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모습 보여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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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록, 한 점의 그림] 김대연, 포도나무에 달린 포도 한 송이

모양도 색상도 비슷한 포도송이 지속적 발표하는 이유,
영롱한 포도송이 지닌 매력과 자체의 상징적 의미 때문
포도송이, 은혜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 모습 나타내
‘메시지의 운반자’ 포도, 예수님의 부요함 사색하게 해

▲Grapes, 김대연, 116.7x80.3cm, oil on canvas, 2022.

▲Grapes, 김대연, 116.7x80.3cm, oil on canvas, 2022.
‘포도 작가’로 알려져 있는 김대연은 포도송이를 즐겨 그린다. 포도 자체에 시선이 집중되는 만큼, 포도송이가 오롯이 부각된다. 포도송이에 떨어지는 빛과 껍질 위의 과분, 반투명의 과육까지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포도향이 진동하는 과수원에 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일으킨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 머물지 않고, 후각과 촉각 등이 어우러진 공감각적인 그림이다.

김대연의 포도 그림은 2007년쯤만 해도 풍경이 함께 등장했으나, 몇 년 후 ‘포도송이’로 화면을 가득 채우게 된다. 팝 아티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던 클로즈업과 극사실의 정교함이 버무려져, 지금의 화풍이 탄생하게 된 셈이다.

근래에 작가는 작품에 약간의 ‘베리에이션(variation·변주)’을 꾀하고 있다. 포도 이미지를 평면적으로 나열하던 종래 방식에서 벗어나, 근작에서는 입체감을 도입하여 중앙의 포도송이가 앞으로 돌출된 듯 입체감을 살려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시선이 모아지는 곳은 화면 한복판이며, 주위는 응달이 지게 하거나 포커스를 흐릿하게 처리하고 있다. 사진의 아웃포커스처럼 그렇게 뚜렷하지는 않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입체감을 띠고 있다.

작가가 하나의 모티브를 고수하는 것은 여느 작가들에게서도 흔한 일이지만, 김대연처럼 모양도 비슷하고 색상도 비슷한 포도송이를 지속적으로 발표한다면 상황은 좀 달라질 것이다. 감상자에게 어떤 상상을 연상시키거나 촉진시키기에는 무언가 부족해 보이고, 결국은 한 가지 이미지의 반복 또는 확대재생산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연이 포도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롱한 포도송이가 지닌 매력과 포도 자체의 상징적 의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똑같은 크기의 포도이지만, 낱개가 모여 전체를 형성하는 점에 주목한다. 알다시피 포도는 사과나 배처럼 한 알로 존재하기보다는 군집 형태를 띤다. 여러 알이 모여 한 송이의 포도를 만드는 것이다. 낱개의 포도와 포도가 사이좋게 지내는가 하면, 조화를 도모한다. 서로를 아껴주고 존중할 줄 아는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부분이다.

미국의 하이퍼리얼리즘이 극한의 사실력을 바탕으로 사물을 즉물적으로 반영하였다면, 김대연은 단순한 사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연상시키게 하는 이미지로 만든다. 그도 처음에는 하이퍼리얼리즘에 관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였으나, 한계를 느끼고 오감에 반응하는 작업으로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첨단 테크놀로지에 의한 실감 영상을 감상할 때처럼 생생한 느낌의 전달이 두드러진다. 알갱이 하나하나마다 저마다의 표정이 살아 있는 느낌이다. 이육사의 ‘내 고장 청포도’에 나오듯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있는 모습이다.

그의 그림을 보며 어떤 사람은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수확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으며, 어린 시절의 회상에 잠겨볼 수도 있을 것이다.

▲Grapes, 김대연, 116.7x80.3cm, oil on canvas, 2021.

▲Grapes, 김대연, 116.7x80.3cm, oil on canvas, 2021.
필자는 그의 그림이 지닌 의미를 성경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찾고자 한다. 예수님은 포도나무 비유에서 포도나무는 예수, 농부는 하나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나뭇가지라고 비유하셨다.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듯, 예수님 안에 거할 때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의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그림에 달린 포도송이는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포도송이가 내적으로 충일할 뿐만 아니라 생기로 가득 차 있다. 예수님 안에 거한 사람이 생명의 결실을 맺고, 생명의 에너지를 주위로 퍼트리는 것을 느끼게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생명의 원천인 태양의 이미지이다. 우리 영혼에 성령의 빛이 내리쬐면 새로운 존재가 되듯이, 포도가 포도다울 수 있는 건 따듯한 햇빛의 결과이다. 햇빛이 포도를 키우듯 영혼이 참된 신적 아름다움을 아는 지각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탁월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반대로 태양이 없는 장면도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포도나무는 자랄 수 없을 것이며, 어떤 열매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빛을 중시하는 것은 생명을 부양하는 데 필수적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모습은 감추면서 포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마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을 보살피시는 것과 유사하다.

그의 포도 그림은 부감법을 사용하여 탄생한 것이다. 말하자면 포도밭의 포도가 아니라, 수확한 포도를 한데 모아 눈높이의 조절을 통해 얻어진 장면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화가들이 구도를 ‘현장’에 맞추는 데 비해, 그의 경우는 반대로 ‘연출된 구도’에 따르고 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물론 빛의 효과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서로 엉켜있는 포도송이가 깊이감과 입체감을 나타내기 위해, 정물의 위치를 사전에 파악할 필요가 있다. 비슷한 크기의 포도가 반복되는 데서 오는 지루함을 막기 위해 파릇한 포도 잎을 간간이 끼워 넣거나 가지를 삽입하는 것, 공간을 비워놓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한편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림과 실물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예술의 장점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화면 속 이미지에 대해 숙고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반면 실물을 보았을 때는 반드시 그럴 필요가 없다. 그것이 쓸모가 있는지 아닌지 구별하면 된다.

그러나 그림을 보고 효용성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작품을 정지된 시각에서 바라봄으로써 그것이 감상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감추어진 의미를 묻고 발견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것을 응시하면서 포도에 어떤 기의(記意)가 내재되어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 기의 중의 하나가 영적인 문제이다.

김대연의 포도 그림은 탐스럽게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결코 순탄치만은 않은 시간의 연속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익은 포도일수록 햇볕의 강렬함에 익숙해야 하며, 그런 연단을 거쳐야만 잘 익은 포도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포도 이미지는 사물로서의 포도가 아니라, C. S. 루이스가 말한 ‘메시지의 운반자’로 변모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예수님은 영혼의 혹한기에도 우리와 동행하셨다. 낮이 밤보다 길게 느껴지고 웬만한 것들은 다 죽어있거나 그렇게 보이는 계절, 도무지 끝이 없을 것같은 위축된 감정…. 만약 그런 시간에 그 분이 옆에 계시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

예수님은 우리가 가혹한 시련을 겪고 있을 때도 ‘은총의 햇빛’을 공급함으로써, 소망을 잃지 않게 해주셨다. 이것은 가지에 붙은 포도가 환경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성장하는 것과 유사하다.

김대연의 그림은 포도 한 송이라도 보살피시는 예수님의 부요함에 대해 사색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 부요함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주시는 인격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의 토대 위에 구축된 것임을 알려준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모든 풍요를 하나님과 공유한다. 작가는 부요한 예수님에게 접목된 그리스도인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의도했던 것이 아닐까?

서성록 교수
안동대 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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