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수 18:10)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에서 이루어진 가나안 땅의 분배는, 3인으로 구성된 각 지파의 대표자들이 각 지파가 차지할 땅을 개략적으로 작성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그 후 그들은 실로의 하나님 앞에 모여서 제비뽑기 방법으로 구체적인 땅 분배를 실시하였다(수 18:1-10). 이때에 분배의 대상은 각 지파가 아니라 지파의 하부구조인 ‘미쉬파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땅을 분배받은 최소 단위는 ‘미쉬파하’를 구성하고 있는 ‘베이트 아브’였음을 알 수가 있다. 이런 점은 민수기 1장의 인구조사에서 잘 드러나 있다. 민수기 1장에 나오는 인구조사는 “그들의 종족(미쉬파하)과 조상의 가문(베이트 아브)에 따라” 실시되었다(민 1:2). 인구조사의 단위가 ‘미쉬파하’ 뿐만이 아니라 ‘베이트 아브’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은, 땅 분배의 단위가 어디까지 내려가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베이트 아브’가 땅 분배의 최종 단위임을 보여 주는 성경적 증거는 사사기 21:24에도 나와 있다.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베냐민과의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각자의 ‘지파’(쉐베트)와 ‘가족’(미쉬파하)과 ‘기업’(나할라)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언급된 ‘기업’(나할라)을 그 앞에 나오고 있는 ‘지파’와 ‘종족’과 연관시켜 볼 때, 이스라엘 사회의 최소 단위인 ‘베이트 아브’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 ‘베이트 아브’ 대신 ‘나할라’라는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베이트 아브’의 기능이 각 지파와 종족별로 분배된 토지 소유의 기본 단위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베이트 아브’는 이스라엘 사회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생산과 소비의 기본 단위이다. 그러나 땅 분배의 우선 단위는 ‘미쉬파하’였다. 이것은 분배된 땅이 다른 ‘미쉬파하’에게 양도되지 않고 동일 ‘미쉬파하' 내에 존속되어야 한다는 토지 보유의 원칙을 보여준다. 곧 분배받은 땅이 사라질 위기를 만난다고 하여도 ‘미쉬파하’ 자체가 그 땅을 다른 ‘미쉬파하’로의 양도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서, ‘미쉬파하’를 구성하고 있는 ‘베이트 아브’의 기본적 생존 능력을 보장한 것이다. 이것은 토지 분배 및 보호 기능의 ‘미쉬파하’라는 상층구조와 더불어 분배된 토지의 실질적 보유 단위이면서 독립적 생활 단위인 ‘베이트 아브’가 적절하게 조화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사회의 기본 구조이자 경제적 단위인 ‘베이트 아브’에 토지가 공평하게 분배되었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사회가 최대 한도의 평등사회를 지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상은 ‘베이트 아브’에 분배된 토지가 어떤 상황에서도 분배된 원주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토지 양도 불가성 제도로 발전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역사를 통하여 고집스럽게 지켜온 생활 원칙이었다. 성경의 어떤 기록에도 이스라엘에서 자의적으로 땅을 다른 ‘베이트 아브’에게 양도한 경우는 찾아 볼 수 없다. 합법적으로 땅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가족 내에서 유산을 상속하는 경우 뿐이다.

반면에 성경은 분배된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결코 양도하지 않는다는 관습을 보여 주는 여러 개의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토지의 양도불가성을 보여주는 사건으로는, 슬로브핫의 딸들의 주장에 대한 모세의 판결내용(민 27:1-11)과 나봇의 포도원 사건(왕상 21장)을 들 수가 있다. 전자는 모세가 내린 유산상속법의 판결로서, 한 가정의 유산은 아비의 아들-아비의 딸들-아비의 형제-아비의 가장 가까운 친족 순으로 양도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은 가능한 한 ‘베이트 아브’ 내에서 토지의 상속이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판례이다.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토지를 어떠한 조건에서도 양도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의 전통적 토지상속법 원칙에 지키려는 나봇의 노력을 보여 준다. 비록 나봇은 아합과 이사벨의 계략에 의하여 그의 토지를 빼앗기고 목숨마저 희생당하게 되지만, 왕정 시대에까지도 이스라엘의 토지법이 엄연히 존재하였음을 보여 주는 역사적 실증이다.

권혁승 교수는

충북대학교 사범대학 영문과(B. A.)를 나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M. Div.),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Hebrew University, Ph. D.)를 졸업했다. 현재 서울신학대학교에서 구약학을 가르치고 있고 엔게디선교회 지도목사, 수정성결교회 협동목사, 한국복음주의신학회 회장으로 있다. 권 교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고전 4:16)을 목적으로 ‘날마다 말씀 따라 새롭게’라는 제목의 글을 그의 블로그를 통해 전하고 있다. 이 칼럼 역시 저자의 허락을 받아 해당 블로그에서 퍼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