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한민국의 70년 역사는 위대하다. 짧은 시간에 서구 국가에서 수백 년간 이어진 과정을 모두 겪어냈다. 1960년대 본격 시작된 근대화·산업화는 반만 년 역사만에 국민들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결정적인 경제적 토대를 제공했다.

압축성장으로 잠시 압축됐던 민주주의 역시 1987년 이후 한층 정착·발전돼 성숙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에서는 1998년 수평적 정권교체까지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고, 2017년 권력의 정점인 제왕적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킬 정도로 그 민주주의는 성숙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새로이 권력을 잡은 이들은 '어제의 권력자들'을 단죄하고 처벌하고 망신주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의사회 구현', '역사 바로세우기', '잃어버린 10년', '적폐청산' 등 용어만 달라졌을 뿐, 보수든 진보든 '어제의 권력자들'이자 '내일의 권력자들'일 수 있는 상대를 부정한다.

이렇게 과거를 부정하고 정죄하는 일에 지나치게 골몰한다면, 과거의 상처를 딛고 미래를 도모할 동력을 얻기 어렵다. 범죄 사실이 있다면 책임자를 객관적으로 따져 징계하면 되지, 연일 그 죄상을 낱낱이 국민 앞에 내어놓고 망신주는 행위는 그 정권을 지지했던 국민 모두를 단죄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그리스도인들 일부에게서는 전임 정권과 '지난 10년'에 대한 한풀이와 증오가 느껴진다. 전 정권을 지지했던 그리스도인들 일부에게서도 현 정권을 향한 불만과 부정의 말들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적폐청산'과 '종북척결' 간의 사생결단 같다.

모든 일에는 그 이면이 있고, 상대가 있어야 나도 있는 법이다. 상대를 '청산'하고 '척결'하는 것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예수님은 그래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며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마 7:2)"이라고 하셨다.

그에 앞서 말씀하셨다.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9)".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율법을, 이성을, 상식을, 사랑의 '복음'으로 뒤집으신 것이다.

사회뿐 아니다. 오늘날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려는 교회 내 분쟁이 얼마나 많은가. 분쟁하는 양측 모두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에, 교회 분쟁은 '술 한 잔' 함께하며 초기에 풀 수 있는 사회의 여러 갈등과 달리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 '하나님의 뜻'은 없다. 한쪽의 '사리사욕'만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갖고 다투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원수도 사랑해야 하는데, 같은 교회나 교단 성도라면 말해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우리 안의 이러한 갈등과 분쟁을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조속히 종식하고, 보수와 진보, 그리고 각종 이름으로 반목하고 대립하는 이 사회를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종북척결'과 '적폐청산'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 되게 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러한 경지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앞에서 인용한 모든 말씀은 주님의 '산상수훈' 속에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는 말처럼,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산상수훈만 제대로 알고 실천해도 한국의 교회와 사회가 지금 이 지경은 아닐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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