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났던 만세운동은 민족의 양심과 기백을 온 누리에 전한 쾌거였다. 비록 실패로 끝난 운동이긴 하였지만, 실상은 대성공을 거둔 운동이었다. 만일에 우리 겨레가 3·1 만세운동이 없이 해방을 맞았더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을 것인가를 생각해 보면, 3·1 만세운동이야말로 꼭 있어야할 운동이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 한반도 전체에서 크리스천은 불과 1.7%였을 때였다. 그러나 민족대표 33인 중에 16명이 개신교 신도였다.

이런 사실은 선배 크리스천들의 나라사랑의 정성이 어떠하였음을 드러내 준다. 불과 1.7%만이 교인이던 때에 민족대표 중 50%가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리고 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의 지도를 살피면 75%가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이었다. 이런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우리의 선배들이 언제나 하나님 사랑과 겨레 사랑을 한 가슴에 품고 신앙생활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거기다 우리를 더욱 감격스럽게 하는 사건이 있다. 3·1 만세운동이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총칼에 의하여 실패로 돌아간 이후 민족대표들이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불과 40일 후인 1919년 4월 10일에 상해에 모여 임시정부안을 발의하였다. 그때 임시정부를 세우고자 하는 선언문에 다음 같은 구절이 있다.

“오등은 조국 조선반도에 신국(神國, 하나님의 나라)을 건설코자 하였다.”

우리 선배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민족적으로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되려는 데에 그치지 아니하고, 조국 한반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비전과 경륜을 품고 있었다. 이 얼마나 가슴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일제시대로부터 해방공간에 이르기까지 기라성 같은 민족의 지도자들이 크리스천들이었던 것이다. 당시의 교회는 단순히 교인들을 길러낸 교회가 아니었다. 민족의 지도자들을 길러 내는 교회였다. 민족의 지도자이면서 교회의 일꾼이었던 선배들을 손꼽자면 줄줄이 이어진다.

서재필, 안창호, 이승훈, 이상재, 조만식, 남궁억, 김교신, 김구, 이승만, 김규식 등 이런 지도자들을 손꼽자면 줄줄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와 같이 우리 선배들은 하나님 사랑과 겨레 사랑, 예수 사랑과 동포 사랑을 한 가슴에 품고 자신들을 헌신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기껏해야 자기 교파, 자기 교회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 채로 소인배의 근성에 매여 살아가고 있다. 이 얼마나 한스런 일인가.

우리는 자신들의 이런 모습을 대오각성하고, 선배들의 경륜과 비전을 뒤따르는 복음적이며 역사의식을 겸한 신앙인들로 다시 시작하는 결단이 있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