하고 관리해야지, 절하고 섬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면, 우리는 자존심(pride)에 묶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것도 없으면서 변변찮은 자존심에 얽매여,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큰소리를 치며 허상의 노예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불평하고 고집부리며, 화내고 다투며 싸우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의 껍질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이 집착하던 자존심을 버리고 나면 공허함만 남게 된다. 그런데 그 껍질을 벗겨내는 데는 많은 아픔이 따른다.

사람은 이 세상에 자존심 없이 태어난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평생은 자존심을 쌓아가고, 남은 반평생은 그것을 다시 허무는 데 보낸다. 그리고 매우 힘든 인생을 살았다고 느끼며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우리들을 가두고 있는 자존심만 헐어내더라도,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절약하고 더 좋은 사람들을 만나거나 귀한 일들을 해낼 수 있다.

자신의 체면 때문에 사람들을 두려워할 이유도 없고, 자신을 숨기기 위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고, 마음이 상해서 잠 못 이루는 밤도 없을 것이다. 필요 없는 담을 쌓지 않아도 되고, 더 많은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자존심은 최후까지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오던 자존심을 헐어버리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성경에 보면 자존심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파멸에 이른 사람 중 사울 왕이 있다. 그러나 사울의 자존심과 시기심은, 곧 우리들의 인성 속에도 똑같이 존재하는 보편적 성품이다. 그는 격동기, 즉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며,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고, 힘센 부족을 중심으로 국가 형태가 생겨나서,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는 왕정 국가가 등장할 시기에,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다.

새로운 왕정 시대를 이끌어 가면서 사무엘과 갈등을 일으키다 버림을 받았고, 뒤이어 민중들에게서도 등 돌림을 당했다. 그 상처를 끌어안고 처절하게 홀로 된 그는 우울증에다 정신분열증까지 겪게 됐으며, 점점 더 자신의 기득권과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됐다. 그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경계하고 의심하면서 심각한 피해망상증에 시달렸다.

음악치료로 자기를 도와주던 사위 다윗의 재능과 인간적 매력까지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하는 모습에서, 한 인간의 파괴된 인간상, 특히 모든 이를 시기하는 자존심의 전형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치 궁예가 처음엔 용맹스러운 장수로 삼국통일을 꿈꾸며 강력한 후고구려의 왕으로 군림했으나, 자신의 권좌에 불안을 느껴 신하들을 의심한 나머지 자신을 신격화시켜 복종을 강요하면서 많은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결과, 왕건에 의해 쫓기다가 백성들에게 맞아 죽고 만 경우와 흡사하다.

지나친 자존심이나 내면적인 열등감은 이렇게 파괴적이다. 오늘날도 겉으로 화려하고 강력하고 유능한 척하는 사람일수록, 그 내면을 살펴 보면 누추하고 무력하고 무능한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경우가 많다. 마치 나아만 장군이 겉모습은 장군 예복에 화려한 훈장을 달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피고름이 나는 문둥병 환자였던 것과 같다.

자존심! 속히 벗어버리고 참 자유를 누려야 할, 덧없는 겉옷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