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여호수아서 18장과 19장은 나머지 일곱 지파가 어떻게 땅을 분배받았는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베냐민지파는 유다와 요셉 자손 사이의 땅을 분배받았고(수 18:11-28), 시므온지파는 유다지파의 남쪽지역을 분배받았다(수 19:1-9).. 이스라엘의 북쪽 지역은 네 지파 곧 스블론과 잇사갈과 아셀과 납달리에게 분배되었다(수 19:10-39). 유다와 에브라임지파 사이의 지중해 해안지역을 분배받았던 단 지파는 후에 이스라엘 최북단지역인 레셈을 점령하여 그곳을 단으로 개명하고 자신들의 새로운 거주지로 삼았다(수 19:40-48).

이들 일곱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주었던 방법은 이전 지파들과 같이 가족대로 제비를 뽑아 나누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적용된 땅 분배 방법은 이전 지파에게 적용되었던 것과 다른 점이 있었다. 우선은 땅을 분배받은 장소가 바뀐 것이다. 유다지파나 요셉의 자손 지파들은 여리고 근처의 길갈에서 땅을 분배받았지만, 이제는 분배의 장소가 실로로 바뀌었다. 실로는 에브라임지파에게 속한 지역으로서 길갈에서는 서북방향으로 약 25km 떨어져 있다(수 16:6). 길갈은 요단강 근처의 낮은 계곡지역에 위치한 곳인 반면에 실로는 중앙산지의 중심부에 위치한 내륙 산간지역이다.

실로가 새로운 중심지로 부각된 것은 그곳에 세운 성막 때문이었다. 성막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제작한 천막형태의 이동식 성전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성막을 만들게 하신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그 성막에 실제로 임재 하여 계시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성막 앞에 모인다는 것은 곧 그곳에 계신 여호와 앞에 모여 있음을 의미했다(수 18:6, 8, 10). 이스라엘의 중심지가 길갈에서 실로 옮겨진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이라는 실전 상황에서 성막 중심의 보다 안정된 상태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실로에 성막을 세웠다는 것은 지난 40여 년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살았던 방랑의 삶을 마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지리적으로 정착했을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안정되었음을 뜻한다. 실로는 사무엘 시대 법궤가 블레셋에게 빼앗기면서 파괴가 되었지만(시 78:60; 렘 7:14), 이스라엘의 신앙중심지로서 실로의 중요성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그곳으로 법궤를 옮겨오기까지 지속되었다.

땅을 분배해준 장소가 길갈에서 실로 바뀐 것과 함께 달라진 또 다른 점은 각 지파 대표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분배받을 땅을 미리 점검하고 그 땅 도면을 작성케 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게 세 명의 대표자들을 선발케 하고 그들로 각 지역을 두루 다니며 자신들이 차지할 땅을 그려오도록 시켰다. 여호수아의 그러한 조처는 이들 일곱 지파 사이에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게 하려고 도입된 것 같다. 지리적 여건상 다양성을 지닌 땅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다만 지파 간에 별다른 불평 없이 합의를 이루는 것만 최선의 방법이었다. 여호수아는 이들 일곱 지파간의 균형과 합의를 스스로 이끌어 내도록 자율권을 부여한 것이다. 각 지파 대표들에게 내린 여호수아의 명령에는 그들이 두루 살펴본 땅의 도면을 정확하게 그려오라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수 18:4, 6, 8). '그려오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카타브'로서 실제 의미는 '기록하다'이다. 이것은 땅 분배를 위한 중요한 합의 자료가 될 뿐 아니라 후대에도 땅 문제로 인한 지파간의 분쟁 여지를 남겨놓지 않겠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실전 상황 속에서 여호수아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던 때가 길갈 중심의 시대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양대 세력이었던 유다와 요셉 자손에게 땅이 분배되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실로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전쟁 상황은 마무리 되었고 성막이 실로에 세워지면서 보다 체계적이고 안정된 분위기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런 상황 변화 속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스스로 균형과 합의를 이루어가는 성숙한 지혜로운 모습으로 발전해 갔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