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처럼 ‘자비’(Mercy)와 ‘수용’(Acceptance)과 ‘용서’(Forgiveness)로 특정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 대한 신약 성경의 또 다른 특징은 친밀성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성경이 가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중, 가장 극적이고 뛰어난 장면의 두 가지 예는 ‘회개하는 것’(Repenting)과 ‘용서하는 것’(Forgiving)으로서, 탕자의 비유에 나타난 부자간의 관계에서 발견될 수 있다.

만약 친밀성이 다른 사람들의 평안을 위한 친절하고 민감한 관심으로 정의된다면, 가족 안에서의 친밀성 역시 성경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하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독교의 사랑과 친절은 상호간에 친밀하게 손과 손을 마주잡고 함께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가정관에 대해 여러 각도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예수님께서 가정에 대해 크게 언급한 곳은 별로 없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실 때 가족의 일원으로 오셨으며, 가족 중에서 생활하셨다. 공생애에서는 가정을 축복하고 혼인 잔치의 기적을 통해 혼인의 신성을 나타내셨다. 아이들을 축복하셨으며,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에 대해 창조 질서와 연결시켜 말씀하셨다. 특히, 예수님은 결혼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교훈보다 바리새인들의 이혼에 대한 대답으로 결혼의 참 뜻을 밝히고 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시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막 10:5-9)

“무릇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눅 16:18)

이처럼 예수님은 가정이 일종의 생활 방편이나, 사회적 관계나, 개인적인 향락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셨다.

초대교회에 나타난 가정

바울은 신약 시대 가정의 특성을 부부 관계, 자녀 관계, 생활 윤리 등 여러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여러 그룹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사회는 서로 비슷한 멍에를 메고 있는 여러 그룹들로 구성되어 있어 서로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남편의 아내 사이의 결혼이요, 둘째는 부모와 자녀 사이의 매임이요, 셋째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다. 이러한 집단에 바울은 각기 독특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바울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울은 하나님 없는 가정의 비참함을 열거하면서 ‘가정의 순결 문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하나님 없는 가정은 부도덕한 애정 관계를 유발하고, 모든 불의한 죄악을 낳는다는 것이다(롬 1:28-32).

특히, 음란한 자, 간음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 기독교인들의 타락한 가정 생활을 강력하게 지적하였다.(고전 6:9-10) 그리하여 바울은 가정의 순결한 사랑이 곧 하나님의 뜻임을 강조하고 있다(살전 4:3-8).

둘째, 바울은 한 가정을 형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지켜야 할 관계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서 밝힌다(엡 5:22-33, 골 3:18-19). 이것은 결혼과 가정의 신성함과 사랑의 질서와 복종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아내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이 남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하고 있다.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께 순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내의 순종은 남편의 우월함이나 아내의 열등함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되심같이 남편이 가정의 머리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내는 그리스도에게 어떻게 행할 것인가를 배움으로써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남편들에게 남편이 갖는 권위가 가정의 폭군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에베소 교회에 상기시키면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둘을 하나되게 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세우신 것이다. 이 말은 결혼에 대한 연합의 실례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영적 연합에 대한 놀라움으로 “이 비밀이 크다”는 말로 결론을 맺고 있다. 그리하여 잴 수 없는 비밀을 지닌 인간의 결혼은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가 되는 것이다.

셋째, 바울은 자녀들이 가정에서 지켜야 할 일, 즉,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것을 명하고 있다.(엡 6:1-4) 순종의 이유는 부모 공경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에 “주 안에서 하라”고 한다.

넷째, 바울은 부모와 자녀의 관계처럼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도 사랑과 복종의 가족관을 말하고 있다(엡 6:5-8). 바울은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밝히면서 그리스도인의 가정 문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와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관계에서 해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서의 기독교 가정은 성령의 역사 속에서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따라 축복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또한 혈족의 한계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이루시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그 사명을 다하게 된다.

가정의 본질과 책임

‘가정’이라고 하는 단어의 앞에 ‘기독교’라는 수식어를 붙이가 되면 하나의 신학이 개재하게 된다. 왜냐하면 기독교 가정이라는 용어는 자연적, 심리적, 또는 사회적인 용어의 뜻을 넘어서서 그 가정을 만들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해 주신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의 결혼과 가정생활은 일반적인 인간관계 중에서 하나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다. 이것은 결혼 배우자와 자녀들의 사랑에 의해서 창조되는 관계적 사건들이다.

또한 이 사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한다고 하는 인간의 반응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정 내의 인간관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들 자신의 응답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즉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납하는 가운데서 가족 구성원들은 그들 자신과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를 세상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기독교인 부부와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과 연결된 교회의 관계와 같다. 끊임없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기독교 가정의 기초적인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 가정생활에 있어서 종교적인 중요성은 항상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경의 증언은 남녀가 가정생활에서 한 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해 주고 있다. 가정생활은 거룩한 관계를 조성시킨 것이며, 이런 가정생활을 통하여 두 사람 몸으로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능력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 가정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모시는 가장 친근한 친교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회적 단위이며 자기를 주는 아가페의 사랑과 신뢰에 근거해서 이룩된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의 창조 기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의 위대성을 이루고 있다(창 1:26-28). 또한 창세기는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시도로 말미암은 인간의 타락을 이루고 있다(창 3:4-6).

이 두 기사는 하나님의 창조에서 인간의 위치에 관한 전체적인 이해를 제시하는 데 상호 보충적인 역할을 한다. 창세기 1장에 의하면 인간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의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땅과 동물들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받았다. 이와 같이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매우 직접적이며 인간을 통해서만 세계는 순수한 직업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하나로 동등하게 창조된 남자와 여자는 따위의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지배권도 함께 부여받는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도 아울러 받았다. 창세기 1장 28절에 나오는 축복의 선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의도를 명백히 드러내 주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다섯 개의 동사는, 행복과 번영을 증진시키려는 하나님의 철저한 의도를 강조하고 있다. 즉 다섯 선포들은 인류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이 이제 비옥하고도 풍성한 곳이 되기를 원하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인간으로 하여금 질서를 맡은 대행자가 되도록 임무를 위엄하신 것이다. 이처럼 성경은 이 땅을 가꾸기 위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인간의 보금자리 동산을 창조하는 것처럼 서술한다.

특히 성경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를 서술할 때 아주 상세하게 다루고 대담하게 설명하고 있다.(창 2:20-24)

여자는 남자의 배필로 창조되었다. 아담의 갈빗대로부터 창조된 여자의 이야기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속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두 생명은 결혼 관계를 맺어 완전한 한 생명을 이룩하기 위하여 한 몫을 형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처럼 성경에서 결혼은 인간 경험 중에서 가장 가깝고 친밀한 것으로, 육체적 합일은 그것 자체의 목적을 위해서 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가정은 죄가 들어오기 이전에 세상에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축복 선언은 가정의 의미와 근거와 하나님의 의도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잘 설명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28)

하나님은 남녀의 결합으로서 가정을 거룩한 것으로 축복하시고 성화시키셨다. 이상에서 볼 때 가정의 본질은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창조의 신학에 나타난 가정의 모습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룸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또한 가정의 사명은 하나님의 축복에 따라 생육하고 충만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세계를 잘 다스리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에 따른 창조 신학에 근거한 가정의 본질임과 동시에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