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3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맥(잣대)에 의한 번역:

‘말씀을 이끌어 올려서 그(하나님)의 세우신 자는 육에 따라서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매달려서 완성한 사랑인 다윗의 양육을 실천한 씨에서 스스로 나신 분이시니라’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분이시다. 그런데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라고 한 것은 잘못된 번역이다. 다윗의 혈통의 족보에 따라서 육신의 몸을 입으셨다는 말인데, 이는 성경의 맥을 모르고 번역한 것이다. 성경을 육적인 개념에서 본 오해다. 다윗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마음땅에 본래적으로 자리잡고 있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를 깨트리고 소멸시켜 완성한 사랑의 본체다. 육의 속성을 진멸시킨 장본인이라는 말이다. 사랑이라는 말은 첫째 시기에서 셋째 시기인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인 법을 배워서, 넷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마음땅에 철저하게 실천하여 하나님의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완성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랑은 모든 육의 속성을 덮는 것이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사랑을 완성한 존재다. 그렇다면, 다윗의 씨가 무엇이겠는가? 성경을 문자대로 보니까 육적인 혈통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윗의 씨는 육의 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의 속성을 깨트려서 진멸시킨 씨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육신에 따라서는 다윗의 씨에서 스스로 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입으신 몸은, 다윗과 같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익히고 적용해 가며 육의 속성인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소멸시켜 완성하실 몸으로 스스로 나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가 없으신 분이시다. 육신의 몸을 입으실 이유가 없으시다. 그러나 육의 몸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육의 속성을 깨트려 진멸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사람의 잣대를 만들어 넓은 길로 빗나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인간이 가야 할 하나님의 잣대인 길과 진리와 생명을 본보기로 열어 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잣대를 세우시기 위해서 스스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나셔서 걸어가야 할 육체를 따라 나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 몸을 입기 위해서, 인간은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를 철저하게 익히고 적용하며 걸어감으로, 육의 속성을 깨트리고 소멸되는 몸으로 스스로 나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길과 진리와 생명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 안에서 행하며 걸어가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여섯 걸음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이다. 십자가를 지고 어두움인 무지를 소멸시키지 않는 자는 생명의 부활은 없다.

‘이 아들’은 ‘베노()’인데, 번역상 오류다. ‘그의 세운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라는 말이다. 이 세우신 자를 전부 ‘아들’로 번역해놓고 있다. 아들이라는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아들은 ‘벤()’인데, 어근은 ‘바나()’다. ‘세우다, 집을 짓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들은 세워진 자라는 의미다. 세워졌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성경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내용’을 기록한 말씀이 아니다. 창세기 1장에는 천지만물을 창조한 내용이 없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분명히 창조하셨다. 그러나 성경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6일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저서 ‘천지창조’ 참조). 사람 (·아담)의 속사람을 계몽하고 양육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끌어 올리는 과정이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다. 성경은 사람의 마음땅을 갈아엎고, 잡초를 제거하고, 옥토로 만들어, 하늘들의 왕국의 열매가 가득해지도록 사람 농사를 짓는 잣대다. 성전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지어 나가는 설계도가 창세기 1장이다.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몸을 세워나가도록 마음땅을 개간하고 계몽해서 양육하는, 하나님의 잣대라는 말이다.

성경에는 ‘인자’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의 아들이 무슨 뜻인가? 뜻도 모르고 그냥 습관적으로 쓰고 있다. 확실한 개념이 정리되지 않은 채 그대로 막연하게 쓰고 있는 단어가 너무나도 많이 있다. 피, 생명, 부활, 불못, 둘째 사망, 죽음, 휴거, 지옥, 십자가, 하늘, 땅, 태초, 구름, 재림, 천년왕국 등등 헤아릴 수가 없다.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왜 존재하고 있는가? 창세기 1장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잣대인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가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은 숨겨진 비밀이다. 하나님의 기초로 세워 놓으신 비밀이다. 그러함에도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이 비밀이 열려지지 않은 채 숨겨져 왔다. 숨겨진 비밀이 열리지 않고 있으니까 사람의 잣대에 따라서 문자대로 읽고, 뜻도 모른 채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서 해석하여 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하나님의 잣대 없이 사람의 잣대에 의해 성경이 읽히고 해석되어 왔다는 말이다.

인자는 ‘벤-아담()’인데, 직역하면 사람의 아들이 되지만, ‘사람이 세워진 자’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창 4:26에서 맨 처음 시작되는데, 단어가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벤-아담()’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벤-아담()’이 되신다. 본래 인간은 겉사람은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나, 속사람은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마음땅에는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의 얼굴들이, 깊음인 무저갱을 이루고 있다. 이것이 육의 속성인 짐승의 속성이다. 이 속성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육의 속성을 깨트리고 소멸시키시기 위하여,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을 창세기 1장에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잣대로 기초를 놓으시고 비밀로 숨겨 놓으셨다. 그런데 아담도 하나님의 잣대에 따라서 마음땅의 무저갱의 얼굴들을 깨트리고 소멸시켜야 함에도 실행해 옮기지를 않았다. 오히려 짐승의 속성에 안주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인간의 본래적인 속성이다. 육의 속성을 잘라내는 데는 고난과 아픔이 따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고난을 싫어한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