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목윤 발표회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신앙 선배들의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기리며'라는 주제로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위원장 전병금 목사, 이하 한목윤) 주최 발표회가 19일 오전 서울 온누리교회(담임 이재훈 목사) 앙재성전 화평홀에서 개최됐다.

이날 2부 발표회에서는 이기풍 목사와 윤함애 사모, 이성봉 목사, 장기려 박사 등의 삶을 각각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와 김명혁 목사(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이상규 교수(고신대 역사신학)가 각각 소개했다.

박명수 교수는 "조선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던 유교와 달리, 초기 한국 기독교의 특징은 바로 '역동성'에 있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며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를 상실하고 말았는데, 이기풍 목사의 선교와 삶을 통해 이런 역동성을 발견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박 교수는 "천주교가 외세의 힘을 빌어 선교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제주 '선교'에 나선 이기풍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의 능력을 강조했다. 천주교의 선교가 서양의 힘을 배경으로 했다면, 이기풍의 선교는 고난의 길이었다"며 "그는 힘을 가진 자로서가 아니라, 힘 없는 자로서 사랑의 헌신으로 선교를 시작했다. 제주도 사람들은 흔히 외지인들에게 마음을 열지 않지만, 어느 날 큰 홍수가 나 한 여인이 휩쓸렸을 때 이기풍이 여인을 구해낸 사건이 제주 선교의 기폭제가 됐다. ‘기독교인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기풍의 제주 선교는 여러 협력자들로 인해 가능했고, 특히 숭의여학교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고 현대식 조산법을 배운 사모 윤함애와의 동역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윤함애는 제주에서 조산으로 사람들을 도와 주고 시체를 잘 화장하여 염을 해 주면서 제주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고, 부부가 함께 장례식도 열심히 도왔다"고 전했다. 신사참배와 순교에 대해선 "이기풍 목사는 제주에서 나와 순천 우학리교회를 담임하는 동안 일제에 의해 체포됐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였다"며 "연로한 가운데 고문을 받은 이 목사는 석방됐지만 얼마 가지 않아 1942년 6월 20일 순교하고 말았다"고 했다.

정리하면서 박명수 교수는 이기풍 목사의 삶이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주는 교훈으로 △한 곳에 머물러 '왕국'을 세우지 않고 순회 사역을 하면서 '교회의 공적 개념'을 보여준 점 △'사모와 공동 사역'을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낸 점 △어려움 속에서도 '신앙으로 자녀를 교육'한 점 △도덕을 넘어선 복음을 통한 능력으로 선교한 '영적 전사'였던 점 등 4가지를 꼽았다.

한목윤 발표회
▲한목윤 주요 관계자들이 자리한 모습. 앞쪽 테이블 왼쪽부터 전병금 목사, 박경조 주교, 김명혁 목사, 정주채 목사. ⓒ이대웅 기자
두 번째로 김명혁 목사는 "'한국교회의 무디' 이성봉 목사님이야말로 주님 사랑과 영혼 사랑에 사로잡혀 구령과 교회 부흥 사역에 헌신하시면서 가난과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사신, 그리고 현세를 초월한 깨끗한 청빈의 삶을 사신 너무 너무 귀중하고 너무 보배로운 신앙의 선배님이라 생각하며,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지니고 기린다"고 말했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님은 37년 동안 한국과 만주와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많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동안 수많은 영적 체험을 계속하면서 기사와 이적을 동반하는 회개와 부흥의 역사를 많이 일으키는 등 '은혜 체험적 삶'을 사셨지만, 신비주의는 항상 경계하면서 '가슴은 뜨거워야 하지만 머리까지 뜨거워지면 안 된다'고 항상 경고하셨다"며 "지식과 기술과 경영과 각종 프로그램과 행사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 교회 목회자들에 비춰볼 때, 은혜 체험과 성령의 역사에 붙잡혀 한 평생 살며 사역한 이 목사님의 삶은 강력한 도전을 준다"고 밝혔다.

그는 "이 목사님은 잠자는 교회를 일깨우기 위해 농어촌 교회까지 찾아가 부흥회를 인도한 부흥사였고, 셋째 딸 결혼식에 인사하러 올라가서도 몇 마디 인사하고는 전도 강연을 하는 등 모든 기회를 전도의 기회로 삼은, 구령과 교회부흥에 헌신한 수고와 고난과 섬김의 삶을 사셨다"며 "순수한 구령과 복음 전파보다는 자기 교회 확장에, 자기 희생보다는 대우 받음에 치중하고 있는 현대 교회 목회자들의 삶에 비춰볼 때, 영혼 사랑과 교회 사랑에 사로잡혀 복음 전파에 한 평생 헌신하며 수고와 고난과 섬김의 길을 걸어가신 이 목사님의 삶은 감동적 도전을 주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성봉 목사님은 청년 시절부터 철저한 회개에 기초를 둔 성결하고 깨끗한 청빈의 삶을 살면서, 이성의 정욕과 물질의 탐욕을 항상 경계하는 금욕적이고 현세를 초월한 삶을 사셨다. 어찌 보면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적 정서가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현실 교회와 사회에 무책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며 "세상과 돈과 명예를 좋아하는 세속주의에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는 현대 교회 목회자들의 삶에 비춰볼 때, 이 목사님의 현세 초월적 청빈의 삶은 심각한 도전을 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한목윤 발표회
▲발표회가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마지막으로 이상규 박사는 "성산 장기려 박사의 삶을 결정했던 신념과 행동양식, 사회활동은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고 있다. 그의 생애와 삶의 여정이 인도주의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은 기독교 신앙 때문이었다"며 "따라서 장기려 박사에 있어 사랑과 섬김 혹은 봉사에 대한 단순한 인도주의적 접근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의 삶과 실천은 바로 그의 신앙고백이었고, 신적 명령에 대한 응답이었다"고 분석했다.

이 박사는 "장기려 박사는 먼저 사랑을 실천한 그리스도인이었다. 자신의 삶의 여정을 통해 위로 하나님을 섬기고 아래로 사람을 섬기는 생애를 살았다"며 "이웃에 대한 사랑과 선의는 하나님 사랑에 대한 외연이었고, 자기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는 도움을 준다는 것이 그의 삶의 철학이었다. 실천적 사랑과 선의(goodwill)는 그의 일관된 삶이었다"고 했다.

그는 "둘째로 무사무욕(unselfishness)의 삶을 사셨다. 그에게 있어 소유는 궁극적으로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수단이었다. 그는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했고, 물욕이나 명예욕에 빠지지 않았다"며 "성산은 사리사욕을 추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기적 부의 추구를 가능케 하는 자본주의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무사무욕은 한 시대를 이끌어 간 명의(名醫)로서 갖기 어려운 삶의 태도였으나, 그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랑과 베품의 윤리를 실천했다"고 평가했다.

셋째로 '함께 사는 사회(togetherness)'를 추구했다고 했다. 이 박사는 "상부상조, 공생과 상생은 그의 윤리였다. 근본적으로 그의 모든 것 곧 소유, 학문, 학위, 명예는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며 "그가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창설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도 같이 살기 위한 것이었다. 행려환자의 구호, 기독의사회를 위한 구급활동, 간질병환자를 위한 장미회 운영, 가난한 이웃을 위한 의료보험조합운동 등은 공생과 동거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결국 그는 사랑의 보편주의(love-universalism)를 추구했던 것"이라고 발표를 마무리했다.

앞선 1부 개회예배에서는 위원장 전병금 목사(강남교회 원로) 인도로 박경조 은퇴주교(한국성공회)가 '새로운 존재(고후 5:1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으며, 전병금 목사의 개회인사와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은퇴)의 광고가 이어졌다.

이날 한목윤에서 주최한 발표회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대표회장 김경원 목사)와 한국복음주의협의회에서 후원했다. 한목윤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중심으로 '한국교회가 비난받는 모든 책임은 목회자의 윤리 부재에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면서 2012년 설립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