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에 미국 나이애가라 폭포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하루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폭포의 장관을 보고 있었는데 한 구석에서 "야! 우리 아버지의 폭포가 참 멋있구나!"라고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미국인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이것은 미국과 카나다의 공동소유일텐데, 도대체 당신 아버지는 누구신데 이것을 언제 사셨습니까?" "우리 아버지는 이것을 사신 것이 아니라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사람은 키가 자그마한 일본인 목사였습니다. "나의 하나님 아버지가 천지를 지으셨으니 이 폭포도 내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 주일에 동네에 소문이 퍼졌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설교한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패전국의 국민인 한 일본 목사가 승전국인 미국 땅의 폭포를 자기 아버지의 것이라고 자랑하며 긍지를 가질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바로 신앙을 통한 자기 정체감이었다.

청소년기를 고민의 시기라고 특징지을 수 있을 만큼 많은 고민이 새롭게 싹트기 시작하는데 그 대부분은 자기 자신과 관련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일컬어 올포트(Allport)는 청소년기를 '자기에 대한 새로운 탐색기'라고 불렀고 에릭슨은 '정체감 위기'라고 불렀다. 자아 정체감이라는 용어는 에릭슨(Erikson)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자신을 타인과 구별된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자기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에 문제가 심화되는 배경과 원인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신체적 급성장으로 말미암은 내적 충동의 질적, 양적 변화이다. 사춘기를 거쳐 신체발달과 성적 성숙으로 인해 신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충동들이 변화의 원인이 된다.

둘째, 청소년에게 부딪혀오는 상충적인 요구가 있다. 청소년은 아동도 성인도 아닌 이른바 주변인으로서의 존재적 특징 때문에 상호 모순적인 상황에 처할 때가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들은 아직 경제적, 정신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부모의 말에 따르도록 요청받고 또 어떤 때는 나이와 체구에 걸맞게 독립적이기를 기대하고 책임있는 처신과 행동은 요구받기도 한다.

셋째, 청소년기는 선택이 강요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계속 진학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진학한다면 어떤 전공을 택할 것인가 하는 등등의 선택이 강요된다. 지금까지 긴박하게 느끼지 않았던 진로에 대한 선택 강요는 이들을 고뇌와 불안 속에 밀어넣는 또 하나의 원인이 된다.

넷째, 청소년기에 증대되는 인지 능력 때문이다. 인지 발달 단계상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들면서 이 시기의 특징인 가능성에 근거한 추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자기의 진로나 상대방에 대한 사고도 제한된 가능성이 아니라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생각해 보게 되며 어떤 현상을 볼 때도 결과론적인 시각에서만 보지 않고 동기와 과정까지도 고려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들의 생각은 더욱더 복잡해져 간다.

마지막으로는 이들이 지금껏 가지고 있던 이전의 동일시들, 즉 모델로 삼아왔던 것들이 그 유용성을 잃게 되는 점이다. 사람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좋아하거나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과 동일시하여 그들의 행동 양식, 기호 ,가치 등을 본받아 내면화하게 된다. 그런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아동기에 모델로 삼았던 가치들이 바뀌게 되면서 새로운 가치에 내면화되지 못할 때 불안과 열등감을 느낄 수 있다. 예를 들면 운동과 공부를 잘 하던 초등학교 여학생은 동료들로부터 이로 인해 칭찬을 받고 자신도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랐는데 사춘기를 지나면서 동료들이 우선을 두는 가치가 이성으로부터 매력을 끄는 것으로 옮겨지면서 자신에게는 이러한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없으므로 더 이상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지 못하게 되어 버린 자신의 처지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을 일거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은 정체감의 형성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해야하는가?‘ ‘그것을 왜 해야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답을 갖게 되면 이전의 방황과 혼란이 끝나고 자신이 언제 그랬었느냐는 식으로 표변한 모습을 보게된다. 우리는 이것을 ‘철이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누구인가? 자기를 찾는 작업은 자신의 속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되지 않는다. 오히려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한 주변환경 속에서 자신이 유전과 학습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다. 영원불변의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영원한 신분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기에 청소년의 정체감 지도에서 중요한 것은 학교와 사회가 아닌 교회의 장에서 신앙으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청소년만이 바른 정체감을 갖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선포한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사41:8-9).

이러한 하나님의 확실한 인정을 청소년의 삶을 혼돈과 방황에서 구해준다. 교회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교회교육은 학교와 사회가 해 줄 수 없는 것을 이루게 한다. 바로 청소년의 바른 정체감형성이다.


손종국 목사 (청소년교육선교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