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지능 있는 인간이, 하나님 모른다 할 수 있는가?”

|  

[특별기고] 장군의 수염부터, 큰 바위 얼굴까지… 선생님과의 인연

수염 따라하지 않아 고립된 철훈… <장군의 수염>
하나님과 예수 알았지만, 교회 다니는 이들과 구별
세례 공표된 후 심경과 세평의 괴리로 시작된 강좌
곁에서 허물없이 뵌 시대의 지성, 마지막까지 지조

▲이어령 교수가 쓴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lt;장군의 수염&gt; 중 한 장면. ⓒ유튜브

▲이어령 교수가 쓴 소설을 토대로 한 영화 <장군의 수염> 중 한 장면. ⓒ유튜브
“난 딱딱한 육체를 가진 젖먹이 동물이에요. 누에처럼 아름다운 비단과 나방으로 변신하는 재주가 없는 동물이에요. 소설을 쓰세요. 소설은 어떻게 끝나죠? 역시 주인공은 수염을 기르지 않나요?”

“그래 난 소설을 쓰겠어. 이번만은 타인을 돕는 것이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는 비극이 되지 않도록 하겠어….”

“장군의 수염은 비가 오는 어느 여름 밤에….”

1966년 이어령 원작 소설을 1968년 김승옥이 영화 대본으로 각색한 <장군의 수염> 막바지에 나오는 신혜와 철훈의 이별 대사이다. 해방의 서사와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시대 면면을 점령한 혼잡다단한 그 시절이 배경이다.

철훈의 현실 참여는 때때로 정의롭지만 여전히 일반적이지 않고, 사교적이나 친절하지 않다. 몰락한 지주의 막내아들이다.

신혜는 강직한 시골 목사의 딸이다. 떠밀리듯 홀로 나선 피난여정 중 중공군에게 겁탈을 당한 사건 이후 아버지의 신앙과는 결별하지만, 아버지를 돌보고 나약한 인간(철훈)에게 연민하는 여인이다.

그리고 집요하리만큼 현행법 집행에 성실한 공적인 삶에 투철한 박 형사가 주요한 인물 축이다.

철훈의 죽음으로 비롯한 살인사건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살인 주범은 말미에 형사의 독백으로 밝혀지는데, 수갑을 채우지도 법정에 세울 수도 없는 ‘고독’이었다.

<장군의 수염>은 독립운동을 한 난세의 영웅과 그의 군대들이 전시 상황에서 부득불 깎지 못했던 수염이 영웅, 독립운동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메타포로 활용되었다. 철훈의 고독은 그 수염을 끝끝내 따라 하지 않아서 고립된 자신이 투영된 소설 중의 ‘액자소설’이다.

어른이 또 한 분 먼저 그 길을 가셨다. 2월 초 무안의 고구마 장인이 이어령 선생님께 고구마를 보내드리고 싶다고 연락을 주셔서, 심부름차 사모님 강인숙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음식을 넘길 형편이 아니시다.”

그 때부터였다. 주마등처럼 스치는 어른과의 인연이 제법 여럿 떠올랐다. 그 기억의 처음, 청소년 시절 접했던 이상한 영화가 떠올랐다. 집에서 밤에 혼자 그 영화를 보다 잠들었던 기억이다.

▲양화진문화원 주최 이어령-이재철 대담 중 한 장면. ⓒ크투 DB

▲양화진문화원 주최 이어령-이재철 대담 중 한 장면. ⓒ크투 DB
아직도 잊히지 않는 장면, 만화 속 수염을 한 말 탄 장군과 그의 군대들, 그리고 나약한 남자! 훗날, 그 영화가 이어령 소설 <장군의 수염>의 원작 동명 영화였던 것을 알고 짐짓 놀랐었다. 그 만화는 찾아보니 신동헌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이어지는 인연의 깊은 기억은 남편 이재철 목사와 함께다. 주님의교회에 강사로 오셔서 식사를 대접하던 날이다.

한 말씀이 잊히지 않았다. “지능이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모른다 할 수 있겠는가?!”였다. 그 때 교회에 오신 까닭은 “교회 밖에서 본 교회”를 이야기하러 오셨다. 어른은 하나님과 예수를 알고 계셨다. 다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구별되고 싶으셨다.

이후 꽤 오랜 시간 가까이 뵙지 못했다. 그러다가 세례를 받으셨다는 기사를 접했다. 할렐루야! 드디어 교회 다니는 사람들과 섞여 살기로 작정하셨음에 맘으로 축하를 드렸다. 그리고는 얼마 후 뵙게 되었다.

그리고 함께 골몰했던 작업이 100주년기념교회의 ‘목요강좌’였다. 본의아니게 세인들에게 공표하듯 세례를 받으신 어른은 심경과 세평의 괴리를 인지하시고, 가끔 우리 부부와 식사를 하시며 이런저런 당신의 생각의 변화를 공유해 주셨다. 그 때 필자(홍성사)가 제안했던 기획이었다. 이어령의 지성이 묻고 이재철의 영성이 답을 하는 10회 강좌였다.

이 기획을 100주년기념교회가 양화진문화원 사업으로 하고 싶다 하셔서 홍성사가 양보한 프로젝트였다. 결국 이 강좌는 <지성과 영성의 만남>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두 분 모두 인세를 받지 않으셨고, 홍성사는 책의 제작에 공을 들였다.

어른이 그 곳에 가셨다. 글을 남기시고 말을 남기셨다. 시대의 지성을 곁에서 허물없이 뵌 인연이 행운이었다. 다시 숙제…, 마지막 어른의 야윈 모습이다.

인간의 지조를 지키며 자연 수를 하고 가신 이어령 선생님은 ‘큰 바위 얼굴’이 되셨다.

▲정애주 대표. ⓒ크투 DB

▲정애주 대표. ⓒ크투 DB
정애주
홍성사 대표

<저작권자 ⓒ '종교 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신청

에디터 추천기사

동성 동반자 커플 대법원 건강보험 피부양자 소송

“‘사실혼 관계’와 ‘동성 동반자’가 어떻게 같은가?”

왜 동성 동반자만 특별 대우를? 혼인 관계, 남녀의 애정이 바탕 동성 동반자 인정해도 수 비슷? 객관적 근거 없는, 가치론 판단 동성애동성혼반대국민연합(동반연)에서 동성 파트너의 건보 자격을 인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규탄하는 성명을 19일 발표했…

이동환 목사

법원, ‘퀴어축제 축복’ 이동환 목사 출교 ‘효력 정지’

‘퀴어축제 성소수자 축복식’으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은 이동환 목사가 법원에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 11부(부장판사 송중호)는 19일 이 목사 측이 감리교 경기연회를 상대로 낸 가처…

대법원

기독교계, 일제히 규탄… “동성혼 판도라의 상자 열어”

대법원이 동성 커플을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을 두고 기독교계가 “동성결혼의 판도라의 상자를 연 폭거”라며 일제히 규탄했다. 대법원은 18일 오후 전원합의체(주심 김선수 대법관)를 열고 소성욱 씨(김용민 씨의 동성 커플)가 국민건…

지구촌교회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 사임 이유는…”

느헤미야 프로젝트 이끄는 과정 부족한 리더십 때문에 자진 사임 성도 대표 목회지원회에서 권유 李 원로, 교회 결정 따른단 입장 지구촌교회가 주일인 21일 오후 임시 사무총회를 열고, 최성은 목사 사임에 관해 성도들에게 보고했다. 이날 사무총회는 오후 6…

올림픽 기독 선수단

제33회 파리 올림픽 D-3, 기독 선수단 위한 기도를

배드민턴 안세영, 근대5종 전웅태 높이뛰기 우상혁, 펜싱 오상욱 등 206개국 1만여 선수단 열띤 경쟁 제33회 하계 올림픽이 7월 24일 부터 8월 12일까지 프랑스 파리 곳곳에서 206개국 1만 5백 명이 참가한 가운데 32개 종목에서 329개 경기가 진행된다. 이번 파리 올림…

넷플릭스 돌풍

<돌풍> 속 대통령 역할 설경구의 잘못된 성경 해석

박욱주 교수님의 이번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넷플릭스 화제작 ‘돌풍’을 다룹니다. 12부작인 이 시리즈에는 설경구(박동호), 김희애(정수진), 김미숙(최연숙), 김영민(강상운), 김홍파(장일준)를 중심으로 임세미(서정연), 전배수(이장석), 김종구(박창식)…

이 기사는 논쟁중

지구촌교회

지구촌교회 “최성은 목사 사임 이유는…”

느헤미야 프로젝트 이끄는 과정 부족한 리더십 때문에 자진 사임 성도 대표 목회지원회에서 권유 李 원로, 교회 결정 따른단 입장 지구촌교회가 주일인 21일 오후 임시 사무총회를 열고…

인물 이 사람