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장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서균석 목사(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맥(잣대)에 의한 번역:
‘예수 그리스도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매달린 안에 분리되어 얼굴을 경작하는 자인 잣대가 있는 것을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로 익혀서 생명을 열기로 결단한 바울은, 생명을 꺼내기로 보내심을 받은 자로 존재하기 위하여 부름받음을 당한 자이며, 하나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복음을 위하여 스스로 분리되어 선택된 자니라’

종인 ‘에베드()’는 몸종이나 하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경작자, 섬기는 자라는 뜻으로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매달린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따로 분리되어 어두움인 무지의 얼굴들을 잘라내고 진멸시켜서 그리스도 예수의 얼굴로 바꾸도록 마음땅을 기경해 나가는 자라는 뜻이다. 이 종의 개념을 올바르게 인식을 하고 있어야 한다. 목사님들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이 ‘종’이라는 주종관계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스도 예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하나님의 잣대에 매달려서 어두움인 무지의 얼굴들을 깨트려 진멸시켜 나가는, 마음땅을 갈아엎는 자를 말한다. 바울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가? 그는 사람의 잣대에 매달려서 하나님의 잣대를 대적하고 핍박하던 자였다. 그가 하나님의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인 피 속에 올바르게 들어가기를 열망하는 다메섹에서, 사람의 잣대의 비늘을 눈에서 벗게 된 후 하나님의 잣대의 눈이 열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첫째 시기에서 여섯째 시기에 차꼬로 채워져서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불태우며 마음땅을 경작해 가는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사울에서 바울로 바뀐 것이다. 어두움인 무지가 큰 자였던 사울이, 무지가 깨트려지고 생명으로 부활한 작은 자로 바뀌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본래적으로 하나님의 잣대만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이 잣대로 인간의 마음땅에 자리잡고 있는 어두움인 무지를 잘라내고 진멸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인 고난과 아픔이 따르기 때문에, 이 고난과 아픔을 피하기 위해서 인간은 사람의 잣대로 하나님의 잣대를 변개시킨 것이다. 그 대표적인 자들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이다. 율법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잣대인 율법이 하나만 있는 줄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잣대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인식이 바르게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율법도 하나님의 잣대의 율법이 있고, 사람의 잣대에 의한 율법이 있다.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들이 있을 것이고, 동시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잣대의 본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잣대를 모르는데 사람의 잣대를 알 리가 있겠는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잣대와 사람의 잣대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람의 잣대에 맹목적으로 충성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그가 변화를 받고 사람의 잣대에서 하나님의 잣대로 돌아선 것이다.

육의 눈으로 보던 사람의 잣대가 신령한 눈이 열리게 되니, 사람의 잣대는 허상이고, 하나님의 잣대가 실상이라는 것이 보인 것이다. 육안으로는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신 내용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막연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과의 싸우셨다는 식으로 이해하고 있으면 안 된다. 이들은 하나님의 잣대를 변개시켜 사람의 잣대를 만들어 의식적으로, 형식적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었다. 외적인, 형식적인, 의식적인 행위 속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지 않으신다. 예루살렘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짐승의 기름과 번제로 태우는 연기에 물리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가? 내가 지은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켜 짐승을 죽이고 제사를 드리면 나는 죄 용서를 받았다고 위로를 받는 것이 옳은 행위라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내가 죽기를 원하시고 계신다. 철저하게 마음땅의 어두움인 무지를 죽여 불태워 산 제사를 드려야 한다. 하나님은 산 순교를 원하신다. 사람의 잣대로는 절대로 산 순교를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잣대 안에서만이 산 순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철학과 사람의 잣대인 초등학문을 배설물로 여기고 버렸다고 외친 것이다. 그런데도 철학과 사람의 잣대인 초등학문을 좇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으며 다원주의 사상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

사도는 ‘샤리아흐()’인데, 생명을 꺼내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이 생명에 대해서 개념을 잘못 인식을 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여기의 생명은 인간의 목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생명을 말한다. 첫째 시기, 둘째 시기, 셋째 시기가 하나님이 근본 의도하신 높은 뜻과 계획인데, 이를 하나님의 생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마음땅은 넷째 시기, 다섯째 시기, 여섯째 시기인데 이 마음땅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 그 대신에 혼돈과 공허와 어두움인 무지가 무저갱의 얼굴들로 자리잡고 있다. 이 무저갱의 얼굴들이 인간의 마음땅을 하나님의 생명이 존재할 수 없게 하기 위하여 육의 생각들이 우상이 되어 인간의 마음을 다스리고 통치하며 옥에 가두고 있다. 이 옥을 깨트리고 진멸시켜야 인간의 마음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부활하게 된다. 부활이 안 이루어지게 되면 인간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속에 들어가 하나로 결합된 한 생명체를 이룰 수 없다. 말씀이 육신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 예수의 신령한 몸으로 변화를 받을 수 없다. 이 몸을 입어야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 이 몸을 이루어야 생명의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래야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에게 생명을 꺼내주는 사도가 될 수 있다. 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사도 바울이라는 말이다. 

서균석 목사는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장로회 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하늘교회(통합) 담임목사 은퇴
한국히브리신학원 학장

문의: 010-3728-0245 
홈페이지: http://www.koreahebre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